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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Nov 10. 2023

연약해도 괜찮아

2W매거진 발행을 중단합니다


2W매거진이라는 독립웹진의 문제점은 바로 이 지점에 숨어있다.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필자의 개인적인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즉시 발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연약한 구조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큰 걱정은 없다. 답이 안 나올 때는 주변의 ‘아미가’들과 머리를 맞대어볼 작정이다. 
- <기획회의> 546호 특별기고, 홍아미 ‘미래에도 살아남는 잡지에 대한 몇 가지 질문’중에서



재작년 이맘때였다. 격월간 출판전문잡지인 <기획회의>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독립웹진 발행인으로서 ‘잡지의 미래’를 이야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성 잡지판에 신물을 느끼고 대안을 모색한 독립출판인의 패기가 느껴지는 글을 써서 투고했다. 그 때 투고한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연약한 구조’에 기대어 잘도 왔구나 싶어서 말이다. 위의 글을 기고한 이후로도 약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몇 번의 개편과 이벤트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매거진을 발행해왔고, 무려 40호를 발행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당시에 나는 매우 낙천적이었다. 모든 일에 그런 편이긴 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최고겠지만, 아니어도 뭐 어때. 그런 심정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결국 때가 온 것일 뿐이다. 매거진에 투입할 나의 개인적인 의지와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는 상업잡지나, 튼튼한 구조를 지닌 대기업에서 만드는 매체도 장기간 끌고 가려면 누군가의 강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인지도도 없고, 작가보다 독자가 더 적은 독립 웹진이 이만큼 오래 지속해온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 2W매거진은 다음호를 끝으로 무기한 발행 중단에 들어갈 예정이다. 매거진을 올해까지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투고량이 크게 줄기도 했고, 새로운 필자를 유입할 만한 획기적인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다만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연약한 구조에만 기대어 무려 4년 동안이나 대책 없이 이 일을 끌고 왔을까.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순 없었나. 좀 더 열심히, 잘할 수는 없었을까. 아니 애초에 뭘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일까. 그렇게 오래 매달릴 의미나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쓰다 보니 이거 점점 구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이다. 그만해야지.


답을 알고 있다. 필요와 생존의 이유, 혹은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무모한 독립 웹진 프로젝트의 시작은 더없이 가볍고 얄팍했다. 시간이 많고, 할 일을 잃은 여성 작가들이 글 쓸 곳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다행히 ‘전자책’이라는, 자본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를 찾았고, 주변에 글을 쓰고자 하는 여성 작가들은 많았다. 매달 매거진을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싶었는데, 고민할 시간에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점점 사람들이 모이니 계속 이어갈 동력이 생겼고, 나름대로의 포부도 다져졌다. 자본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이 작은 독립 웹진이 여성들이 마음껏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안식처 같은 곳이길, 우리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라도 세상에 퍼져나갈 수 있길. 그래서 온갖 혐오와 불평등으로 가득한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곳이 되는데 일조하길. 물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세상은 전보다 더 후퇴한 것 같은 느낌이고, 페미니즘의 ‘펨’자만 꺼내도 무슨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다. 


지난 4년 동안 좀 더 강해지고 단단해져서 오래 오래 이 일을 이어갈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여전히 연약한 채로 남아 있고, 2W매거진은 여전히 존재감 없는 무명의 독립웹진일 뿐이다. 결국 인정해야 했다. 나는 무력하고 연약하다. 세상을 뒤흔들 파도가 아니라 바닷물 한 방울이며, 드넓은 들판이 아니라 힘없이 흔들리는 풀 한 포기에 불과하다. 어디선가 이런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이 감각으로 노래하는 그 유명한 시. 교과서에도 나오는 김수영 시인의 ‘풀’이다. 왜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일까. 뭔가 또 하나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라는 의미인가. 


2W매거진을 통해 매달 하나의 주제로 여자들이 함께 글쓰기를 했다. 마치 누워있던 풀들이 스스스 일어났다 다시 눕고, 또 다음번엔 다른 풀들이 스스스 일어났다가 다시 눕는 장면이 재생되는 건 왜일까. 일어났다 눕고, 또 다시 일어나고. 바람의 속도에 맞춰, 방향에 따라 춤을 추는 풀들이 줌아웃 되며 넓은 들판으로 치환된다. 


다시 이번 호의 주제를 들여다본다.


괜찮아.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 연약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날아오르지 못해도 괜찮아. 아무도 알아봐주지 못해도 괜찮아.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지 못해도,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지 못해도, 못생긴 풀 한 포기라도 괜찮아. 


그래. 나는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나는 풀. 수많은 풀들이 서로를 보듬고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꽤나 아름다웠지. 그 소리는 노래가 되고 거름이 되고 향기가 될 거야. 우리가 있던 곳은 꽤나 아름답고 멋진 들판이었음이 분명하다. 







글_홍아미

갑작스런 소식에 놀라셨을 나의 ‘아미가’들에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2W매거진은 다음 호(41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발행이 중단됩니다. 어쩌면 가볍고 연약했기 때문에 4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행복했어요. 함께 글 쓰고, 아름답게 휘청거려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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