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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Jun 17. 2024

까미노가 나를 부를 때

여행작가 홍아미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시작합니다


나는 걷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마을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는 800km의 길. 이미 다큐멘터리나 예능, 책으로 수없이 많이 소개되어 이 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나 또한 그랬다. 

워낙 먼 거리다 보니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조건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버킷리스트’에 속하는 도전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질문은 대부분 “왜?”였다. 그런 엄청난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직장을 퇴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서라든가. 상실의 경험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든가. 자아발견을 위해 도전을 하기 위해서라든가.

안타깝게도 내겐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지금이 적당한 때인 것 같아서? 체력적으로도 아직 자신이 있는 편이고, 프리랜서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자금사정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여행 경비 마련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고. 길을 걷기에 4월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기에 때에 맞춰 티켓팅을 하고 준비를 했다. 어딘가에서 그런 글을 봤다. ‘까미노가 나를 부를 때’가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는 법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내게 그리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출국은 2024년 3월 25일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서 친구를 만나 며칠 파리 여행을 한 후, 프랑스 남부의 친구집에 머물며 며칠 재정비를 하다가 친구와 함께 순례길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무려 20년 만에 다시 방문한 파리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올림픽 준비 때문에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예쁘고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 역시나 내게 편안하고 행복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파리 현지에 사는 친구의 친구를 만나 밤골목을 걷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3박 4일간 나름 바쁘게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리 여행을 마무리한 후 기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에 있는 툴루즈를 거쳐 알비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알비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알비는 내가 가진 남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모두 충족시켜 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고도시였다. 거기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너무나도 멋진 성당이 있었는데 때마침 토요일이라 성당 앞 광장에는 주말 시장이 열려 활기차고 행복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남프랑스의 봄날씨는 그야말로 천국 그 자체여서, 그냥 그곳에서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에 질식되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볼일이 있어 혼자 여유롭게 성당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내가 여행중일 때 가족이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받고 보니 영상통화였고, 스피커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급히 성당 밖으로 뛰어나왔다. 눈부신 남프랑스의 햇빛이 나의 동공을 찌를 듯이 눈부셔서 나는 잠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휴대폰 화면 안에는 산소호흡기를 단 채 죽어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이후의 시간을 구구절절 쓰기란 힘든 일이다. 나의 감정적인 상태를 배제하고 짧게 요약하면, 나는 연락을 받은 그날, 바로 다음날 한국으로 귀국하는(정확하게는 프랑스에서 한국에 다녀오는) 왕복 비행기표를 카드로 긁었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인천으로 들어가 일산의 내 집에 가서 차를 끌고 제천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무려 30시간에 가까운 여정이었으며 다행히 발인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둘째 날 밤 자정에 도착했다). 이후 부모님과 시골집에서 며칠 시간을 보내고, 일산 집에 다시 돌아와 몇 가지 일을 처리한 후 다시 파리로 날아가서 곧바로 12시간 소요되는 야간버스를 타고 프랑스 남부 바욘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까미노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갔었어야 했을까. 이제는 정말 그 이유를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까미노가 나를 불렀다’는 핑계가 없으면 내가 극복한 그 수많은 어려움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설명하면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길인 까미노 프란세스를 완주하고 돌아왔다. 걸으면서도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라는 의문이 종종 샘솟았지만 나중에는 희미해졌다.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걷기 위해 갔고, 걸었고, 다시 돌아왔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 여정을 단순한 말로 정리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에 여행기로 남겨보고자 한다. 내가 가진 능력은 글쓰기밖에 없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미 우리나라엔 수많은 산티아고 여행기가 나와있고, 루트는 대부분 똑같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내용이 담겨있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똑같은 까미노 프란세스라 할지라도 저마다 자기만의 까미노를 만들어가는 법이다.

나의 까미노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길을 돌아가야 했던 그 시간까지 포함된 것일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신 제2의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었고, 나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할머니가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며 그 부재에 적응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나는 까미노를 걸으며 보냈다. 사십 대 중반, 인생의 정중앙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하는 시기, 까미노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밖의 많은 경험과 느낌들은 오직 나의 까미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여기 나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일자 별, 시간 순서대로 여행기를 연재할 계획이나 일부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워낙 긴 여행이라 내용이 많아서 마무리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참, 앞 부분은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2편이상 업로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작가가 포기하지 않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홍아미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 개요

프랑스길(까미노 프란세스)

생장피에드포흐 -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걸은 기간 총 36일. 공식 기록 779km

생장 출발 날짜 4월 14일, 산티아고 도착 날짜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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