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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묭 Feb 23. 2017

현대의 미술관

첫번째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형성된 것은 근대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은 Museum, 미술관은 Art Museum이라는 단어로 각각 번역되는데 이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미술관이라는 단어는 박물관 중에서도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을 중점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즉 미술관은 박물관이라는 방대한 개념적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미술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박물관’이라는 말은 19세기 유럽에서 개최되기 시작한 박람회World Exposition에서 유래했다. 1793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 공공 미술관의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당시 유럽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러한 미술관들보다 만국 박람회가 훨씬 시각적으로 다채로운 공간이었다.1) 박람, 이라는 한자어는 博覽이라고 쓰고 오만가지 것을 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출발하여 이 박람회장이라는 공간을 ‘박물관’, 즉 오만가지 것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데에서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박람회는 19세기 서양의 근대 문명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때 19세기 서양의 근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새롭게 발생한 근대 자본주의의 생산물들을 전시하는 산업의 디스플레이의 현장을 의미하는 한편 식민 권력을 재현하는 ‘제국의 디스플레이’의 현장을 의미하기도 했다.2)

 박람회장에 있던 전시 공간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민속촌’ 전시이다. 이 민속촌 전시가 시작된 것은 1887년 파리 박람회부터였으나 박람회의 본격적 중요 행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889년의 파리 박람회 때였다. 파리 박람회의 주최는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데려와 원주민 촌락을 만들어 그곳에서 살도록 했는데 원주민들 중에서는 추운 기후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있었다.3) 전시라는 형태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라는 이분화 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보는 행위 자체와도 연결 지어 볼 수 있는데 무언가를 감상하는 행위는 보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보여지는 대상이 있기에 가능하다. 박람회장에서 전시되었던 인종들은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보여지는’ ‘전시품’이었고 그렇기에 대상화되어 결코 주체로도 혹은 타자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주체도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주체와 대상화 된 타자라는 개념은 권력 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주체에 의해 ‘보여지는’ 이 대상 또한 주체를 볼 것이라는, 보고 있는 주체 역시 이 대상에 의하여 보여지게 되며, 그를 통해 대상화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건 이 대상화 된 타자에 대해 주체가 우월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지배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화는 두 가지 형태로 작동하는데 하나는 이러한 비하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화라는 형태이다. (그러나 사실 이 우월한 이상화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고 결국 이것은 스스로의 고립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 두 가지는 어떤 의미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881년 제2회 내국 권업 박람회를 첫 경험 삼아, 조선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러한 국제 질서에 편입해보고자 노력한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는 미국 화가였던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초상이 전시되었다. 파리 만국박람회 공식 미국 측 도록에는 보스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고, 그의 이름은 등급 110의 ‘Public or private movements for the welfare of the people’ 부문에서 발견된다. 그보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그룹 14의 ‘사회 경제, 위생학 등’에 들어 있는데 이는 주로 인종이나 각 나라의 사회적 전형을 비교하는 초상화, 사진, 도표 등이 주가 되는 전시였다.4)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인종을 비교하기 위해 고종의 초상화가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한국에서의 어진은 타인에게 공개될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고 기록화에서는 왕의 모습을 의자나, 일월오봉병과 같은 기물로 대신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보스라는 서양인 화가에 의해 ‘관찰 대상’이 된 고종은 ‘만국박람회’라는 공간에서 ‘인종’의 대표로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박물관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이러한 권력 관계를 함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미술관들은 이러한 타자화를 극복하고, 타자화를 통해 지워진 권력 밖의 존재들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까지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관해 내가 길게 적은 것은 그리하여 현대의 미술관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어디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개념이 나뉜 것은 일본적인 시스템의 잔재이다. 본래 미술관이라는 단어는 만국박람회의 산업관들 중 하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이곳은 수공예품들까지 모두 전시했는데 이 공간은 일본의 문화가 어떻게 유럽에 선전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서양이 일본을 신격화하며 대상화 한, 자포니즘의 주요 대상은 도자와 우키요에였는데5) 이 모두 큰 범주에서 수공예품에 속한다. 이러한 이상화를 일본은 자기 자신에게 내면화했다. 미술관은 이후 당대 산업을 진흥하는 공간으로 분화하게 된다. 이는 미술이라는 단어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Fine art라는 의미를 갖기 전에는 Kunstgerwerbe, 즉 산업을 진흥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의 공예적인 것들을 전부 아우르는 말이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관 역시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질서에 따라 사물들을 배열함으로써 사물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공적 기억을 가시화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박물관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현대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서로의 영역을 다른 곳에 둔다. 박물관이 모던 이전의 것들을 다루는 공간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명칭이 Modern&Contemporary Art of Museum이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미술관은 모던과 동시대, 즉 모던 이후에서 지금 바로 여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다루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미술관은 절대 현 시대의 담론에서 피해갈 수 없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앞에서 적었듯, “일정한 질서에 따라 사물들을 배열함으로써 사물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공적 기억을 가시화하는 공간”이라면 이때의 질서란 무엇이 되어야 하며 어떤 공적 기억을 어떻게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담론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 언어의 기원이 탄생한 지점에서 벗어나 그 과거를 반성하고 또 다른 권력 관계를 낳는 것이 아닌, 그 권력 관계를 부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뮤지엄Museum과 갤러리Gallery를 구분 짓는 가장 큰 기준은 뮤지엄이 당연히 해야 할 두 가지 기능의 지점이다. 뮤지엄은 콜렉션Collection의 기능, 즉 수집의 기능과 교육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시도를, (지금은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을 지도 모를 이 시도를) 나는 외국의 어느 공간이 아닌, 주변에서 찾고자 한다.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은  2013년 9월 24일 서울시립미술관의 산하 기관으로 개관한 비교적 새로운 공공 미술관 중 하나다.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문화적 접근성이 낮았던 곳이다. 이곳에 미술관을 개관한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내걸고 있는, 포스트 뮤지엄과 글로컬 미술관이라는 비전과 미션에 기반한다. 이는 커뮤니티 친화적인 미술관 더 나아가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소외 계층’ 역시 포용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비전과 미션 중 글로컬 미술관이라는 지향점이 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친화적인 미술관을 지향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게 보인다. 글로컬이라는 것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의 조어로, 세계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강조하고자 함을 표명하는 말이다. 세계라는 공간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모두가 동등한, 그와 동시에 전부 다른 ‘지역’밖에 없음을, 그렇기에 이 모든 지역들은 세계를 의미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렇기에 세계와 지역을 동시에 강조하는 미술관은 커뮤니티에 당연히 친화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글로컬이라는 단어에서 한 번 멈추는데 글로컬이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글로컬이 지역의 다양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지역들이 가진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들을 세계로 연결 짓는, 무언가 공통적인 세계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모든 다양성을 관통할 수 있는 공통된 지점이라고 믿는다는 점은 의심스럽다. 마치 이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라는 개념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는 여러 다양한 지역들의 조합이다, 라 정도로 읽힌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지역들을 더하면 하나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해낼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계는 다양한 지역들의 조합이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지역들의 산발에 불과할 것이다.)



 1) 김영나, 「‘박람회’라는 전시 공간: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조선관 전시」,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Vol.13, 2000, p. 75

 2) 윤세진, 「미술의 탄생」,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두산동아, 2008, p. 27

 3) 김영나, 위 논문, pp. 78~81

 4) 김영나, 위 논문, pp. 95~97

 5) 이와 관련된 논문으로, 신상철,「자포니즘(Japonisme)의 근원과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프랑스 모더니즘 형성 시기 일본 미술의 수용 과정과 전시 고찰」,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Vol.40, 2014, pp. 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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