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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묭묭 Oct 14. 2019

“잠자는 건 죽는 것, 죽는 건 잠자는 것”

강성은,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어린 시절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결정되어 버리지만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을 바꿀 수 없다. 그 시간의 흔적은 외상이라는 형태로, 마치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1) 새겨진다.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은 무엇일까? 결코 가질 수 없던, 부모의 애정이나 자신의 세계를 지켜주는 다정한 사람들의 지지……


좁고 어두운 방

창가에 기대서서

마지막 햇빛이 떠나가는 걸 본다     

오늘 죽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오늘 산 자는 영원히 살지 않고     

결코 다시 죽지 않으리     

마지막 햇빛이

사라지는 걸 본다

- 「안티고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자신의 형제,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죄목으로 “좁고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안티고네는 자결한다. 그렇기에 이 순간은 “마지막 햇빛이 떠나가는” 순간이고 목숨이 끊기는 그 순간은 “마지막 햇빛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시인은 이 순간을 다르게 말하고 있다. 죽게 되는 그 순간은 오히려 “영원히 죽지 않는” 순간이며 “결코 다시 죽지 않을” 것이라고. 그건 아마 “죽으면 꿈을 꾸기 때문”2)일 거다.

 나는 지금껏 시는 현실에서는 온전한 시로서 존재할 수 없고 그저 시편으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시인은 “환상의 빛”을 보는 존재, 사람의 인식을 넘어서는 공간과 순간을 보는 존재이며 그런 걸 옮기는 것이 시인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이건 사실 죽은 자가 꾸는 꿈인 게 아닐까? 죽기 직전 안티고네의 외침은 그 임계에 서 있는 듯하다.


우린 다 죽었지

그런데 우리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우린 이미 죽었어요

말해도 모른다

매일 갑판을 쓸고 물청소를 하고

죽은 쥐들과 생선, 서로의 시체를 바다로 던져버리고

태양을 본다

태양은 매일 뜨지

태양은 죽지 않아

밤이면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죽음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으며

울어도 바뀌는 것은 없으며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은 쌀과 검은 물과 검은 밤의 폭풍을 오래오래

이가 녹아 사라질 때까지 씹는다

침수와 참수와 잠수의 밤     


언젠가 우린 같은 꿈을 꾸었지

아주 무서운 꿈이었는데

꿈에서 본 것을 설명할 수 없어

잠에서 깬 우리는 울고 있었다     


아침이면 다시 태양 아래 가득 쌓여 있는

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     


풍랑을 일으킨 거센 비바람은

누군가의 주문이었다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출항은 순조로워 보였는데

날씨는 맑았고

우리가 당도할 항구의 날씨는 더 맑고 따뜻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의 너의 그의 그녀의 너희의 그들의 우리의

아주 무서운 꿈속에서     


그곳에 당도하기를

우린 아직도 바라고 있구나

이제 우리 자신이 무서운 바다의 일부인 줄도 모르고

- 「유령선」


「환상의 빛」에서 화자는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여름에서 벗어나지 못"3)하는데, 입술이 파래지는 순간 그리고 “잠자는 건 죽는 것, 죽는 건 잠자는 것”4)이라는 말처럼 그 순간 시작되는 건 꿈―즉 새로운 삶이다. 그렇기에 「유령선」에서 화자(들)는 이미 죽어 있다.

죽으면 꿈을 꾸듯, 화자들은 말한다. “죽음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으며/울어도 바뀌는 것은 없으며/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는 이런 잠을 빙하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런 빙하라고 해도 언젠가 녹는다. 빙하 속의 존재에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순간은 잠이 끝나는 순간이다.


 하나만 생각하자. 꿈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깨어나고 나면 꿈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꿈을 꾸던 시간은 사라지고 어디에도 흔적은 없는데, 우리는 무슨 행위를 통해 그 세계를 증명하며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현실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꿈에서의 삶 역시도 같은 삶이라고 한다면 꿈의 끝에서 우리는 현실에서의 삶과 꿈에서의 삶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러나 택한다고 해도 꿈은 끝난다. “죽어야만 가장 먼 곳을 여행할 수 있”지만, 여행은 돌아올 수 있을 때에 여행이 된다. 깨어날 수 있을 때 꿈은 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너무 오래 잠들면 꿈은 오히려 “나를 떠나”버린다. 죽은 자의 꿈이 끝나면 죽은 자는 어디로 가버리는가? 과거는 어디로 사라졌지? 내가 가지지 못했던 그 애정과 지지는 그런 꿈들과 같다. 꿈꾸었을 때 현실이 되었지만 나는 가진 적 없고 사라져버린.

 애도는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슬퍼하고, 가엾어 하고, 사랑한다는 애哀와 슬퍼하고, 두려워한다는 도悼가 만난 단어다. 그렇기에 「유령선」의 꿈은 “아주 무서운 꿈”이 된다. 우리는 꿈을 바꿀 수 없고 꿈은 현실을 바꾸지도 못한다. 그러나 애도해야 한다. 작별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 버”릴 때에도 내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듯.5) 마지막 햇빛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결코 다시 죽지 않”을 것을 생각하는 안티고네처럼.



1) 파스칼 메르시어(전은경 옮김), 『리스본행 야간열차』, 들녘, 2007 “계획된 것도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불가피하고도 쉴 새 없는 부담의 흔적-절대 없애지 못하는 화상의 흉터처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려.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에 달군 철필로 쓴 글씨처럼 새겨지지 우리는 낙인찍힌 글을 갖고 해석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면서도, 우리가 그걸 정말 이해했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어.”

2) 셰익스피어,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3) 강성은, 「환상의 빛」,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여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4) 셰익스피어, 같은 책

5) 강성은, 「죄와 벌」,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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