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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절 Mar 23. 2017

정치스타트업에서 보낸 1년

지옥에서 보낸 1년이 아님

정치스타트업 와글WAGL(We All Govern Lab)은 내 인생 첫 번째 직장이다. 부전공으로 듣던 수업에는 유독 회식이 많았다. 옆자리에 앉은 타 학과 학우가 "혹시 제가 일하고 있는 와글에서 리서처로 잠깐 일해 보실래요?'해서 들어오게 되었다. 얼핏 보면 내가 자유롭고 도전적인 영혼 같겠지만, 알고 보면 나만큼 무력하고 안정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도 또 없을 것이다. 3개월 파트타임으로 들어온 내가 어느새 1년을 채워간다. 그동안 느낀 점을 정리해본다. 


글은 와글에서 본 1.스타트업 2.정치 3.정치스타트업에 관한 느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 첫 명함을 와글에서 받았다.


정치'스타트업'

나는 의심이 굉장히 많다. 누가 날 쳐다보면 '사이비?'라고 의심한다(실제로 사이비에게 잘 걸린다). 와글에 대해서 기사를 검색해보고 재미있어 보여 면접을 보러 갔다. 근데 면접을 보러 나온 영환님이 그 반테 안경 때문인지 아니면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 때문인지 너무 사기꾼처럼 보였다. 나는 '정치스타트업이라니, 허세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게 아닌가?'라는 공격 태세를 갖고 면접에 임했다. 게다가 당시 와글 홈페이지가 공사 중이라 기사 외엔 내가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내가 더 많이 질문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허울만 좋은 게 아니라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내 취향저격이었고 빠른 스피드가 맘에 들었다. 내가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재정 상황을 들어보니 월급은 꼭 챙겨주고 있었다. 회사는 망해도 내 월급은 나올 것 같아 합류했다. 

인턴한지 한달 째, '빈둥데이'라고 일을 시키는 대신 맛있고 비싼 것을 먹인 뒤 그림책 카페에 데려갔다. 나는 현혹되었다.


정규직이 되다  

그렇게 3 개월만 일할 줄 알았는데 정규직이 되었고 모교에서 '스타트업에 취직한 선배'로 후배들 조언하러 오란 연락이 왔다. 그래서 피피티를 만드는데... 첫 장부터 막혔다. 스타트업이 뭐지? 네이버를 검색했다. 사실 일하는 몇 개월간 '스타트업'을 여러 번 네이버에 검색해 왔고 매번 까먹었다(과거 인턴 할 때 스타트업과 스핀오프 현황을 조사하는 게 내 일이었던 건 비밀이다). 

그렇다고 합니다. 뒤돌아서면 또 까먹겠지...

첫 직장을 과감하게 스타트업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 내가 언젠가 유학을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같은 안전성 덕후, 미래 보장 덕후는 스타트업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회사가 없어진다면?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할 때, 스타트업에서의 경력으로 내가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을까? 등등. 어차피 유학을 갈 것이니까 여러 걱정을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첫 직장을 스타트업으로 선택한 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먼저 스타트업에선 빠르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다. 영환님은 자주 '깃발 꽂는 게 임자'라고 말했다.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어도 아이디어를 내면 잘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내가 자꾸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나에게 일이 몰리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진행하는 능력을 키웠다. 내 한계도 배웠다. 그 전엔  'oo분야 전문가와의 대화' 같은 강연을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었다면 이젠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들어 이론을 배우면 바로 써먹을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느낌이 재밌고 즐거워서 나는 유학 준비를 미뤘다. 

(너무 이상한 아이디어를 내면 사람들이 막아주었다. 만화 부추부추 민주주의의 주인공은 '진부추'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화하면 함께 진화한다. 사람들이 막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조직문화

스타트업에선 회사의 성장과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직업사회학'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체험할 수 있다! 작은 회사에선 한 명이 나가고 다른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분위기가 크게 변한다. 내 한 사람의 존재가 조직문화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사회적이고 인간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나도 작은 조직에 있다 보니 조직 문화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 이 작은 조직이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굴러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물론 고민과 이론에 대한 공부가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음.....


와글 사람들이 워낙 좋아서 그런 고민을 할 가치가 있기도 했다. 처음에 와글을 나에게 소개한 학우가 와글을 너무 찬양해서 나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어, 속으로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의심했다. 물론 겉보기만큼 모든 게 다 좋진 않았지만 일단 사람 하나하나가 너무 좋고 웃겼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표님이 휴가 간 사이 우리끼리 오리배를 타러 가기도 하고 대표님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배틀을 뜨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미친놈들!' 소리가 자주 나온다. 와글 터가 안 좋아서 또라이들이 모이나 싶기도 하다. 


'정치'스타트업 

청년 

"왜 요즘 청년들은 정치를 안 할까?" 대표님과의 첫 면접 때 대표님이 물어본 질문이다. 나는 그때 대략 '운동권', 소위 말하는 '꿘충(운동권과 벌레충을 붙인 신조어)'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더 일하면서 대표님이 원하는 정치참여는 내가 생각하는 정치참여보다 더 깊은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게 세대차이인 것 같다. 


나는 청년들이 정치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취업하는데 평균 11개월 걸린다. 11개월이면 무난하다. 내가 문과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주변은 1년 반 정도 걸린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시작해서 그다음 년 하반기에 취직이 되는 사람이 많다. 상반기엔 사람을 잘 안 뽑기 때문이다. 즉 1년 반을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패기가 없다. 왜냐하면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정치에 참여한 경력은 취직에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치 참여한 기간을 이력서에 공백으로 두면 기업 면접에서 안 좋게 본다. 정치 활동이 잘 안 되어서 그만두고 일반 기업 취업을 준비하게 되면 11개월 정도는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야 한다. 

정치 활동이 좀 잘 되어서 계속 하려고 해도 현실적 벽이 많다. 지금 선거법상 출마하려면 기탁금 1,500만 원을 내야 한다. 정당에서는 공천을 받기 위해 면접 비용도 몇 백 만원이다. 심지어 면접을 아예 못 봐도 돌려받지 못한다. 문턱이 너무 높다. 돈을 어떻게 해결해도 이미 지역에선 특정 정당, 특정 후보가 꽉 잡고 있고 어떻게 선거운동해야 하는지도 잘 안다. 


청년들의 정치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 '정치'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진저티가 낸 밀레니얼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은 사회에 관심은 있으나 참여할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67%로 그 외의 선택지 사회에 관심 있으며 참여하고 있음, 사회에 관심 없음 보다 많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부, 선행의 가치를 보고 자란 세대며 '액티비즘', '피씨함(Politicaly correct)'에 익숙하다. 예컨대 2005년 정도만 해도 연예인이 기부를 했다고 하면 댓글에 욕이 많이 달렸다. 해외에 했으면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다, 한국에서 하면 다른 분야에 더 어려운 사람 많다, 기부하고 왜 티 내냐 등등의 악플 천지였다. 지금은 기부했을 경우 칭찬 일색이다. 문화가 바뀐 것이다. 

밀레니얼은 기성세대가 원하는 수준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시위에 나가고, 특정 정당에 속하고, 운동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방식으로 참여한다. 페이스북의 기사를 '좋아요'하고, 단체를 후원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굿즈(goods-스티커, 배지 등)'을 구입한다. 9시 뉴스를 챙겨보진 않아도 소셜미디어 속 정치 짤방이나 포털 뉴스를 챙겨본다. 

텀블벅 가서 오까네가 엥꼬나면 기분이 조크든요

다만 사회이슈, 문제에 관심이 있고 행동해도 자신의 행동이 '정치'라고 네이밍 되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페이스북에 정치적인 글을 '좋아요' 하면 그게 캡처되어 단톡방에서 그 캡처가 돌며 '쟤 꿘충이래', '빨갱이래'하고 욕먹기 쉽다(필자는 그런 시선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좌파 꼴페미'로 낙인찍히고, 주변 남자들 단톡방에서 조리돌림 당했다는 제보를 자주 받았다. 인생 잘 살고 있단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라는 회의와 질문도 이해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방식엔 '그래서 어떻게 먹고살아요?'라고 묻고 싶다.

일제강점기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지사적 마음을 안 가질 수 없었다. 해방 후에도 같다. 독재에 신음하면서, 배운 사람들에게 요구된 게 지사적 사명감이었다. 지금 시대는 사명감이 없는 시대다. 나쁘게 말하면 ‘소시민 세대’, 나만 알고 큰 세대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나도 역사에 뛰어들어야 하나? 근데 아르바이트하기 바쁜데….’ 

이게 역설적으로 더 좋은 것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촛불 들면 어떤가. 아르바이트하면서 지역에서 정당 만들면 안 되나. 이게 정상이다. 엄청나게 자기희생을 해야 하는 정치적 활동이 아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정치적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각성돼 있다. 지금처럼 각성돼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정치인·기성세대도 적폐다-김상봉 교수가 말하는 2017년 한국 사회 진단·전망·과제 “기성세대는 이미 고갈됐다. 청년들에게 맡기고 물러나야”, 한겨레21, 제1151호)


마을과 조직, 그리고 청년인 나 

와글에 와서 '마을'이라는 말을 들었다. 포켓몬 태초마을이 내가 들어본 마지막 마을이라 먼 얘기로 들렸다. 그런데 내가 평생 산 서울시에서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고 있었다니! 

나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마을 사업의 대상이 된 주민들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 마을 사업의 시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깨우는 데서 시작한다니 말이다. 


와글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갔다가 우리 동네 주민자치위원회?(정확한 이름을 모름) 사람을 만났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 얘길 듣고 어떤 분이 "왜 모르셨어요? 같이 좀 하지."라고 하셨는데, 솔직히.....난.....그 존재를 알아도......하기 싫다.......

나와 비슷한 또래 만나는 것도 피곤해서 새로운 사람 잘 안 만나는데, 동네 모임 가서 어른들이랑 부대끼는 건 더 자신 없고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남자 친구 있니(없어서 더 행복해졌는데), 결혼 언제 하니(비혼주의입니다), 직업은 뭐니(스타트업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일단 어른들 단골 이 세 질문에서부터 난 어른들에게 예쁨 받긴 틀렸기 때문이다. 


왜 마을에 청년이 없을까. 왜 청년들은 조직을 이루는 걸 싫어할까. 먼저 청년들은 바쁘다. 어른들 보기엔 노는 것 같아도 나름 바쁘다. 자신이 투자한 비용의 이익을 따진다. 최저 실업률을 자랑하는 요즘 청년들에겐 '스펙'이 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스펙이 되지 않는 활동을 할 여력이 없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대외활동도 청년들을 부려먹고 이용해먹는 허울 좋은 곳이 많은데 스펙이 되지 않는 어른들의 활동에 가는 건 더 리스크가 큰 것이다. 

그래도 가끔 모이는 애들이 있긴하다. 예컨대 난 민우회 소속이다. 모임에 가는 게 즐겁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같이 일한다. 왜냐하면 민우회 모임에 가면 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른데? 민우회에 가면 내가 여성인권 상황에 대해 가지는 불만을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마을에선 내가 그렇게 공감을 느끼고 싶은 불만조차 없다. 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까. 꼭 '그 마을에서 모여야 할' 이유가 생긴다면 청년이 모이지 않을까. 


'정치' '스타트업' 

요즘 애들과 수평적 조직문화 

친구들이 '너희 회사는 그래도 수평적이지 않아?'라고 물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근무환경은 최상위권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평적이라.......(아련)


와글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노오력이 꼭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다들 알죠). 가장 쉬운 걸로는 서로 이름을 쉽게 부르기 위해 별명을 만들었고, 전체적으로는 회의에서 돌아가면서 다들 자기 의견을 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되기보단 시키니까 한 마디 하는 느낌이었다(그래요 대표님......저 할 말 없는데 대표님이 시켜서 억지로 쥐어짜 내 말한 적도 많아요......). 그건 대표님에게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수평적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이 능력과 사안에 대한 이해 수준이 비슷해야 하는 것 같다. 와글의 멤버들은 능력, 나이, 경험 다 너무 제각각이었다. 내가 맡은 분야인 미디어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다른 분야, 특히 정무적 감각에선 더 경험이 많은 분들이 끌어줬으면 했다. 때로는 이런 일을 왜 시키지? 했지만 하다 보면 큰 그림에서 움직였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가끔은 너무 그림이 커서 소오름 돋음). 제각기 다른 이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모든 사안에 대해 전체회의를 거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 같다.


와글은 스타트업치고 멤버 간 나이의 갭이 큰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세대 차이 문제도 불거졌다. 

위에서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싫어하는 '요즘 애들'.  하지만 시키지 않으면 일을 안 하는 '요즘 애들'. 글쎄, 요즘 애들은 일을 시키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가르쳐주지 않고 시키는 '윗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다. 

신입사원의 무한루프

나의 사수는 영환님이었는데 영환님에게 참 많이 배웠다. 영환님의 별명은 피키picky, 그만큼 까다롭다. 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설명충?(설명에 충실하다 할 때의 충. 벌레 충 아님)'할 정도로 하나하나 알려주고 부드럽다.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영환님은 명함을 내미는 비즈니스 매너부터 일처리까지 알려주었다. 가르쳐 준 일을 못하면 엄청 짜증을 냈지만 이미 영환님이 분명히 가르쳐줬기 때문에 괜찮았다.


가끔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짜증을 부렸지만.......영환님이 일에 있어서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기획하는 걸 보면 그래도 내 사수라 다행이야! 하고 꽁한 게 풀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존중을 하고 자율권을 줬다. '이건 나보다 네가 잘 알고 잘하는 분야야. 네가 일을 기획해 봐'라는 인정. 존중해준다는 느낌 때문에 난 시키지 않는 일도 찾아서 할 수 있었다. 

안 시켜도 즐겁게 새벽 세시까지 야근하는 모습이다(밤엔 사무실이 추워서 너구리 잠옷을 입어야 함).

그럴싸했다 

와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와글 굿즈를 줬다. 의외로 와글 리플릿과 스티커가 너무 예뻤다! 내가 와글의 소속이 아니어도 붙이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후에 완성된 홈페이지도 '힙 hip'했다. 힙스터들이 모여 있을 것 같았다(물론 6시내고향의 감성을 가진 나는 힙스터를 어려워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한다). 친구도 내가 정치 어쩌고 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와글 홈페이지에 들어오더니 와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했다. 

"홈페이지가 구리면 뭔가....짜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거든." 

앞서 말했듯 청년들은 정치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정치'라고 프레임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와글은 그런 점에서 브랜딩을 참 잘 했다.

와글 아이덴티티 어플리케이션


친구들은 '난 정치는 부담스러운데 와글은 좋아'라고 말했다. 와글은 정치에 대해 완전히 새롭고 쉬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책 이름부터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아닌가(이제는 책 속의 사례가 꽤 유명해졌는데, 스토리펀딩 초기엔 한글로 검색하면 거의 와글의 글만 떴다). 디자인도 정치, '운동권'과 느낌이 멀었다. 언어도 최대한 쉽고 다정하려 했다. 예컨대 페이지에 글을 쓸 때 기존 정치권에서 많이 쓰는 워딩을 피하고, 청년들이 많이 쓰는 언어로 풀어쓰는 등의 노력을 했다. 


왜 정치 관련 단체들은 브랜딩에 있어서 청년을 고려하지 않을까. 와글과 함께 작업했던 디자이너님이 과거에도 정치 관련 디자인을 한 적 있는데, 무조건 4,50대 층을 고려한 디자인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물론 4,50대 층이 핵심 투표층 이긴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4,50대에게 정치적인 이슈로 관심을 끄는 것은 쉽다. 와글 페이스북 페이지도 초반엔 4,50대 남성이 주 고객이었다. 2,30대를 타겟팅해도 4,50대는 금방 따라왔다.


왜 '스타트업'이어야했나 

와글은 왜 행정기관이나 정치권에 들어가지도 않고, 시민 단체와도 다른 포지션을 두었나. 


정치 '스타트업'만의 장점은 확실하다. '빠르다'는 것. 영환님이 과거 공무원일 때는 주민 대상 사업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만 위해서도 4,5번은 결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의성에 맞는 빠른 사업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와글은 조직이 가볍다. 사람이 적고 회의와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예컨대 필리버스터가 터졌을 당시 시민도 이에 참여해야겠단 생각에 10여 시간 만에 필리버스터닷미 사이트를 만들었다(시민이 자신의 필리버스터를 쓸 수 있는 사이트로, 실제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중 이 사이트의 글을 읽었다). '시민도 여기에 참여해야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만 바로 움직였다. 예산을 따내고, 결재하는 긴 과정을 생략하고 움직여 빨랐다. 


기존 제도의 아쉬운 점을 보충하기도 한다. 국내최초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은 시민청원제도가 있지만 만들었다. 지난 19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입법청원된 227건 중 단 2건만이 채택되었다. 177건은 논의조차 못된 채 폐기되었다. 국회톡톡은 이런 문제인식에서 시작했다. 

기존 입법은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온갖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 일반 시민이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 적극적으로 입법청원을 했어도 내 청원이 어디로 갔는지 찾기 어려운 것이다. 국회톡톡은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시민이 국회톡톡에 제안을 하고, 일정 정도의 사람이 모이면 와글이 해당상임위 국회의원에게 메일을 보내 이 제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의원이 그 제안에 동의해서 함께 하겠다, 혹은 반대한다 등의 의견을 보내주면 사이트에 공개한다. 의원이 법을 발의하거나, 관련 토론회, 보도자료를 낼 경우 국회톡톡에 공지 한다. 이 모든 것을 '타임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민이 자신의 참여가 어떻게 정치권에 반영됐는지 보여줘 정치효능감을 높이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비슷하단 이야기도 있고 맞는 말이지만, 시민단체가 주로 특정 의제에 집중한다면 와글은 정치 '시스템' 자체에 시민이 참여할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 




이게 내가 1년(정확하게는 11개월)동안 느낀 점이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일부러 안 쓴 부분도 있고 좀 건방진 면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솔직하려 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자 쓰기 시작한건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1년을 헛되게 보낸 건 아닌가보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사수 영환님도 '나는 왜 정치스타트업을 하는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개인적으론 '별로...뭐라는거야....웅앵옹 쵸키포키'지만 궁금하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길(글 주소 https://brunch.co.kr/@mr1000/1)  



안 읽어도 되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어제 미스핏츠, 알트, 청춘씨:8아와 같은 청년 대안미디어를 시작한 진영님과 얘기를 나눴다. 대부분 학생이었던 알트 멤버들이 각자 직업을 구하게 되며 알트를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영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내부에서 어떤 이유로 정리하게 되었든, 외부에서 보기엔 아쉬움이 많나 봐요. 더 이상 시리즈 안 나와요? 하고. 청년 대안 미디어라는 게 존재하는 것 자체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찡했다. 존재 자체의 의미. 

나는 정치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정치가 바뀔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 한창 주변에서 벌어 난 페미니즘 이슈와 세월호로 인해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밤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42킬로까지 살이 빠졌다. 친구가 '넌 세상 모든 힘든 짐을 혼자 지려고 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어떤 선배는 나보고 근대적이지 못한 인간이라고 했다(시발... 근데 맞는 말). 나도 사상, 사회정의, 이딴 거나 신경 쓰는 나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도 못 챙기는데 무슨 오지랖인지. 


빨리 취업하고 돈을 벌어야 해. 이 생각이 강하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기엔 너무 우울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면서 잠을 줄여서 사회 이슈를 얘기하는 만화를 그리고, 민우회 캠페인에 참여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효능감을 맛보았다. 참여하니까, 진짜 변하잖아?


더 많은 사람들이 효능감을 맛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 굿즈를 사고, 시위에 참여하고, 보도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그 때 와글을 만났다. 와글에겐 항상 시민이 주인공이었다.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주인공이란 걸 강조하는 서비스를 냈다. 


많은 사람들이 '와글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 의미를 1년이 지나서야 알겠다. 기성 정치권이 아니고, 시민단체 활동을 하지 않는 개인의 시민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틈을 찾아 관련 서비스를 만드는 곳. 와글. 와글은 서비스를 내면서 이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정치효능감을 일으켜 좀 더 사람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하고, 그 목소리가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할 뿐.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요즘도 틈틈이 비전 회의를 많이 하고 있는데 정무감각 제로에 온라인 기획력도 없는 나는 다른 멤버들의 여러 이야기 중 뭐가 좋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계속 가주면 좋겠다. 시민인 나는, 정치에 불만 100개 있어도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겠다. 와글이 만드는 서비스로나마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와글에서 일하는 동시에 와글의 팬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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