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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코리 May 08. 2022

3월. 워홀의 데이지

꽃그림은 상업적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팔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선입견이다. 모든 그림은 판매를 전제로 하여 제작되는 것이니 꽃을 그렸다는 이유로 돈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앤디 워홀의 꽃그림은 상업적이다. 그는 팔기 위해 그렸다.(판화를 주로 했으니 찍었다는 표현이 더 맞다.)

1982년에 제작한 워홀의 데이지는 예쁘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린 것은 결코 아니지만, 관람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다량으로 제작해서 골라 살 수도 있다.

처음 워홀이 꽃을 소재로 택한 것은 1964년이었다.  송이의 꽃이 자리한 화면이다. 컬러감이 돋보인다. 이파리와 배경은 검정색으로 처리하고,   부분만 형광에 가까운 분홍, 노랑, 오렌지로 입혔다. 꽃을 다룬 것은 그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인 시도였고, 비평가들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캠벨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처럼 산업화의 산물만 다루는 워홀이었기에. 그러나 워홀은 워홀이었다. 대량 생산품을 제작하는 방식과 똑같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꽃을 찍어냈다. 컨베이너 벨트에서 코카콜라 병이 무한 생산되듯이, 워홀의 꽃은 대량으로 만들어낼  있다. 꽃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동동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팝아티스트 답게, 워홀은 잡지에 실린 꽃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마릴린 몬로 판화를 만들 , 마릴린 몬로를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차용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평론가들은  꽃의 종류를 가늠할  없었는데, 그건 워홀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워홀에게 중요한 것은  꽃이 팬지인지 무궁화인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관찰하지 않고, 그저 본다.” 워홀은 현대 사회의 사건, 사람, 사물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을 꽃을 통해서도 꼬집었던 거다.

워홀의 미감은 요즘에도 유효하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워홀의 꽃을 모티프로 하여 옷과 신발을 만든다. 예술이 이렇게 삶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자연을 한 번 더 ‘보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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