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공짜 빵

#POTD 10


"우리나라 직장인, 학생 70%가 아침식사를 거른다고 해서 무료로 빵을 나누어 드립니다.“


약수역 8번 출구 앞에 있는 빵집 유리창에 적혀있는 글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8시경에 빵을 공짜로 나눠준다. 나도 두 번 받았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지만 단맛이 멀리 느껴지는 갓 구워낸 부드러운 빵이다. 내가 처음 줄을 섰을 때는 몰랐지만 두 번째 줄을 설 때 보니 주로 60세 이상으로 보이는 분들이 빵을 받아간다. 빵을 받으면서 감사의 말을 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빵을 나눠주는 사람도 아무 말 없이 비닐봉지에 빵을 하나씩 담아서 건네준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웬일인 지 줄을 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진을 나중에 보니 빵집 벽에 비켜서서 빵을 바라보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저분은 빵을 공짜로 나눠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닐까?


영어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표현이 있다. 1930년 대 미국 술집에서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서 공짜 점심(Free lunch)을 준다고 선전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점심을 낚싯밥으로 제공하고 걸려든 손님들에게 술로 매출을 올리려는 상술일 것이다. 미국 카지노에서 손님들에게 교통편과 3만 원 정도의 칩(chip)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약수역 앞 빵집은 낚싯줄에 매달린 빵을 나눠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을 보고 있다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유럽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는 배 삯만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기에 배 안에서 좋은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식사 때면 화려하게 차려진 식당에 들어갈 수 없어서 주로 매점에서 빵과 수프로만 식사를 해결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날 저녁 그는 자신이 매일 지나쳐야 했던 식당에서 식사를 해 보려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물었다. "저... 여기 식대가 얼마나 하죠? 종업원이 말했다. "승객들은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데... 모르셨나요?" 


내 주변에도 자신이 받을 자격이 있는 귀한 것들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생들도 그렇다. 매 학기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지도 교수가 애원하다시피 하는 면담 요청에 응하고 찾아오는 학생들은 10%도 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도서관은 그 안에 있는 수십만 권의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시험 기간에만 찾는 곳이 되었다. 자신이 대학 생활에 누릴 수 있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등록금이 비싸다고 불평만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도심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공짜 빵’도 적지 않다. 내가 즐겨 찾는 공짜빵은 도심 속의 자연이다. 서울에도 남산공원, 북서울 꿈의 숲, 월드컵공원, 경의선 숲길 등의 공원들과 청계천, 반포천, 양재천, 중랑천과 같이 30cm 이상의 잉어들이 살고 있는 개천들도 많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 주변 공원에 들러 꽃과 나무들을 보면서 산책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지러운 방을 환기시키며 말끔히 청소하는 시간과 같다.


우리에게는 주변의 ‘공짜 빵’을 즐길만한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 속에 담으려는 마음이 없을 뿐이다. 내가 갖고 잊지 않은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은 쉼 없이 정상만 바라보고 산을 오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멀리 있는 보기 좋은 빵을 찾아 바쁘게 지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나에게 허락된 ‘공짜 빵’을 찾고 그 맛에 젖어보면 어떨지?




매거진의 이전글 알아서 모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