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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담 너머로 던져라

#POTD 11


“어디게?”


“교회? 굉장히 멋지네.

벽돌 사이에 핀 식물도 신기하고... 경비아저씨(?)의 시선도 좋고 ^^“


“그라운드시소 로비 ㅋㅋ”


“그래?? 왜 난 못 봤지?"


3주 전쯤 나의 절친 YJ와 성수동 그라운드시소(groundseesaw)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각자 보고 전시장 앞에서 만났다. 그 이전에는 그와 만나서 같이 전시회 관람을 했었는데 전시를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각자 달라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라운드시소는 서촌, 명동에도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며칠 후 그날 1층 로비에서 찍은 사진을 YJ에게 보냈는데 그는 이곳이 어디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YJ는 7년 전쯤 나에게 처음으로 사진에 관심을 갖게 한 친구이다. 여전히 사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나와 가끔 사진전을 가기도 한다.


전시회를 관람하던 날 나도 로비의 이 장면을 놓칠 뻔했다. 사진전은 건물 지하에서  진행되었고 내가 저 장면을 마주한 것은 사진전을 마치고 1층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한 순간이었다. 유난히 높은 천장, 벽돌 사이로 군데군데 고개를 내민 초록색의 생명체들, 그것들을 배경으로 무심히 앉아있는 경비원이 한 장의 멋진 사진을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가방 안에 있는 카메라를 꺼낼까 생각하다가 내가 있는 쪽을 보고 있는 경비원을 향해 카메라를 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밖으로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YJ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물 안 장면이 눈에 밟혔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손에 쥐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리, 각도를 생각하면서 사진 찍기 좋은 위치에 섰다. 경비원의 시선이 나와 멀어지길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뭔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최대한 침착하게 셔터를 2초 간격으로 두 번 눌렀다. 두 팔을 바로 내렸지만 마음속 두 팔은 하늘로 번쩍 올라갔다.


"왜 난 못 봤지?"라는 그의 질문을 계속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에 그럴듯한 이유가 떠올랐다. 나는 사진을 자주 찍지 않더라도 카메라를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주변을 살핀다. 카메라가 없어서 결정적 장면을 담지 못하는 고통은 카메라를 매일 메고 다니는 무게보다 나에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YJ는 사진에 관해서 나보다 고수이긴 하지만 예전만큼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는다. 물론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 애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망치를 들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고 했다. 가방 안에서 자기를 써 주기 바라던 카메라가 YJ가 못 본 장면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들이 있지만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학생들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모자를 담 너머로 던져라"


존 에프 케네디는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학교에 가는 길에 높은 돌담을 따라 걸어야 했다. 그는 돌담에 올라가 담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담을 넘을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모자를 벗어 담 저쪽으로 던져 버렸다. 모자를 찾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담을 넘어야 했다.


케네디는 1962년에 ‘우리는 1970년 이전까지 달에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NASA와 구체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케네디의 과감한 발표였다. NASA는 그때까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 집중하던 모든 자원과 인력을 오로지 인간의 달 착륙에 투자하여 1969년 7월에 그 꿈을 이루었다. 자신의 임기 후에 역사적 사건을 이루게 한 것만으로도 케네디는 위대하다.    


몇 년 전 은퇴한 KAIST의 H교수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 논문 실적이 탁월했다. 언젠가 그에게 논문을 많이 쓰는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별거 없어요, 학술대회 3개월 전쯤 논문 발표하겠다고 연구제목과 개요를 보낸 후 연구를 시작하고 논문은 마감일에 맞춰 써요!"


내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찾고 있을 때의 일이다. 논문 주제를 결정하려고 1년 이상 연구 중이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도교수는 1주일 후에 우리 연구실에 타 대학 유명 교수님이 방문할 예정이니 각자 연구하고 있는 것을 한 페이지로 요약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당시에 연구주제가 없었지만 도서관에 잠시 들려 자료를 찾고 한 페이지를 만들어 제출했다. 그 연구제목이 나의 학위논문 주제가 되었다. 


모자를 담 너머로 던지는 것은 머리로 계산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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