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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딴짓 좀 해라

#POTD 12


일하던 중 집중력이 떨어져 잠시 페북을 클릭해 보았다. 한 페친이 자신이 새로 출간할 책 표지에 들어갈 작가의 사진을 고르는 중이라며 3장의 사진을 올렸다. 그의 페친들이 그 중 한 개를 선택해 주길 원하면서. 두 번째 사진이 눈에 파~악 들어왔다. 내가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3년 전 나는 그의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던 학생이었다. 그 사진은 수업 시간에 내 책상 바로 앞에서 강의하던 그를 올려다보며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 날도 가방안에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다음날 보니 내가 찍은 사진 보다 첫 번째 사진이 월등히 많은 선택을 받았다. 아쉽지만 1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는 2등으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첫 번째 사진 속 그는 두 손을 모아 깍지 낀 채 입을 가리고 있다. 입을 가리고 있는 사진을 왜들 좋아할까? 나는 저자의 얼굴 전체가 독자에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주쯤 후에 그의 타임라인에 책 표지의 최종본이 올라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표지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그의 사진은 분명 내가 찍은 것이다. 페친들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작가나 출판사의 선택을 받은 모양이다. 책 출간을 축하한다고 짧은 글을 올렸고 그는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며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딴짓하며 찍은 사진이 전국 책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는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딴짓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딴짓의 사전상 의미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이라고 되어있다. 내가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딴짓이란 본연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함이 아니다. 자신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재능이나 재미의 씨앗을 찾아내어 해가 드는 곳에서 물을 주며 키워보라는 것이다. 이 일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쁜 일이다. 딴짓하지 않고 부모, 선생님의 말만 듣고 지내는 학생들은 이런 즐거움을 맛보기 어렵다.  


역사상 딴짓을 가장 잘 했던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닐까? 그의 처음 직업이 요리사였다는 것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과자를 만드는 직업을 가졌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요리사가 되었다. 단순하지만 창의적인 요리를 여러 가지 소개했지만 복잡하고 화려한 음식에 길들여진 그 시대 사람들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고 몸은 뚱뚱해져 갔다. 그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그를 조각, 미술, 수학 등을 배울 수 있는 공방으로 보냈다. 다빈치는 그곳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화가인 보티첼리를 만났고 그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빈치는 한 수도원으로 부터 벽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 받았다. 주제는 '만찬'과 '요리'였다. 그는 벽화를 3년에 걸쳐 완성했고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최후의 만찬'이다. 이후에도 그는 요리사를 계속하면서, 음악, 천문학, 건축학, 발명 등으로의 딴짓을 멈추지 않았다.


'딱 여섯 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의 저자 이선재는 퇴근 후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딴짓하는 사람들을 써퍼(surfer)라고 부른다. 써퍼들은 물에 빠지고 보드위에 올라가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아무리 익숙한 써퍼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학교나 안정적인 직장을 큰 배에 비유한다. 큰 배에 탄 사람은 언젠가 그 배에서 내려야 한다. 그 때가 되면 파도에 익숙치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그 배를 타고 있는 동안 틈틈이 써핑을 해온 사람은 바다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파도가 즐거울 수도 있고 작은 배를 타고 써핑에서 배운 기술로 파도를 읽어가며 항해를 계속할 수도 있다.  


'한 우물만 파라' 이런 말은 이제 낡은 말이 되었다. 한 우물을 파는 동안 누군가는 생수를 또 다른 누군가는 정수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물에 집중하던 시대에서 물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을 딴짓으로 다양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물 보다는 물에 관심을 두어야 하듯이 바뀌지 않는 본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 글쓰기, 말하기 등을 강조하는 이유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하기 위해서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어학연수, 인턴,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이제 그런 것들은 대학생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로 여겨진다. 의무감으로 하는 것들이 즐거움을 줄 수는 없으며 그것은 더 이상 딴짓이 아니다.


“내 자신이 즐거워지는 딴짓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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