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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은 것들

수리수리 마수리~

술이술이 마술이!     


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술은 아니었지만 나의 인간관계를 원활히 해 주었다.     


술을 즐기는 것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술로 인해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고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이 나뉘어 앉는 경우가 많았다. 주류, 비주류로 나누어 앉는 것이 편하다고 했고 비주류석에 앉는 사람들은 왠지 사회생활에서도 비주류인 것처럼 보였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체로 일도 잘했고 나도 그들과 어울려서 ‘주류‘로 살았다.     

 

우리 학과에는 유난히 술을 좋아하는 선배 교수님이 계셨다. 이분은 소주를 마시다가 술에 과하게 취하면 맥주를 드시면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다시 소주를 마셨다. 이분과 저녁에 술을 시작하면 12시 이전에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개 3차까지 계속되었고 그때까지 남는 사람들은 2, 3명 정도였다. 나는 술이 세지는 않았지만 술자리를 좋아해서 거의 끝까지 남았다. 선배 교수는 어느 날 3차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잔챙이들은 도중에 다 빠져나가고 굵은 놈들만 남아! 흙을 체로 거르면 모레나 작은 돌들은 다 빠져나가고 큰 돌만 남잖나!! 하하'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 학교에서 보직을 받아 일하던 시절, 학교 구성원들의 회식 때 자주 '심조간*'이란 건배사를 외쳤다. 심장은 조국에 바치고 간은 **(부끄러운 술 문화가 있었던 내 직장 이름을 차마 적을 수가 없다)에 바친다는 뜻이다. '심조!'라고 한 사람이 목청을 높여 선창하면 '간*!'이라고 나머지 사람들이 힘차게 후창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그때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감정과 함께 그들과의 진한 동료 의식을 느꼈다.     


한 번은 교직원들과의 저녁자리를 마치고 만취 상태로 택시를 탔다. 집 근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다 무릎 높이의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졌다. 술에 취해 길에 누워있던 나를 행인이 경찰에 연락해서 경찰차를 타고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오싹해진다.     


세월이 흘러 학교 일을 열심히 할 군번을 벗어났고 자연히 술자리도 줄었다.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맥주 한 캔이나 와인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음주 습관이 바뀌었다. 저녁에 반주하는 음주 습관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게 장수했던 주변 분들 중에서도 저녁에 반주를 즐겼던 분들을 적지 않았다.     


두 달 전쯤 우연히 유튜브에서 노인내과 교수의 영상을 마주했다. '아니, 노인내과라는 것이 있어?'라는 호기심으로 그 영상을 보았다. 그 교수는 술은 한 잔이라도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자신은 몇 달 전에 술을 완전히 끊었다고 한다. 술은 미세먼지, 담배와 같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1급 발암물질이라고 했다. 적당히 마시면 술이 오히려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술을 마시면 도파민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생성되는데 이것은 우리 삶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도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술에 의지하여 도파민이 생성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다른 일로 도파민이 생성되는 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술을 계속 마시면 술 이외에 음악, 산책, 전시회 방문 등이 주는 즐거움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술에 관한 영상들이 연속해서 나에게 보내졌다. 그것들을 보고 금주가 가져다주는 유익을 알게 되었다. 술을 한 달간 마시지 않으면 일의 효율이 17% 증가하고, 숙면이 가능하며, 혈압과 당의 수치가 떨어지고, 피부색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에게 보내지는 영상 이외에 다른 의학채널들을 검색해 보았다. 구독자가 1만 이상인 채널들의 최근 영상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소량의 음주가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맞았던 것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지 말아볼까? 저녁 식사와 함께 맥주 한 캔이나 와인 한잔하던 반주를 끊어 보았다. 1급 발암물질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저녁 시간이 되어도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3주 동안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공복혈당을 체크해 보니 88이 나왔다. 평소 100을 오르락내리락했던 수치가 80대로 떨어졌다.     


이제 반주를 끊은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저녁 모임이 있는 날에는 사교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집에서 술을 마신 적은 한 번도 없다. 반주했을 때와 비교하면 머리도 맑다. 반주 없이 저녁 식사를 하는 새로운 루틴이 낯설기는 하지만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다행히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2차를 가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고 상사가 술을 권해도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멋있게 들리기도 한다.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흡연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며 멋으로도 여겨지던 시절에는 ‘식후 불연초하면 소화불량(더 많은 버전이 있다)’ 이라며 흡연을 당연시 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하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개인정보 보호 의식이 낮아서 학교 전산시스템으로 우리 대학을 졸업한 나의 아버지나 유명 연예인들의 성적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학생에 관한 정보 이외에는 검색할 수 없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사람과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는 사람!     


5년 전 나는 20명 정도의 수강생과 함께 어떤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사는 화이트보드에 필기하면서 진행했고 정해진 90분 보다 항상 15분쯤 강의를 늦게 끝냈다. 나는 미리 노트를 만들어 배포하면 최소한 20분은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내용을 메일로 그에게 건의했고 다음 날 아래와 같은 회신을 받았다.     


“14년 세월 동안 이렇게 준비하고 강의하며 지내온 터라 지금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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