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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책상 위의 산책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된 물건들이 있다. 시계, 만년필, 교복 등이 그것이다. 그 당시 손목시계를 차거나 만년필을 사용하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었다. 영어를 배우면서 알파벳을 만년필로 그리며 익혔다. 선물로 받았던 독일제 만년필이 떠오른다. 짙은 파란색이었고 잉크의 양을 알 수 있도록 몸통 가운데 투명한 부분이 있었다. 물건을 험하게 사용해서 그런지 클립은 떨어졌고 뚜껑은 조금 깨져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 시절에는 만년필을 사용한 기억이 없다. 그 이후에도 만년필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볼펜이 편해서 그랬던 것 같다.     


3년 전 지인으로부터 라미(LAMI)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그것을 써 보는 순간 중학교 졸업 이후 볼펜만을 써왔던 것을 후회했다. 사각사각 종이를 지나가는 소리와 손에 전해지는 감각에 매료되었다. 그 이후로 만년필을 두 개나 분실했지만 나에게는 3개의 라미 만년필이 있다. 6개월 동안 번갈아 가며  만년필을 사용하였더니 점차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펜촉까지 잉크가 공급되는 어딘가에 잉크가 굳어있는 것 같았다. 유튜브를 보니 펜촉(nib)이 결합된 부분을 맑은 물에 몇 시간 담가 놓으란다. 하루 정도는 잉크가 잘 나오다가 다시 잘 나오지 않았다. 24시간 이상 담가 놓기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3개 중 가장 비싼(그래봐야 10만 원 정도, 만년필 애호가들은 100만 원이 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만년필을 A/S 센터로 보냈더니 1주일 만에 새것이 되어 돌아왔다. 나머지 두 개는 내가 고쳐 보기로 했다. 만년필 전문가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만년필을 완전히 분해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왼손에는 몸통을 오른손으로 펜촉 부분을 잡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당겨서 분해에 성공했다. 예상대로 펜촉에 잉크를 공급하는 부품(feed)의 여러 곳에 잉크가 작은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사람의 혈관도 이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응어리들을 세심히 살펴 가며 맑은 물과 헌 칫솔로 그것들을 완전히 제거했다. 다시 결합해서 써 보니 잉크가 시원스럽게 나오며 잘 써진다. 몇 주 동안 막혀있던 세면대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 만년필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가? 볼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필기감은 설명할 수 있지만 잉크를 넣을 때 손에 묻거나, 가끔 만년필을 분해해서 청소해야 하는 것까지 즐겁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만년필 동호회 카페에는 만년필에 빠져서 만년필 30자루 이상, 잉크 50병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잉크를 평생 다 쓰지 못하면 마시기라도 할 작정이란다.     


6년 전 가을,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여러 의사를 찾은 적이 있다. 한 의사가 '나무꾼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육체 운동을 하면서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산책을 즐겨하게 되었다. 산책(散策)의 사전상 의미는 천천히 걷는 것이다. 그런데 한자를 보면 꾀를 흩뜨리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걷기가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최고의 방법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런 의미에서 만년필 사용은 책상 위의 산책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손목과 손가락의 근육들이 더 많이 움직인다. 나에게 볼펜으로 글쓰기는 포장된 길을 걷는 것이고, 만년필 사용은 낙엽이 흩어져 있는 흙길을 걷는 것이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글이 만들어지고 그 글 속으로 빠져든다. 산책하면서 주변 환경에 빠져들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것이 나를 살린다. 불편한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이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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