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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사진 한 장

#POTD 15



한 달 전 작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치고 사촌 여동생이 40년쯤 전에 찍은 가족사진을 사촌 형제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올렸다. 아마 장례 기간 중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사진 속 나는 머리가 덥수룩한 대학생이다. 그 사진을 보고 형들의 댓글이 이어서 달렸다. 나에게는 형이 셋(사촌 형 두 명 포함)이다.     


뭐든지 정확하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둘째 형이 사진을 보고 글을 올렸다.

[저의 머리 길이가 어중간한 것을 보니 81년 4월 제대 후 그해 여름 어머니 생신에 다 같이 찍은 것 같네요]     

잠시 후 셋째 형이 장교 출신답게 짧고 굵게 한 마디를 올린다.

[81년 6월 이전입니다. 군대 감!]

사진 속 자신은 장발이니 6월 이전이라는 것이다. 그 사진을 찍었던 때는 81년 4월과 6월 사이로 좁혀졌다.     

이런 대화에 큰형이 찬물을 끼얹는다

[나는 80년 8월에 미국 가고 81년도에는 한국에 오질 않았어요]     


사진에는 세 형들이 같이 있는데 형들의 기억을 모두 만족하는 시기는 없었다.     


서로의 기억이 맞는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본다. 내가 대학 3학년이던 1980년에는 5.18 사건으로 전국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대학 동창 모임에서 우연히 그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몇 명은 1, 2학기 모두 휴교했다고 주장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1학기만 휴교했다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한 가지 사례가 더 떠오른다. 타 대학에서 몇 년 전 정년 퇴임한 K 교수는 나와 학회 일을 같이했던 친한 선배다. 하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K 선배를 처음 본 장소는 미국의 M 대학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은 평생 한 번도 M 대학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M 대학 구내식당에서 그와 이야기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한데 말이다.     


이렇게 오래된 기억이 시간에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을 기억왜곡이라고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기억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83년 2월에 이웅평 북한군 대위가 미그기를 타고 귀순한 사건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당시에 공급경보가 울려서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기억한다. <헌트>라는 한국 영화 속에서 다루어진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에서는 국민들이 프로야구 경기를 시청하던 중 공습경보가 울린다. 하지만 귀순이 일어났던 2월은 야구 시즌이 아니고 그 당시는 경계경보만 울렸다. (1983년에는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 이외에도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중공기 귀순 사건들이 있었다. 여러 비슷한 사건들이 집단 기억왜곡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기억왜곡은 왜 일어나는가?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정보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정보나 경험과 기존의 기억을 결합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도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억의 왜곡은 개인의 감정 상태, 주변 환경, 타인의 의견, 자주 되풀이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과 기억의 차이를 경험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기억왜곡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의 기억만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우기는 것과 같지 않을까?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과 가까이하기를 꺼린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기록하고 객관적 사실을 찾아보면 왜곡된 기억을 수정하고 기억력 보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상을 기록하고 일기를 쓴다.     


하지만 기억왜곡의 순기능도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 없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럴 것이다. 사실을 파해쳐서 아름다운 기억을 훼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오래된 사건들을 덜 부정적으로 기억하여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고 비슷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80년 초반에 찍은 사진 한 장도 그렇다. 그 사진에 대한 형님들의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이 글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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