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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핀 꽂은 쓰레기통

#POTD 16

     


매일 아침 연구실에 들어서면 습관처럼 책상 근처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을 본다. 오늘도 말끔히 비워져 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인다. 원통형 쓰레기통 윗부분에 사무용 집게 3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물려 있다. 누군가 쓰레기통과 비닐봉지를 깔끔하게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마치 그 모습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모아서 핀을 꽂은 것처럼 보인다. 연구실을 청소하는 분이 그렇게 한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92년부터 지금까지 연구실을 사용해 오는 동안 청소담당자는 적어도 10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어느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구실 청소를 했다. 지금처럼 매일 청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웃는 얼굴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일하는 40대 후반 정도의 그녀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녀를 ‘두건녀’라고 부른다. 물론  마음속에서만!
    

내 연구실 밖 복도 끝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10개 이상 가지런히 놓여있다. 건물 내 연구실, 실험실 등에서 교수, 교직원, 학생들이 키우다가 관리 부주의 등으로 사망 진단이 내려진 화분들은 복도로 나온다. 두건녀에게 버려 달라는 표시이다. 그녀는 이 화분 중에서 회생이 가능한 것을 정성으로 살려내 복도 끝 햇볕 드는 곳에 작은 화원을 만들었다. 내가 키우던 용설란도 한동안 버려졌었는데 다시 회생하여 6개월 만에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렇게 남다른 열정으로 주변을 밝게 하는 사람에 관한 책이 있다.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2백만 권 이상 판매된 '우체부 프레드(The Fred Factor)'가 그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프레드는 저자인 마크 샌번의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이다. 어느 날 샌번이 출장을 가게 되자 프레드는 우편물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배달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프레드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등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컸다. 프레드를 통해서 사람들은 즐거워졌다. 프레드의 열정에서 영감을 얻은 샌번은 성공하는 삶의 4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회사에서 지금도 프레드처럼 모범이 되는 사람에게 '프레드상'을 주고 있다. 샌번이 만든 4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다.     


첫째, 당신의 역할에 관계없이 누구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일과 삶에서 성공의 핵심이다.

셋째, 모든 상호작용에서 남들을 위한 가치를 더하는 방법을 찾아라.

넷째, 자신의 지속적인 성장이 위 원칙들에 대한 기본이다.     


10년 전쯤 이태원의 한 가방 가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가방을 보면 명품인지 짝퉁인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바느질을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 글자가 선명한지? 를 보면 확 차이 나죠!'     


작은 차이가 명품과 짝퉁을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탔던 142번 버스의 기사는 승객들이 오르내릴 때 빠짐없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나도 버스에서 내릴 때 큰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외치려고 했다. 그런데 왠지 뻘쭘해서 그냥 내렸다. 명품은 역시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몸의 근육과 마찬가지로 선행을 하는 근육도 훈련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연구실까지 걸어오면서 나의 작은 열정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방법을 생각해 본다. 건물을 드나들 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기,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버튼 눌러주기, 학생들에게 존댓말 하기,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하기, 글쓰기 원고를 제때 제출하기, 고속버스 터미널역 8-1번 출구 근처에서 버스킹 하는 외국인 커플에게 감사의 표시하기 등이 떠오른다.     


명품 인간은 아니더라도 짝퉁 인간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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