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9대 1

3D 모델링(modeling)은 내가 30년 가까이 진행해 오고 있는 수업이다. 3D 캐드(CAD, Computer Aided Design) 소프트웨어로 물체를 모델링하고 그 결과를 3D 프린터로 출력해 보기도 한다. 물론 캐드 이론도 다루어진다. 이 과목은 1학기에 개설되기 때문에 내년 2월 말에 정년퇴임을 하는 나에게는 이번 학기가 마지막 강의이다. 학기 말이 다가오니 시험 준비, 팀플(팀 프로젝트) 등으로 학생들의 얼굴이 지쳐 보였다. 마지막 강의에 뭔가 작은 선물이라고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팀플 발표와 같은 날에 예정되어 있는 퀴즈를 생략하면 학생들이 기운이 나지 않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안 보겠다는데 반대할 학생이 있겠어?     


퀴즈를 실시할 것인지에 대한 투표를 그다음 수업 시간에 진행했다. 전원이 퀴즈를 안 봐도 된다고 동의하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카톡으로 무기명 투표를 올렸고 학생들에게 '본다'와 '안 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투표를 시작하고 5초쯤이나 되었을까? 앞자리에 있는 동훈이가 말한다.     


아~ '본다'가 벌써 한 표 나왔어요!     


투표를 계속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퀴즈를 보겠다고 말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한 학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신이 '본다'에 투표했었는데 수업에 늦게 들어와서 내용을 정확히 모른 상태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내용을 알고 난 후에 '안 본다'로 바꾸었다고 했다. 학생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내가 확인해 보니 '안 본다'는 38명이고 '본다'는 0명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결정을 바꾸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3초 정도 생각해 본 후 내가 입을 열었다. 방법을 생각해 보고 단톡방에 공지하겠다고 말했다. 투표 결과가 바뀌었고, 아직 투표가 열려 있으니 3시간 후인 저녁 6시까지 투표 결과를 보고 결정한다고 공지했다. 저녁 6시가 되어 결과를 확인해 보니 '안 본다' 39명, '본다' 1명이었다. 왜 수업 시간에 없었던 '본다'가 하나 생겨났을까? 중간고사를 망쳐서 점수를 만회하고 싶었나? 아니면 강의실이 아닌 곳에 있으면서 자기 생각이 뚜렷해졌나?     


단톡방에 투표 결과를 캡처해서 올리면서 퀴즈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시험 범위를 예정보다 1/3로 축소했다. 퀴즈를 보면 학생들에 대한 변별력이 더 생겨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학생들은 공부할 범위가 줄어들었고 나는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럼 ‘본다’에 투표한 학생은? 자신의 한 표로 전체를 움직였다는 뿌듯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본다’에 투표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질지도 몰라서 두려워하고 있을까?     


나는 수업 시간에 가능한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려고 노력해 왔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학생들이 점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지는 것을 느낀다. ‘자기 생각이 있기나 한 거야?’라고 느낄 때도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 AI 등으로 학생들의 생각이 오염되어서 그런가? 하긴 옆 사람에게도 문자를 보내는 세상이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교수님 오늘 축제가 있는데 단축수업 하면 안 될까요?’ ‘혹시 저거는 좀 잘못 설명하신 것 아닌가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학생은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래전 한국, 미국, 유대인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자주 하는 말이 다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 선생님은 ‘조용히 하세요!’, 미국 선생님은 ‘이해되나요? Do you understand?)’, 유대인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What do you think?)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학생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한 글이었다. 교수 생활 33년 차를 지내고 있는 내가 과연 학생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을까?     


해 질 무렵 집 근처를 산책하면서 오늘 있었던 투표 과정을 다시 떠올렸다. 절대적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낸 한 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게 다가왔다. ’넌 앞으로도 인생의 투표에서 남들과 다르게 ‘본다’를 외치며 살길 바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만일 무기명 투표가 아니었고 강의실에서 손을 들라고 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앉아있던 아내와 얼굴이 마주쳤다. 언제나 내 마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는 아내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 귓가에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 학생들은 됐고요! 앞으로는 너나 잘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야외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