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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가르침의 윤회

나는 친한 두 명의 교수와 가끔 점심을 같이한다. 정해진 날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2, 3개월마다 한 사람이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 서로 날짜를 맞춰본다. 때로는 시간이 안 맞아서 제안한 날짜보다 한 달 후에나 만날 경우도 있다. 멤버는 정통(정보통신공학)과 김 교수와 불교학과 최 교수이다. 김 교수는 나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2년 후배이고 최 교수는 내가 본부 보직을 할 때 같은 보직교수로서 친해졌다. 최 교수는 나와 나이가 같지만 생일이 빨라서 이번 여름방학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할 예정이다. 그는 청바지에 세련된 셔츠와 재킷을 입고 다니는 멋쟁이 이기도 하다.     


한 달 전쯤 이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최 교수의 퇴임 후 계획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20년 이상 근무했던 불교학과의 대학원에 박사과정 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니, 왜요?? “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교수가 퇴임 후 자신이 근무했던 학과의 대학원생이 된다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최 교수는 우리의 놀란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불교를 더 깊게 공부하려면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같은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그걸 배우고 싶어서요!"     

"그럼, 혼자서 공부하면 되잖아요?" 정통과 김 교수가 물었다. 불교학과에서 윤리학을 주로 가르치는 최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기왕 시작하는 거, 그 분야를 전공한 젊은 교수에게 제대로 배워야지요 하하!! “     


"그 젊은 교수는 무슨 죄가 있어서 정년 퇴임한 교수를 학생으로 받나요?" 내가 다시 물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우린 평소에 자주 술 마시는 사이라서 괜찮아요! 아마 그 친구가 오히려 좋아할걸요?" 최 교수의 대답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그래도 대학원에 들어가면 원하는 것만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듣기 싫은 과목들도 들어야 하고…." 내가 말을 이어갔다.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더 좋죠. 나이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니 감지덕지 아닌가요?"
     

"학교에 오면 앉아있을 자리는 있어요?" 김 교수가 실용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학원생 4명이 함께 쓰는 연구실이 있는데 거기서 공부하면 돼요. “     


최 교수의 대답에 우리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60대 중반의 최 교수가 20대 대학원생들과 함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싼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지 궁금했지만 그런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의 대학원 시절에 경험했던 비슷한 상황이 기억났다.     


"미국에 있을 때 현직 교수가 다른 교수의 수업을 청강하는 걸 여러 번 봤어요! 어떤 교수는 강의만 듣는 게 아니라 과제도 모두 제출했구요.“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미국보다 더 위계적이고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해서 그럴 것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다양한 문화와 자유로운 사고가 보편적인 미국에서도 정년 퇴임한 교수가 자신의 학과에 다시 입학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최 교수의 도전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카페에서 나와서 최 교수는 근처 복싱체육관으로 운동하러 간다며 새도우 복싱 흉내를 내고 우리와 헤어졌다. 김 교수와 나는 연구실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최 교수의 선택은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지 우려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말했다.     


"최 교수님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선배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잘 지낼 수 있을까요? “     


”그러게요! “ 김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      


최 교수의 선택은 단순히 그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학습끊임없는 호기심그리고 나이지위역할고정관념 등을 초월한 도전이런 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떻게 그런 대담한 결심이 가능했을까? 최 교수는 배움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순간 ‘배움과 가르침의 윤회’란 표현이 떠올랐다. 다시 배움의 생을 살아갈 최 교수는 가르침의 생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삼십 대 사람들이 대부분인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으로 AI를 배우고 있지만 매주 토요일에 있는 오프라인 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안 맞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과 어울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교수가 다시 학생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나이도지위도과거의 업적도 중요하지 않은 세상오직 현재의 열정과 미래를 향한 도전만이 의미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다음 주에는 흰머리 보이지 않게 모자라도 쓰고 AI 커뮤니티 모임에 나가봐야겠다.



* 이 글은 2024년 7월 20일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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