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D 20
"이틀 후 일요일에 별 사진 출사 갑니다."라는 공지가 스마트폰에 떴다. 별 사진은 구름이 없는 날에만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사진 수업의 선생님이 일기예보를 보고 갑자기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며칠 전 날씨로 인해 연기된 별 사진 출사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나는 8년 전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두 가지는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별과 새였다. 별과 새를 제대로 찍으려면 삼각대, 망원렌즈 등의 장비를 가지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현장에서도 기다림의 시간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인터넷을 보면 너무나 멋진 사진들이 넘쳐났고 무엇보다 내가 별과 새 사진에 끌리지 않았다.
출사 당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계속 날씨를 체크해 보았는데 오늘도 구름이 제법 많다고 한다. 이틀 전 예보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출사 장소는 별 사진의 명소로 알려진 경기도 연천의 당포성! 검색해 보니 집에서 91km나 되고 1시간 58분 걸린다고 한다. 심지어 연천군의 일부는 휴전선 북쪽에 있다. 거리도 멀고 날씨도 안 좋다고 하니 은근히 단톡방에 취소 공지가 뜨기를 바랐다. 그런데 10시쯤 ‘날씨는 쾌청하지 않지만 구름 사이 별빛도 괜찮으니 예정대로 진행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 회원들의 엄지 척 이모티콘 3개가 빠르게 달렸다.
오후 들어 예보가 점점 바뀌더니 3시쯤 되니 밤 9시부터는 구름이 걷힌다고 한다. 갈까 말까를 백 번쯤 망설이다가 가기로 결정한다.
5시 30분에 연천군의 ‘어락’이란 식당에서 회원 네 명과 선생님을 만나서 생선구이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자고 내가 제안했지만 선생님은 당포성에 가서 노을을 찍어야 하니 바로 출발하자고 했다. 당포성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일기예보를 의심하며 차에 올랐다. 당포성에 도착하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고 별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지고 나니 구름 사이로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은 어두워서 삼각대를 설치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절반 이상 덮여 있었다. 9시쯤 되니 거짓말처럼 구름이 거의 물러갔다. 나도 모르게 '와~~ 일기예보 잘 맞네'라고 혼자 소리를 냈다.
선생님이 별 궤적 사진을 찍는 방법을 회원들에게 알려 준다. 나는 준비해 온 두 대의 카메라 중 한 대의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회원들이 있는 곳에 설치했다. 이 카메라는 30초 장노출 사진 100장을 자동으로 찍어줄 것이다. 나는 나머지 한 대의 카메라를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출사 때 다른 회원들은 대부분 작가님 근처에 머물지만 나는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자리 잡은 곳 근처에는 바닥에 자리를 깔고 별을 보는 커플들과 가족들이 보였다. 바로 옆에서는 아빠와 10살 정도의 아들이 누워서 다정하게 별자리를 서로 찾아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는 스마트폰 앱을 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별을 보려고 친구들과 동네 뒷산에 올라갔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잠시 잊은 채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나는 아빠 하고도, 아들하고도 별구경을 해 본 기억이 없다. 다행히 아직 손자 하고는 그럴 기회가 남아 있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아이가 잠시 후에 '아빠! 저건 은하수인가 봐!!'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뭔가 뿌옇게 보이기는 했는데 그것이 은하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그 뿌연 것을 향해 셔터를 서너 번 눌렀다. 별에 취해 하늘과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번갈아 보다가 한 시간 반이나 흘렀다. 별 사진에 대한 나의 편견과 일상의 잡념이 구름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회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각자 언덕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날의 출사는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끝났다.
다음 날, 별 사진들을 27인치 화면으로 보면서 후보정했다. 푸른빛을 살려내고 밝기를 조절하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별 사진 출사는 처음이었지만 미리 유튜브로 공부했고 카메라를 두 대 준비해 간 덕분에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저녁, 아내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에서는 왜 별이 안 보이지?” 이틀 전 당포성에서 봤던 별들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빛이 많아서 그렇지!”라고 아내가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뭔가가 훅 들어왔다. 내 마음에 있는 어지러운 불들을 끄면 별이 보일까?
평소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켜 두었던 이런저런 불들을 꺼버리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면의 별도 보일 것이다. 아니, 반드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