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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하는 몸, 자라는 사랑

POTD #21


기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력을 써서 움직이거나 일하는 장치’라고 나온다. 동력은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라고 정의되어 있다. 음식을 동력이라고 한다면 내 몸을 기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 이상 부품을 한 개도 바꾸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니 부품교환 없이(임플란트가 있긴 하다) 그런대로 잘 작동하는 내 몸에 고마움을 느낀다.     


한 달 전쯤, 3개월마다 방문하는 심혈관 전문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50인치쯤 되어 보이는 모니터로 혈액검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100점이네요!’ 라고 말한다. 복용하고 있는 고지혈증 약만 잘 먹으면 된단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일어나려다가 가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의사는 맥을 짚어 보더니 부정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며 나에게도 맥을 짚어 보라고 한다. 나는 전혀 이상을 느낄 수 없었다. 의사는 심장 박동을 1주일간 지켜보자고 했다. 가슴에 작은 기기를 1주일간 착용해야 한단다.     


그날부터 7일 동안 '24시간 심전도 측정기'(holter monitor)를 가슴에 붙이고 생활했다. 측정기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플라스틱 기기 두 개가 25cm 정도 길이의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다. 매일 양면테이프를 갈이 끼우며 샤워할 때만 측정기를 떼어놓고 거의 24시간 가슴에 붙이고 생활했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심전도 결과를 듣는 날이 되었다. 대형 모니터로 검사 결과를 보여준다. 의사는 그래프를 보면서 부정맥 증상이 있으니 한 달간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어 다행이라고 한다. 치료 없이 오래 방치되면 심장 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어 치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카페인과 술을 최대한 피하라고 한다.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바꾸면 되는데 술 없이 지낼 생각을 하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심혈관 검사 이외에도 치과, 안과에서 3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는다. 5개의 임플란트를 했고 정기적인 관리에도 불구하고 잇몸이 많이 내려앉아서 흔들리는 치아가 한두 개 더 있다. 치과 의사는 고맙게도 쓸데까지 써 보자고 한다. 눈에는 황반변성이 있는데 다행히 5년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자외선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해가 있을 때는 되도록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남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내 몸 하나 챙기기에 급급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통해 오히려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의 아내는 교회에서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팀의 팀장이다. 환우나 보호자가 교회 로비에 있는 기도 신청서를 작성하면 그것들을 모아 팀원들이 담당자를 정하여 매일 기도한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 기도 내용을 모아 워드 프로세서 작업을 해서 팀원 숫자에 맞춰 20부를 출력한다. 기도 내용은 “형님이 뇌종양 교모세포종 4기입니다. 어머니에게 간농양으로 패혈증이 왔습니다. 처제가 급성 백혈병입니다.” 등으로 시작한다. 가끔은 팀원들을 위한 기도 내용도 정리한다. 팀원들의 기도 내용과 환우들의 기도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다. 아내에게 ‘아니 팀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거야?라고 물었더니 환우로서 사역팀의 도움을 받은 후 팀에 합류하게 된 사람들이 전체의 절반 정도라고 했다. 간경변, 지방간, 협심증과 함께 살아가는 아내도 그중 하나이다.      


사역 팀원들은 주로 6, 70대의 여성들이다. 이들 중 삼분의 일 정도가 지금도 하나 이상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 사역팀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에 교회에서 모인다. 대략 15명 정도의 팀원들이 찬양, 설교 후에 목사님의 인도로 환우들을 위해 기도 한다. 모임이 끝난 후에 거의 모든 팀원이 교회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한다. 이 시간이 되면 수다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팀원들은 환우들을 위해 일하지만, 그들도 큰 에너지를 얻는 모양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고장 나가는 기계일지 모르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더 튼튼해지고 새로워진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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