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 Kong 해외이주 및 IBM Hong Kong 입사 후기
‘16년 홍콩 이주 후, 적었던 글부터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홍콩으로 이주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호텔과 쇼핑몰에서만 머물던 첫 몇 주와 달리 요즘은 한국의 신도림역을 지나듯 Central역의 수많은 인파를 뚫으며 출근하고, 허름한 로컬 식당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다.
(사진 - 출근시간 Central MTR Station)
대학 졸업 후 약 5년간 여러 분야/레벨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빡세게 경험했고 .. 그 후 IBM Korea입사와 동시에 대학원을 다니며 Big Data 분야에서의 3~4년간의 또 다른 경험.. 나이는 30대 중반이 되었고, 두 살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와이프는 공주님을 임신한 상태였지만.. 여행도 한번 안 가본 ‘홍콩으로 이주’라는 모험을 감행했다.
홍콩 생활을 궁금해하는 친구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생각했기에.. 그리고 나의 케이스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를 통해 공유한 내용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써보고자 한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한국을 떠나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 ‘성공 축하드립니다’, ‘탈 헬조선 축하드려요’,’ 부러워요’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바뀐 것’ 뿐이지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Top MBA 및 미국 취업을 통해 이루지 못했던 영어권에서의 커리어와 생활을 체험해보고자 HongKong으로 나왔을 뿐… 길게 봤을 때 이 시기를 성공이라 부를 것인지 욕심에 의한 시행착오로 부를 것인지 사실 알 수 없다..
– 한국을 떠난다는 것 –
#1
결정과 동시에 해야 했던 고민은 ‘출산을 앞둔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하느냐?’였다. 더 좋고 나쁨을 떠나 한국과는 다른 의료시설, 산후조리 문화 등이 와이프에게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한동안 둘째 딸을 한국에서 출산한 후 가족은 내년 초에 홍콩으로 오는 것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국.. Supportive 한 와이프 덕분에 ‘무엇을 하든 함께하고 이겨내자. 첫째 아들에게 아빠의 자리는 너무 소중하다’란 결론에 이르렀고 이 결정은 현재 너무 잘한 것이라고 느낀다.(말하자면 긴 Story지만 감사하게도.. 어렵다는 홍콩의 국립병원에서 원하는 날짜에 둘째 딸을 낳을 수 있게 되었고, 한국에서 프로젝트 중 낼 수 있는 휴가보다 더 긴 시간을 가족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가슴 깊이 10월 말 건강한 출산을 기도하고 있다.)
#2
소소한 부분 일 수 있지만, 한국보다 급여에서 세금을 적게 징수하는 홍콩으로 가는 만큼 혜택을 누리고 싶었고.. 한국 거주자로 판명되어 홍콩과 한국 양국에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의 재산들(얼마 없는)은 대부분 처분하고 떠나왔다. 하지만 ‘언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까?’라는 질문은 여전한 고민으로 남아있었다..
#3
해외이주가 진행되면서 많이 아쉬웠던 것은 사람에 대한 부분이었다. IBM, 카이스트 등 최근에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특히 아쉬웠고 현재 실제로 그립다. 그냥.. 좋은 사람들과 소주에 삼겹살이 그립다. 옛날 친구들과도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자기일 처럼 비싼 아파트 렌트비, 가족에 대한 걱정을 나눠주는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 본격적인 해외이주 –
사실 한국 IBM은 일종의 ‘애증’의 직장이었다. 3년간 나의 커리어, 그리고 Next에서도 언급하였듯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지만.. 잦은 조직 변경, 매니저 변경, 내부 정치, 한국시장에서의 위상 약화 등 여러 요소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 특히, 훌륭한 평가 대비 따라오지 않는 보상 때문에 비슷한 경력의 친구들의 연봉을 알게 될 때면.. 사실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홍콩 IBM으로 Relocation 되는 과정에서 Global IBM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재무적/비재무적 도움을 받으며 과거의 설움(?)들을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Work Permit, 집 계약 등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만약 이런 도움 없이 스스로 홍콩에 직장을 구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우선 에이전시에서 대부분 진행해준 Work Permit의 경우 아래와 같이 생겼다.
그냥 스티커인데 여권에 붙여서 홍콩에 입국하기만 하면 홍콩 아이디카드를 받을 자격, 2년 동안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더라..(저도 처음 경험). 좋았던 것은 아내와 아들에게도 Dependency Visa을 알아서 제공해주어서 현지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집.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묶으며 Agency를 통해 여러 지역 집들을 둘러보며 지역의 장단점, 계약 절차와 유의할 점 등에 대해 안내받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계약도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나로선 너무나 감사하게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계약서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는데 여러 에이전시끼리 중국어로 여러 가지 확인하고 변경하는 것을 보며.. 혼자 영어권이 아닌 ‘비즈니스: 영어 – 생활: 중국어’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 하고 느꼈다). 집을 구하며 느꼈던 또 다른 것은 엄청난 rental 비용이었다. 한국과 같은 전세제도는 없기에(나와서 보니 이게 한국의 장점이더라..).. 한 달에 일정 비용을 계속 집에 써야만 하는데 침사추이나 홍콩섬 센트럴과 같은 지역은 20평도 안 되는 아파트가 월 350~400만 원 또는 그 이상인 것을 알고 고민에 빠졌었다. 애기가 있어 그 유명한 홍콩 닭장아파트(구글에 ‘홍콩 아파트’로 이미지 검색하면 놀라실지도..)는 아예 고려도 안 했기에 외곽지역(New Territory) 최근에 지어진 곳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서도 ‘조금만 현재를 위해 돈을 쓰면 집이 커질 텐데..’ 하며 타협점(?)을 찾는 게 숙제였다.
집을 알아보는 동안.. 홍콩 아이디카드를 몇 주에 걸쳐 복잡한 절차 끝에 발급받았고,
정말 치열하다는 홍콩 공립병원 산부인과에서 원하는 날짜에 둘째를 출산하기 위해 몇 주간 시간을 할애했다(이 부분은 에이전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병원을 방문하며 시행착오를 계속 겪으면서.. 홍콩의 조금은 느리지만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경험하며.. 어느 정도 홍콩에 적응해 나갔던 것 같다.
기타.. 고객을 가려서 받나?라는 느낌까지 줄 정도로 HSBC 같은 Major은행의 계좌를 여는 것은 복잡하였다(요구하는 서류가 많고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리고 해외생활이라곤 캐나다에서 몇 개월 거주해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 해외에서.. 특히 생활에서는 중국어를 많이 쓰는 홍콩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케아에서 산 가구들은 집에 배달 와서 보니 벽에 설치할 수 없다 하여 대부분을 환불하였고.. 인터넷/티브이 설치 등은 몇 주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들의 반복이었다. 이젠 누가 ‘이케아에서 가구 어떻게 사요?’ 라고 물어보면 과외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해외이주 과정에서 심리 상태(?) –
한국 IBM을 완전히 퇴사하고 이주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컨설팅 업무는 홍콩에서도 몇 주간 원격으로 계속해야 했으며, 곧 입사할 홍콩 IBM에서도 지원해줘야 할 일들, 참석해야 할 전화 컨퍼런스 등이 많았다. 홍콩 야경이 보이는 호텔방에서 새벽까지 장표를 만들며..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가 드디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초반 몇 주는 그냥 여행 온 것처럼 느껴졌기에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현상이 거의 없었지만.. 편도 티켓으로 여기에 왔고 돌아갈 집은 한국에 없다는 것, 몇 주후면 계약한 집에 들어가서 여행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하며, 홍콩아이비엠에 입사해 빡세게 일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현상을 계속 찾아오게 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는 와이프와 어린 아들을 보며 이게 현실임을 깨닫곤 했다. 만약 혼자 여기에 왔더라면 적응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르겠다.
– HongKong IBM에 입사하다 –
입국 후 한 달.. 드디어(?) 입사일이 찾아왔다.
(사진 - IBM Hong Kong office)
글로벌 회사이기에 한국 ibm과 노트북, 프로세스 등 많은 점들이 비슷했지만.. 일하는 문화, 언어 등 적응할 부분도 많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적응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본사에서 한 달 정도 내부 프로젝트를 하다 최근에 고객사에서 일하고 있기에 단편만 봤을 수 있으나..) 예를 들어 몇 번의 걸친 내부 회의에서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컨설턴트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컨설팅펌에서만 일해온 나로선 의외였고.. 이게 여기 고유의 문화이고 적응해야 할 부분인지 판단해야만 했다. 몇 번 할 말을 안 하고 앉아만 있다 회의가 끝난 경험 후에는.. 약간은 소극적이 된 자신을 발견했고.. ‘이러지 말아야겠다. 그냥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외국인을 채용한 데는 다양성을 더하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라고 맘을 정리했고 첨 보는 임원분들 앞에서도 그냥 안 되는 영어를 막 던지며 내 생각을 공유했다.(영어 못하는 한국애 왜 뽑았냐고 속으로 생각한 사람이 없기를 ㅠ)
그리고 중국어! 내가 속한 팀에 인도 등 외국인이 있긴 하나 소수이기에 영어로 회의 중 더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면 중국어로 한참 진행되는데.. 이걸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좀 걸렸다. 첨엔 나 중심으로 생각하여 외국인을 뽑아와 놓고 왜 중국어를 쓸까, 회의록을 쓰거나 흐름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고.. 논의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음에 스트레스를 느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중국어 mode로 바뀌면 얘기하는 사람을 보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점차 생각을 이렇게 바꾸면서 내 맘도 동료들도 좀 더 편해졌다.’ 이들도 영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이다. 나도 이참에 중국어 공부 좀 하자. 내 욕을 중국어로 할 동료들은 아니지 않나’하고.. 그 후론 중국어 mode에서도 계속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들으려고 노력했고.. 이런 모습을 보고 작게 영어로 얘기해주거나 중국어로 얘기된 부분을 회의록으로 남겨주는 동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앞으론 기본적인 회화는 익혀서 동료나 고객과 식사라도 할 땐 한두 마디씩 건네고자 한다. 토론을 할 정도로 중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될지는.. 아니 그만큼 시간을 투자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여기서 얼마나 경력을 쌓을지 분명한 미래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인 듯하다)
이외에도 ‘합리적 개인주의’랄까. 한국 ibm분들이 홍콩에 오셔서 술을 마신것외에는 홍콩 ibm동료들과 회식을 하거나 한 적이 없다. 점심시간은 특히 개인의 시간이라는 의식들이 강한 것 같았다. 나도 가끔 혼밥을 어색하지 않게 즐기게 되었다. 일의 관점에서도 아마 영국의 영향이 큰 것 같은데.. ibm동료들이건 고객사이건 성과위주의 리뷰와 평가문화.. 이 모든 것에 합리적 개인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Work and Life balance. 가족을 다들 중요시하는 분위기라 야근이나 주말근무는 확실히 적은 것 같지만.. 동료들 중 일부는 금융권 플젝에서 계속 12시를 넘기고 주말에도 일한다고 하니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보상의 경우 한국 IBM보다 많이 좋아졌고 3년 동안 정착비 개념의 추가 지원도 있어 한국에서의 고민은 대부분 사라졌다.
아직 두 달째라 섣부를 수 있지만 요즘엔 HSBC 본사에서 데이터 전략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좋은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컨설팅 업무는 사실 언어 때문에 쉽지 않다. 유학파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자란 것도 아닌 토종 한국인인 나이기에 회의 중 어휘나 구문의 한계를 자주 느껴 전달을 잘못할 때가 있다. 아마도 전사 전략이나 마케팅 등 운영전략 컨설팅에는 이게 큰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스, 빅데이터 등 프로젝트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 마무리하며 –
1. 금융권 또는 금융권 고객 대상 컨설팅 직무를 희망한다면 홍콩은 여전히 매력적인 market이다. 중국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market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홍콩에서 일하다 싱가폴,영국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반대로 싱가폴, 영국, 호주 등에서 일하다 홍콩 금융권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관문’과 같은 곳이다. 무수히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2. 해외생활은.. ‘당연한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한국과 달리 뭔가 불편하면 ‘왜 이래 이거’ 하고 느끼기도 했으나.. 그건 그냥 내가 익숙해진 것일 뿐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다르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거나 훌륭한 것’ 들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야를 얻어가고 있는 것 같다. ‘비자발적으로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게 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한국에서 내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홍콩에서는 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일중독’ 상태는 유지하며 좋은 성과는 만들되 물리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3. 홍콩 자체 또는 홍콩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중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보면 홍콩인이에요’고 답하는 이들. 한국보다 질서의식도 높고 nice한 사람들이다(biz환경에서 주로 사람들을 만났기에 성급한 일반화의 가능성은 있다). 그러기에 여기 와서 뭔가 위험한 상황도.. 기분 나쁜 경험도 아직은 없었다. 배려심 강한 홍콩인이 대부분인듯하며 좀 매너 없다 느껴지면 대부분 관광객이거나 베이징 등에서 넘어온 중국인이었다. 특히 임산부나 아기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느껴지는 의료, 행정 시스템도 배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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