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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준 Apr 13. 2023

'정답이 없는 삶'이 인정받을 수 있기를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
- 존러스킨


한때는 친구들과 마냥 뛰어놀 때가 있었다. 그때 내게 중요했던 것은 오직 밥시간 정도였을 뿐이다. 아니, 때론 배고픔도 잊은 채 엄마의 부름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이미 어두컴컴해진 시간이란 걸 깨닫고 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달라졌다. 숙제를 다 끝내야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심지어 학교는 쉬는 시간보다 수업 시간이 더 많았다. 점점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공부가 싫었을까. 우리가 배워왔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대충 이랬을 것이다. 무언가 열심히 알려준다. 그리고 잘 배웠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누가 누가 가르쳐 준 것을 잘 알고 있는지 순위를 매긴다. 어렸을 때부터 상위권에 있으면 동네에서는 '영재'로 불리기도 한다. 칭찬으로 인한 기분 좋음은 찰나일 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큰 압박감에 시달려야 한다. 우리는 '정답이 있는 삶' 속에 살고 있었다.

'국영수는 기본이지', '대학은 나와야 밥벌이를 하지', '대기업이 무조건 최고 아니야?'

이뿐만이 아니다.

'남자가 키가 커야지', '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돼', '취업했는데 아직 자동차도 없어?', '30대 후반인데 미혼이야? 걱정이겠네...' 등등

우리는 살면서 당연히 요구받던 수많은 정답지들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그 외는 모두 오답인 것일까. 정답이라는 삶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모두가 다를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한 삶을 산다고 해보자. 행복의 기준조차도 각자 다르다. 이렇게 다름을 인정해 놓고는 실제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것이 아니면 모두 오답 처리를 한건 아닐지 오늘의 문장을 보면서 곱씹어 본다.

마냥 놀던 그 시절처럼 즐기면서 배울 수는 없는 걸까.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 것들에 지나친 잣대를 내민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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