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기 이전의 인연은 우울증을 앓은 이후 대부분 끊겼다. 내가 끊어낸 인연도 있고, 떨어져 나간 인연도 있으며, 자연스레 멀어진 인연도 있다. 스스로도 무참하게 변한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타인은 오죽했을까. 이해한다. 이제는 다 이해한다.
인연이 빠져나간 자리마다 옹이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바람이 들고났고 그때마다 마음이 시큰했다. 구멍은 좁고 깊어 쉽게 메울 수 없었다. 그래서 끝난 인연의 수만큼 나는 구멍을 지니고 있다.
가끔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이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반가웠으나 못 본 척 지나쳤다, 나는. 상대방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걸 봤다. 끊긴 인연을 다시 잇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고 그래서 나는 오랜 절연에 만족했다. 누군가와 깊은 사이가 되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인연이란 서로 손을 내밀고 같은 힘으로 맞잡았을 때 비로소 이어지는 것. 내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가끔은 내가 내 손을 잡기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순간에 떠난 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했다.
이제는 가물가물하게 변한 이들의 연락처를 찾아내 잘 지내느냐고, 별 일 없느냐고, 여전히 환하게 웃느냐고, 힘차게 걷느냐고, 아직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느냐고, 요즘도 시를 쓰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대방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잘 웃고, 힘차게 손을 흔들고, 남 앞에 서기 좋아하고, 목소리 컸던 나는 이제 가고 없다. 그걸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슬픔을 헤아리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어, 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저 그들을 떠올리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내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그들의 마지막 인상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밤에는 편지를 쓰는 상상도 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당신이 잘 지낸다면 나도 잘 지냅니다.
멋진 인사말로 시작하는 편지를, 나는 수십 통씩 쓰고 버렸고, 한 번도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하다. 다들 잘 지내는지, 별 일 없이 사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같은 것들이, 궁금하다.
오늘도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쓴다. 마지막 줄은 이것으로 할 것이다.
잘 지내요, 당신. 당신이 잘 지내리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