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전한 사랑의 온도
요즘 독감이 유행이다. 결국 우리 아이도 이 유행을 피해 가지 못했다. 예방접종을 했지만, 감염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 뿐 피하진 못했다.
그렇게 수지는 등원을 못한 지 벌써 사흘째다.
독감이 완전히 나아야만 다시 유치원에 갈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수지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둘이어서 참 다행이고, 아이에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하다.
독감을 확진받은 첫날밤과 그다음 날 새벽까지 열이 오르더니, 어제 아침부터는 열이 나지 않고 있다. 주말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만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남편이 오후 3시까지 수지를 봐줬는데, 수지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해서 남편이 직접 만들어주려고 장을 보러 갔다.
수지는 외식을 하면 늘 돈가스나 파스타를 먹자고 해서 외식하면서 파스타는 자주 먹었는데, 집에서 파스타를 해준 적은 없었다.
남편은 종종 집에서 혼자 파스타를 해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먹을 파스타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픈 딸에게 직접 파스타를 해주고 싶었는지 장을 보고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나는 이때 회사에 있었고, 남편과 연락하며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지가 먹고 싶다는 요리를 직접 해주려는 남편의 정성이 참 사랑스러웠다. ‘수지는 이렇게 다정한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이런 남편이 있어서 참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남편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파스타를 만들어서 주었는데, 수지가 맛이 없다며 극대노(?)를 했다는 것이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잔뜩 기대하며 한입 넣었다가, 자기가 생각한 맛이 아니어서 화가 났을 수지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조금 섭섭했을 남편의 얼굴도 떠올랐다.
남편이 먹기에는 나쁘지 않았다고 했지만, 맛에 예민한 아이는 식당에서 먹던 파스타와 맛이 다르니 실망했던 모양이다. 어쩌겠나. 나는 웃으면서 “수지가 식당 파스타에 익숙해서 그런가 봐. 오빠 속상했겠네.”라고 말했다.
남편은 정성을 들여 요리를 했지만, 아이에게는 아빠의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다. 맛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작은 점심 에피소드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 뒤로 수지는 다른 메뉴로 점심을 때웠고, 남편은 남은 파스타를 묵묵히 먹었다.
비록 파스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남편이 아이를 위해 들인 정성과 따뜻한 마음은 오래 남았다. 평소에도 좋은 아빠지만, 아이가 아프면 그 마음이 더 깊어진다. 더 세심하고 더 다정해진다.
그 덕분에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마음 편하게 출근할 수 있다. 수지가 아빠와 있을 때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든든하고, 편안하다.
아마 수지도 그럴 것이다. 아빠의 파스타가 맛은 없었을지 몰라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따뜻했을 것이다. 마음껏 아프고, 마음껏 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내가 3시에 조퇴하고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조금 전에 출근했고 수지는 혼자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밝았고,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만 봐도 아빠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부엌에는 남편이 요리를 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나름 정리를 한 흔적이었다.
남편은 전 날 밤늦게 퇴근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픈 아이를 봤는데도, 그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수지가 아픈 게 더 중요하지”라며 일어나서 먹이고 챙기고 돌보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애틋하고 고맙다.
남편의 정성과 사랑 덕분에 수지도 사랑스럽게 자라고, 그 사랑 덕분에 나도 편안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