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국도 5번
2024년 10월 25일 하코다테의 이른 아침은 붉은 알이 반짝이는 이쿠라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자유시장의 활기찬 공기를 뒤로하고 삿포로를 향해 핸들을 잡았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3시간의 여정은 결국 8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그 시간은 한국과 일본의 관광자원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만난 오니우시 공원은 단순한 쉼터가 아닌, 일본 냉동식품 산업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일본 냉장식품협회가 조성한 이 공원에는 '일본 냉동식품사업의 발상지, 모리마치'라는 비석이 서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는 1928년 이곳에서 시작된 냉동식품의 역사를 담담히 전하고 있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이 산업의 발자취가, 오늘날 일본이 세계적인 수산강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늦가을 햇살 아래, 현대 일본 냉동식품의 시작을 알린 이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이어 도착한 야쿠모초의 '마치니에 키'(도로역)는 단순한 휴게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허브 치킨 발상지'라는 표지판이 이곳의 역사성을 알려주는 동시에, 홋카이도 향토 음식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다국어로 쓰인 환영 문구와 아기자기한 마스코트 캐릭터는 이곳이 지역 문화의 거점이자 관광 안내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본의 '마치노에키'는 이처럼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도야코 온센(洞爺湖温泉)은 또 다른 모습의 홋카이도를 보여줬다. 도야호수 남쪽 호반에 자리 잡은 이 온천 마을은 크고 작은 온천 호텔들이 호숫가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선착장에 설치된 안내도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호수를 중심으로 한 관광 포인트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푸른 호수를 둘러싼 산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관광 시설들이 아기자기한 터치로 표현된 이 지도는, 이곳이 단순한 호수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휴양 문화권임을 보여줬다. 모터보트 크루징부터 스완보트, 낚시까지 다양한 수상 활동이 마련되어 있었고, 호수를 배경으로 들어선 휴양시설들은 일본인들의 여가 문화를 잘 보여줬다.
이 온천 마을의 매력은 Lagorto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입구의 로고부터 호수와 산, 나무를 모티브로 삼아 이 지역의 자연을 표현했고, 벽면의 지도에는 각 지역의 특산물이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와인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곳의 메뉴들은 홋카이도의 신선한 식재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채소, 해산물, 유제품이 고루 분포된 모습은 이 땅의 다양한 자연환경을 반영하고 있었다.
Lake Hill Farm은 이 지역의 매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너른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농장 카페의 테라스에서는 웅장한 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늦가을의 호박 장식과 정원의 마지막 꽃들이 만드는 풍경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곳에서 발견한 'LAKE TIMES'라는 무료 매거진은 호수를 중심으로 한 생활과 문화를 다루고 있었다. 고요한 호수에서 카누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표지 사진은 이곳에서 추구하는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핵심 관광자원은 이처럼 산악, 호수, 농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주도의 한라산이 섬 전체를 지배하듯, 홋카이도 역시 어디서나 큰 산이 조망된다. 특히 도야호수 인근의 소규모 리조트 타운과 체험형 관광농장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잘 활용한 사례였다.
도야호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의 휴양 문화가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해변을 중심으로 발달한 한국의 휴양 문화와 대비를 이룬다. 해안관광자원의 측면에서 홋카이도를 포함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 열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해안선은 대부분 암석 해안이나 자갈 해변(페블 비치), 혹은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수욕장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주요 해수욕장은 대광(12km), 칠포(4km), 신지명사십리(3.8km), 금일명사십리(3.5km), 대천(3.5km) 등 상당한 길이를 자랑한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해변의 질적 차이다. 일본 해변은 대체로 진흙이나 점토에 가까운 반면, 한국의 유명 해변은 고운 모래사장의 특성을 보인다.
특히 부산, 울산, 포항, 여수, 제주, 강릉, 속초와 같이 도심에 모래사장 해수욕장을 보유한 도시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글로벌 관광자원으로서 상당한 희소성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해수욕장을 동남아시아나 태평양의 열대성 해변을 준거점으로 삼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자원의 차별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8시간의 드라이브는 예상보다 길었지만, 동아시아의 연안관광자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한국 연안도시들이 보유한 도심 인접 백사장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관광마케팅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하코다테에서 시작된 홋카이도 여정이 준 뜻밖의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