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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타운걸 Feb 08. 2021

아는 맛: 네가 떡볶이 맛을 알아?

음식으로 돌아보는 유학 이야기

들어가며


“띠링”

냄비 한가득 요리하고 있는 사진이 도착했다. 확대해 보니 떡국떡이랑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어 넣고 만든 멀건 빛의 떡볶이다. 뒤따라 온 것은 뉴욕타임즈에 실린 떡볶이 레시피 링크. 친구가 오늘 저녁으로 만들었다며 보내준 사진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우와 맛있겠다!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나도 며칠 전에 해먹었지롱. 맛있게 먹어!!"

답장과 함께 시뻘건 내 떡볶이 사진도 보내주었다.



내 친구는 미국인, 여기는 뉴욕이다.

떡볶이라는 음식에 익숙한 이가 내 친구의 떡볶이 사진을 보면 “떡볶이가 뭔지 잘 모르는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친구가 그날 저녁 보내준 사진이 정말로 특별했다. 한국 문화의 대단한 팬도 아닌 내 친구가, 얼마든지 사 먹을 수도 있는 음식을 굳이 품을 들여 낯선 재료를 구해다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반갑고 또 신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알고 좋아하는 맛을 이제 친구도 알게 되어 기뻤다. 그가 떡볶이 맛에 처음으로 눈뜨는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친구의 첫 떡볶이가 내 떡볶이가 아닌 것이 아쉽지만 한동안은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친구 생각이 날 것 같다. 뉴욕에서 코로나가 재유행하고 실내 외식이 금지되면서 매일 혼자 밥 먹은지 만 한달. 이렇게나마 오랜만에 같은 음식을 먹는 느낌이 들어서 그날 저녁은 마음이 내내 따뜻했다. 가끔 학과 사람들끼리 친구네 모여서 저녁먹던 기억이 나서 애틋해졌다.


얼마 후면 몇 년간의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 서울에 돌아가는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 잠 안오는 밤마다 천장을 보며 드는 여러 잡생각 중에 일등은 “언제 다시 나만의 부엌을 가지게 될까” 하는 것. 엄마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내가 다시 부엌의 주인이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것저것 장 봐다가 밥 해먹는 시간을, 친구들이랑 모여서 집밥 먹는 시간을 참 좋아했는데.


나는 아는 맛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할 때 식욕을 참기 위해서 “어차피 내가 아는 맛이야”하고 주문을 왼다고 했지만 여기서 나를 지탱한 것은 늘 아는 맛이었다. 맛있는 것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도시에 있건만 나는 신상 맛집을 찾아보거나 새로운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에는 영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낯선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아는 맛은 나를 늘 편안하게 해 주었다.


특히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학교 생활이 그 자체로 너무 버거워서 요리와 먹기는 거의 생존의 영역에 가까웠다. 물리적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모두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밖에서 친목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없었고 (특히나 초반에는 만날 사람이 없기도 했다) 밤낮 주말 없이 수업 준비와 과제에 치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주말쯤 장을 봐다가 무국, 미역국, 김치찌개 같은 걸 한솥 끓여 놓고 며칠동안 번갈아 먹거나 한국 식당에서 사 먹거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 때는 매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는데, 아마도 낯설고 힘든 학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익숙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상쇄하고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공간, 나만의 컴포트 존이 언제나 절실하던 그 때 나의 결핍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것은 아는 맛의 친근한 음식들, 컴포트 푸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 친구들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시간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의 종류가 조금씩 다양해졌다. 아는 맛을 좋아하는 내가 친구들 집이나 식당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나면 새로 알게 된 그 맛이 자꾸 자꾸 생각나서 그걸 집에서 따라하게 됐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사 먹는 것도 새롭고 맛있는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게 가장 귀한 음식은 친구들이 해주는 집밥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를 비롯해 친구들 대부분이 부모님 댁에서 통학을 했고, 졸업하고서도 다들 계속 부모님과 살았기 때문에 친구 집에 가서 친구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건 내가 미국에서 한 경험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새롭고 신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친구들은 다들 다른 나라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나는 어쩌면 평생 한 번 먹어볼 생각조차 못했을 음식들을 접하게됐다. 우리가 같이 먹은 밥상과 함께 그들이 내게 새로이 전해 준 “아는 맛”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유학생활의 굽이굽이에는 이렇게 첫 만남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음식들 말고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일부였던 음식들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쉽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없다보니 나는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비싼 돈을 내고 사먹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한국에 갈 때까지 기다리든지 직접 해 먹어야 했다. 입에서는 익숙하지만 손끝에서는 낯선 음식들을 기억을 더듬어 되살리는 시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배움의 시간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맛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내가 이 음식을 먹을 때는 누구를 떠올리는지, 그 사람과 그 음식은 어떻게 나의 일부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미국에서 만나 새로이 "알게 된 맛"에 대한 기록이면서, 내가 친구들에게 전한 "알던 맛"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내게 "아는 맛"으로 전해져온 아득한 기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던 나만의 작고 낡은 부엌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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