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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17. 2018

(10)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

영국에 온지 넉 달, 평온을 찾다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영국에서 머물렀던 일년 반. 

새로운 공간에서 낯선 일들을 겪으며 천천히 스며드는 여행인 듯 삶인 일상의 기록을 담습니다.





#평온을 찾은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 

시계바늘은 하염없이 같은 자리를 돌았다. 

영국에 온지 네 달쯤. 빠르다면 빠른 안정기가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꽤나 짧은 시간에 낯선 생활에 적응을 했다. 


집을 구하고 사람들을 사귀고, 일을 하고, 현지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보통의 생활이었고 그게 가능해지고 나니 모든 게 순조롭게 느껴졌다.  

심신의 안정과 규칙적인 생활, 마음의 여유까지.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언어도 한 몫 하긴 했다.  


보통의 일상이라 불리는 ‘한국’에서의 보통의 범주보다 이곳에서의 보통은 꽤나 다양했다. 

오히려 보통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퇴근 길에 자주 들렸던, 스푼스(Wetherspoons)는 B급 맥주를 취급해 가격이 저렴하다지만, 가성비 갑으로 자주 이용했다.


방 한 칸 더부살이


나는 한국회사의 영국 법인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새로 얻은 일로 인해, 근무지가 런던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위치한 탓에 이주를 해야만 했고, 그곳에서 세 명의 낯선 이들과 플랫을 쉐어해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원룸의 개념인 스튜디오 형태의 거주 공간은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대부분이었고 한 달에 1,000파운드(150만원)가 훌쩍 넘어갔다.

 

방세는 ‘런던’에 비해 합리적이었다. 

런던을 벗어나서 그런지 같은 가격에 큼지막한 더블침대와 옷장, 화장대, 책상, 스탠드가 있는, 혼자 쓰기에 충분이 넓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도 시내 한복판에서 월세 500파운드(75만원)을 내고 방 한 칸을 얻을 수 없어 룸메이트 한 명과 한 방에 함께 머무른 적도 있다. 부촌인 방크(Bank) 지역에서 운좋게 저렴하게 방을 구했다는 친구는 800파운드(120만원)의 월세를 내고 방 한칸을 이용하고 있었다. 


독일에 머무를 때도 느꼈던 거지만, 한국에서 자취를 할 때와 비교하여 그나마 유럽의 혼자살이가 좋다고 느끼는 건 "과하게" 부담스럽지 않은 보증금(Deposit)이었다. 


"천에 오십"

"사천에 칠십"


한국에 생활을 위해 건너온 외국인들을 단박에 나자빠뜨리는 표현인 어마무시한 보증금제도는, 한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온 내게는 행복이었다. 보통은 월세의 한 달치에서 석 달치의 금액을 보증금으로 내기에 초기에 집을 구할 때 부담이 덜하니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EPL자부심 군단 속에서 살포시 독일 국기를 꽂아두었다. @밀톤케인즈, 영국


Mon to Fri 
9 to 6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

연차는 회사마다 상이하겠지만 내가 다녔던 회사는 입사 1년 차라면 열흘 조금 넘는 일수. 그것도 일 년에 모두 소진할 수 없어 급여로 지급받기 일쑤. 

토요일과 일요일에 결혼식과 돌잔치가 연이어 생기면 주말에 쉼 없이 흰 봉투 챙겨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신세.

두세 시간 야근은 기본이라는 생각과 뻑하면 언급되는 회사의 비상경영체제에 야근수당을 신청할 수도 없는 그저 매월 같은 금액이 통장에 <급여>로 찍히는 일상.

야근하고 가는 길에 "오늘 기분도 그런데 한 잔 어때?"라는 상사의 말에 퇴근 시간은 자정을 넘고.


적어도 나에게는 보통의 월급쟁이 사무직의 일상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런 내게, 영국에서의 회사 생활은 특별했다.

회사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 두 발로 사뿐히 걸어가면 30분이 조금 안 되는 거리에 방을 구한 덕분에 출퇴근 길이 가벼웠다. 만원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았고, 퇴근 길에 운이 좋은 날이면 같은 블럭에 사는 동료의 차를 얻어타고 두 다리를 편히 쉬게 할 수 있었다.


아침 8시 출근, 오후 4시 반 퇴근.

점심 시간은 한시간 반.

근무 시간은 일곱 시간.

근무 시간 틈틈이, 아니 한 시간에 한 두 번 꼴로 나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공휴일이 없는 달이면 틈틈이 이 삼일의 연차를 써서 여행을 가는 사람들.

속이 좋지 않다며 사흘씩 출근하지 않는 동료.*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 없이.

정시 출근, 퇴근 시간 3분 전이면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


매일 아침 30분씩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정리하고, 점심 시간에도 자리에 남아 업무를 하고, 근무 시간 중에 틈틈이 휴식을 취하러 나가는 동료들 속에서 엉덩이에 껌이라도 붙은냥 자리에 앉아 있는 나는. 그들의 눈에 "보통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인종의 멜팅팟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에서, 다국적 출신의 동료들 덕분에 다양한 나라의 커뮤니티에 초대되었다. 삶의 균형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에 가능했다. @밀톤 케인즈, 영국


직장인 동호회


오후 네시 반에 끝나는 직장이라. 

잔업 없이, 야근 없이, 주말 근무도 없이 말이다.

일이 끝나고 남은 하루가 꽤나 길었다. 평일에는 퇴근 길에 저녁 약속 하나 잡는 것도 버겁기만 했던 내게 이런 여유는 되려 "뭘 해야하지?"라는 고민을 남겨주었다. 그런 내게 놀기 좋아하는 직장 동료들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자주 심심하지 않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반 씩 근처 체육관을 빌려 축구나 농구를 했다. 운동이 끝나면 다 같이 펍으로 이동해 맥주 한 잔씩 하며 일과를 마무리했다. 재미난 영화가 개봉하면 활달한 동료를 주축으로 단체로 영화를 보고 쇼핑몰에서 볼링을 치기도 했다. 내국인에게도 합법인 영국에서, 나는 난생 처음 카지노의 맛을 느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여자들끼리 또는, 젊은 동료들끼리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퇴근 길에 또는 주말에 축구팬들끼리 동네 펍에 모여 축구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축구 경기를 보여주지 않는 펍을 찾는 게 어려운 영국, 축구팬인 내게는 큰 기쁨이다. @밀톤케인즈, 영국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내게 영국에서의 삶은 특별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냄새가 났다.

일에 치이지 않고 일과 생활의 균형이 탄탄하게 맞춰질 수 있었다.

영어라는 언어만을 습득하는 게 아닌,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며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영국에서의 삶에 평온이 찾아왔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의사 처방전 없이 5일 미만으로는 HR담당자 혹은 매니저에게 연락한 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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