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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농부 Feb 07. 2016

설(雪) 울릉도, 눈과의 동행

겨울 울릉도는 눈(雪)이다. 6억짜리 제설차에 올라 추억을 밀어내 본다.


“눈이 없다. 눈이 안 온다. 눈으로 덮여 있어야 할 나물 밭에 잡초가 올라온다.”

예년 같지 않은 겨울 날씨에 밭에 나가 김매기를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이웃 어른의 당황스러운 푸념을 걱정했었다. 눈이 많이 내려야 봄에 고로쇠 물도 콸콸 뽑아내고, 녹은 눈이 지하로 스며들어야 여름철 식수로 되돌아온다. 나물도 눈을 덮고 자라야 제맛을 내며 봄철 밥상에 오를 수 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눈 예보가 있었지만, 울릉도는 또 비켜가나 싶었다.
19일 반가운 눈은 오전 내내 회색 시멘트 도로 바닥만 덮을 정도로 바람에 흩날렸다.
이번에도 이렇게 병아리 눈물만큼 뿌리고 가나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눈이 바다 쪽부터 쏟아지듯 내린다. 눈은 등산화 발등을 겨우 덮을 정도로 내렸지만 반가운 맘에 발을 끌며 눈을 헤치고 다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하늘에서 하얀 찹쌀가루 같은 눈이 나물 밭을 덮고, 수평선을 가리고,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난 23일과 24일, 온라인은 울릉도 폭설 관련 내용으로 뜨거웠다.
잠시 육지 다니러 간 동네 어른의 전화가 왔다. “집은 무사한가? 정말 뉴스에서처럼 아주 힘든가?” 

모두가 동시에 같은 소리를 내면 그게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다. 

130cm의 눈에도 울릉도는 잘 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밥 먹고 반찬 먹듯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그 “원래 그랬던 것”을 몸으로 느끼고 이야기하고자 겨울 오기 전부터 맘먹고 있던 작은 모험을 위해 온몸을 중무장한 다음 도로로 내려섰다.


이미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모양이다. 도로가 훤하다.

저 멀리 꾸역꾸역 흰 눈 사이를 지나다니는 덩치 큰 물체가 보인다.
울릉도에서 가장 비싼 차, 제설차다. 벤츠의 유니목 다목적 차량이다.
올겨울 이 차를 한번 타보는 게 작은 소망이었다. 함께 움직였다.

눈발이 뿌리기 시작하면 주황색 제설차는 나설 준비를 한다.
올라타기도 만만치 않다. 계단을 오르듯 세 번의 발 디딤 후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생김새 덕에 앞 시야는 훤하다.  앉은자리 너머 바로 길이다. 차 앞에 달린 삽날만 보인다.
2m 높이 의자 위에 앉아 한쪽으로 쓸려나가는 눈을 보면 순간순간 아찔하다.
운전자는 바쁘다. 제설 삽날을 길 모양에 맞게 이리저리 버튼을 조작해 눈을 한쪽으로 치우며 지나간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 이 차가 지나가야 다른 차들이 수월하게 다닐 수 있다.

겨울이면 ‘효자’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듣는 차. 제설차의 움직임만 봐도 주민들은 반갑다 한다.

울릉도 길은 어느 한 곳 쉬운 길이 없다. 오르막, 내리막, 굽잇길, 비스듬하게 굽은 길, 모두 제각각이다. TV에서 보는 것처럼 눈발 휘날리며 고속으로 눈을 치우는 그런 장면은 없다.

꾸역꾸역 차 다닐 만큼의 눈만 길가로 밀어낸다. 밀어낸 눈을 계속 밀고 나갈 수도 없고 어디 한 곳에 모아 둘 수도 없다. 그냥 길가로 밀어놓는 수밖에 없다.
제설차가 지나가도 승용차들이 맘대로 질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최소한 스파이크 타이어를 달아야 조심해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만들어진다.

장판처럼 정비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다. 오돌토돌한 시멘트 도로다.

그래도 고맙다.

제법 큰 몸집을 비비적거리며 먼저 왕래가 빈번한 관내 도로부터 치운다.
힘은 넘치는데 깨끗하게 치우기가 버겁다. 갑자기 내린 눈에 운행을 포기하고 길가에 세워 둔 차, 도로 한쪽을 차지한 주정차 차량, 도로는 좁아지고 제설한 눈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자리 찾기 바쁘다.

억지 요령으로 삽날을 이리저리 움직여 마술처럼 제설한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이웃 마을로 이어지는 일주 도로를 달린다. 길이 넓다.

읍 관내는 보통 두 대가 동시에 제설한다.
직선도로에 접어들자 도로의 눈은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삽날에서 밀려난다.
앞차가 치우지 못한 눈은 뒤차가 밀며 따른다.

제설차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금방 교행이 가능한 길이 만들어진다.

갔던 길 돌아오며 나머지 눈을 정리한다.

이제 주도로를 벗어나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제설차가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안 길은 경사도 심하고 급커브도 많다.

45도의 경사를 아무렇지 않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차지만 순간 긴장하고 손잡이를 잡는다.

날씨가 수시로 바뀐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리다 어느 순간 맑아진다.
눈이 ‘잠시 멈추겠다’는 울릉도 사람만의 직감으로 제설차는 차고지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이미 제설한 도로라도 삽날을 비비적거리며 남은 눈을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굽이굽이 오르막이 내리막이 되고 다져진 얇은 눈은 해가 지면 반질반질 흰색 빙판이 된다.
그런 길가에는 파란 물통이 틀림없이 있다. 제법 크다. 그 안에는 바닷물이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미리 채워 둔 해수를 그 언덕에 뿌려놓는다. 바닷물이 스며들자 녹은 눈은 질척거린다.

그래도 차들은 마냥 고맙다. 이 순간만큼은 차량 부식에 신경 안 쓴다.
바닷물은 염화칼슘보다 좋다. 돈도 적게 들고 눈도 빨리 녹는다.
‘우리만의 제설법’이다.


또 눈보라가 친다. 앞이 안 보인다.
제설차 운전자들은 며칠 동안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를 큰 임무처럼 어깨에 두르고 차에 오른다.


밤이고 새벽이고 눈이 땅을 덮으면 바로 육중한 애마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결빙 잦은 곳에 바닷물을 뿌리고, 굽잇길 눈은 앞으로 뒤로 움직여 모두 한쪽으로 치운다.
일직선 도로는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며 왕복 2차선을 훤하게 뚫는다.

3시간가량 동행했다. 피곤하다. 마치 거대한 세탁기 안에서 덜컹거리다 나온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제설 삽날의 덜컹거림과 육중한 차체와 바퀴에서 올라오는 소음에 포기하고 내렸다.

고맙다. 육지에서는 10cm 눈에도 재난이라 야단법석인데 우리는 “겨울 효자” 덕분에 걱정 없다.

마을 안 길은 참 난감하다. 일없는 겨울철 동네 어르신들은 경로당으로 모인다. 길이 나 있어야 한다.

경로당 멤버가 아닌 마을 젊은 어른(?)은 그들을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토끼 길을 낸다.

그 길을 어르신들은 장화 신고 지팡이를 짚고 나선다. 그들 장화는 양말을 신고 있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아주 큰 양말이자 아이젠이다. 지혜다.

“호들갑 떨지 말라  해!”
“아이고, 이게 눈이냐?”
“옛날에는 눈이 집을 덮어 날 샌 줄도 모르고 잤어, 눈이 문을 막아 어두웠거든.”
“그런 날에는 굴 파고 나가서 이웃집에 가곤 했지.”
모두 한 마디씩 하신다. 어렴풋하지만 대부분 사실이다.

어릴 적, 겨울이 시작되고 눈이 내리면 짓궂은 장난도 많이 했다.

눈 치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내린 눈은 좋은 장난감이었다.
친구 여럿이 서로 경쟁하듯 도랑에 흐르는 물을 눈으로 둑처럼 막아 한순간 터트려 아래 둑을 깨트리는

놀이부터 눈을 한 곳에 모아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아직 벌겋게 열기가 남은 연탄재를 가져다 어설픈

난방을 하기도 했다.
다져진 눈을 삽으로 사각 구덩이를 깊게 파고 뚜껑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 덮어둔다.

누군가 밟아 그 안에 빠지면 좋아하지 않을 뭔가를 넣어두거나 그냥 빈 공간으로 둬서 놀라게 하는 장난도

했다. 그해 처음 내린 눈은 봄이 와야 마지막으로 녹았다. 모두 추억이다.  

올해 유독 부산스러운 폭설 얘기에 순간 옛 추억이 떠올랐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왔다가 그냥 가나 싶어서 그런가 보다. 애타게 눈을 기다려 더욱 그런가 보다.

겨울이 겨울 같아야 울릉도가 울릉도다.
이 정도 눈은 해마다 왔고 더한 해도 많았다.

요즘, 제설차가 버스보다 더 자주 다니고, 공사에 쓰이는 육중한 굴삭기가 가소로운 듯 눈을 퍼내고,

쓰레기 수거 차량과 트럭들은 굴삭기가 건네준 눈을 실어 바다에 부어놓는다.
화물차에 파란 물통을 실어 그 안에 바닷물을 채워 다니며 결빙 구간에 바닷물을 붓는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주민들은 어느샌가 삽을 들고 자기 집 앞길은 자기가 알아서 치운다.

군청, 경찰서, 군부대에서도 모두 나와 거든다. 가게 주인은 손님 오기 전 가게 앞 눈을 정리한다.

한쪽에 쌓인 눈은 복개천 맨홀 뚜껑을 열고 그 안으로 부어 넣는다. 그 눈은 복개천을 따라 바다로 이어진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집 앞은 지역 단체 회원들과 자원봉사자 들이 말끔히 치운다. 마을 안 길은 작은 중장비가 곧바로 투입된다.

눈이 그치고 해가 나면 또다시 삽을 든다. 집 앞길을 넓히고 지붕의 눈도 걷어낸다.

이 모든 것이 울릉도에서는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눈 오면 삽 들고 눈 치우듯 그렇게 당연하다.





2016년 1월 26일 자 발행 기사입니다.

제목과 소제목을 바꾸고 바이라인을 삭제하고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원 기사 그대로 옮깁니다.

항상 뒤돌아 서면 아쉽듯  몇 번이나 글을 뒤적이다 그만둡니다.


"울릉도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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