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누구와 살게 되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난해함
(사진 출처: Art Of Conversation)
이 작품이 10월 초에 LA에 살고 계신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친손자를 보여주러 떠난 여행을 오가는 중에 비행기에서 봤긴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 감상문이나 리뷰를 쓰지 않았던 영화다.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2023년의 영화인지도 사실 난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영화의 이름은 이곳저곳에 떠다녔었고, 마치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았지만 대중에게는 외면을 당한 작품이었다는 막연한 이미지만 내 안에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적인 허영심으로 중무장했었을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기를 벗어나서는 좀처럼 잘 도전하지 않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며, 다양한 상징성과 비유로 무장하고, 난해함을 미덕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더 이상 보지 않고, 봐도 해석을 시도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내겐 볼 동기가 없었다.
그런데, 작품 수야 꽤 많지만 그중에 이렇게 쉽지 않게 해외를 다녀오는 과정에서 고른 영화라는 의미에 맞는 수준의 품질을 지닌 영화가 아무리 돌려봐도 잘 나오지를 않았다. 혹 그럭저럭 킬링타임용으로 볼만한 영화가 잡혔더라도 그런 영화라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만 가게 된다.
헌데, 이것 참. 나온 배우 중에 "톰 행크스"가 있고 "에드워드 노튼"도 있으며, "스칼렛 요한슨"도 있네? 단역이긴 하지만 "맷 딜런"과 "스티브 카렐", "윌렘 대포", "마고 로비", "틸다 스윈턴"까지도 나오는 화려한 캐스팅의 영화잖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적어도 참여한 배우의 면모를 보자면 일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으리으리한 배우가 참여할 정도라면 혹 재미없더라도 뭔가 영향력 있는 감독의 그럴듯한 작품일 게 분명하다는 계산이 섰다.
그런데, 틀고 나서 약 10여분 뒤에 그냥 그래 저래 보면서 끌려가긴 끌려가더라도 딱히 아주 재미있는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의미 없는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실험적인 구성을 통해서 관객의 주의를 빨아들이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본편인 스토리는 황당 무계하다. 한때 외계의 운석이 떨어졌던 적이 있었던 사막의 한 공간에서 영재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과학 경진대회 같은 것이 열리면서 참여 학생과 그 부모가 이곳에 이 도시에 모인 스토리를 "내레이터"가 나와서 설명하는 동시에 극에 관련된 전위적 연극이 나온다.
본편의 배우가 어떻게 섭외가 되어서 배역을 맡게 되었고, 각본가와 각 배우 간의 대화와 교감이 오가는 상태와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각 배우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그리는 전위적인 연극이 이 영화 본편의 뒤에서 본편의 주요 배역을 또 다른 배우가 맡아서 진행한다. 그러면서도 본편은 자연스러운 스토리를 이어가는 분위기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끝까지 진행되고 마무리가 되니 신기할 정도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도시에서 갑자기 "외계인"이 모두의 앞에 나타난 뒤로, 공적 기관에서는 언론을 통제하면서 벌어진 상황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그 방문객을 모두 도시에 가두고 폐쇄시키는 작업을 하는데, 수많은 클리셰로 벌어진 스토리이고 때로 감금된 모두가 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맞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각각의 인물과 관객이 맞는 것은 삶의 "불가해함"이란 철퇴다.
색상이 원색으로 지정되어 이것이 그냥 만들어진 임의의 세트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흑백처리된 전위연극의 무대는 그 또한 인위적인 무대임이 너무도 뻔한데, 우리는 그런 인위적으로 한정된 의미를 지니고 배치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서조차 어이를 잃을 수준의 난해함을 경험할 수 있다.
각각의 스토리 중에는 다소 복잡 다단한 가족사를 통해서 "자살을 한 배우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가 죽음의 저 건너편에서 다시 다가와 남편과 대화를 하며 사랑의 언어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저런 "극 속의 스토리 라인"의 내외부에 깔린 장치를 뻔히 알면서도 스토리의 난해함에 비틀리는 관객은 어느 순간에선가 자신의 한정되지 않는 요건으로 구성된 삶의 난해함과 불가해함 속에서도 다행히 정신줄을 놓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우리임을 무심결에 깨닫게 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그럼으로써 오히려 현실이 우리가 보는 영화나 연극 같은 극화화된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것들로 뒤덮여 있음이 뻔한데도 극의 어느 부분이 난해하고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더 알아가길 그만두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는 아무리 어려워봐야 현실에 비교해서는 상대 안 되는 뻔한 질문이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엄청난 흥행을 지향하는 감독의 작품도 아니고 이런 방식의 실험을 통해서 좀 더 색다른 영화적 경험을 받고자 하는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재간을 가진 "웨스 앤더슨" 감독이 만들었고 그와 함께 원안을 짜는 작업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아들인 "로만 코폴라"가 참여했다. 딸인 "소피아 코폴라"만 감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코폴라"집안은 남녀 가리지 않고 영화를 가업처럼 잇고 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각본에 있어서 비중이 높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로만"인 것 같다. 감독인 "웨스"와의 공동작이 여러편 있다. 이런 종류의 발을 지상에서 잠시 띄우고 천상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에겐 이 작품이 취향에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겐... 글세, 어느 날밤 잠에 들려다가 불현듯 떠올라서 갑자기 글 한편 순식간에 남기게 만든 불가해한 작품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