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창업을 하게 되면서, 포트폴리오 대신 사업계획서와 IR자료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짐워크 팀은 총 4개의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해 서류합격률 100%를 기록했다.
2023년 예비창업패키지 (최종 합격)
2025년
구글 창구 7기 (최종 합격)
초기창업패키지 (서류합격)
SW마에스트로 창업기업 (서류합격)
올해는 구글 창구 프로그램에 최종 선정됐고, 초창패와 소마는 중복 수혜가 되지 않아서 서류합격 후 지원취소를 하게됐다.
브런치에 첫 창업 스토리를 올릴 때만해도 ‘드디어 포트폴리오 안 만들어도 된다 럭키비키~’라고 외쳤지만...이제는 나를 위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우리 팀과 제품을 소개해야하는 더 큰 미션이 주어졌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와 사업계획서는 꽤나 유사한 점이 많다. 포트폴리오가 [문제정의 > 해결방법 > 정성적/정량적 결과]로 구성된다면 사업계획서는 [문제 인식 > 실현가능성 > 성장전략 > 팀구성] 으로 포맷이 정해져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핵심은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얼마나 빠르게 이해시키느냐이다.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핵심 가치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은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늘 일하는 방식이다.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디자이너라면 사업계획서도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사업계획서나 IR 자료를 볼 때, 심사위원이나 투자자는 수십 개의 문서를 연달아 본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꽂아넣는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시각화다. 요즘은 AI 툴들이 많이 나와서 누구나 그래프를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가장 직관적으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포트폴리오에서 실제 성과와 스토리텔링의 비중을 체감상 5:5 라고 친다면 사업계획서는 8:2정도 되는 것 같다. 포트폴리오는 그 프로젝트가 뛰어난 성과를 내지 않았더라도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걸 풀어나갔는지, 실패했다면 어떤 레슨런을 얻었는지 과정을 설득력있게 풀면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은 다르다. 실제로 이 아이템을 어디까지 구현했고, 시장 크기는 어느정도인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지 등 보여지는 숫자가 합격여부를 가른다. 컨설팅이나 합격 꿀팁 글에서 알려주는 기본적인 것들은 모르면 떨어질수도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합격하진 않는다. 중요한건 실제 사업 성과다.
예창패를 지원할 때 짐워크는 제품을 운영하며 매출을 내고 있었고 초창패에서는 시드투자 유치 후 3개월 동안 매출이 3배정도 뛰어서 보기 좋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강점을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자유형식인 포트폴리오와 다르게 사업계획서는 각 장표에 들어가야할 내용과 최대 페이지 수가 명확하게 정해져있다. 이미지와 함께 작성하다보면 분량이 쉽게 넘어가곤 해서 최대한 핵심만 간추리려고 노력했다.
※ 서류에서 합격 후 발표자료를 제출하라고 할 때 최대 분량 제한이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발표시간은 어딜가나 10-15분 정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만들어야한다. 열심히 30페이지 만들었다가 발표장 가서 랩 할수도 있으니 주의..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레퍼런스부터 모아본다. 그렇다면 사업계획서의 레퍼런스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업계획서 합격 팁을 알려주는 글들이 참 많지만 그래도 가장 도움이 됐던건 실제 사례들을 보는 것이다. 합격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좋겠지만 여건이 안될 경우 유튜브에서 IR 데모데이, 피칭데이 등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료는 포맷이 거의 비슷하게 작성되기 때문에 참고하기 좋다.
그 중 우수상 이상으로 선정된 서비스나 비슷한 헬스케어 섹터에 있는 서비스를 보고 어떤 구조로 설득했는지 보는게 도움이 됐다.
1. ChatGPT에게 비즈니스를 학습시킨다. 짐워크의 경우 기존에 만들어둔 IR자료가 있어서 PDF와 텍스트를 학습시켰다.
2. 사업계획서 템플릿에서 문항별 요구사항을 알려주고 초안을 요청한다.
3. 직접 수정한다.
사실 초안으로 나온건 진짜 감을 잡기 위한 용도고 대부분은 다시 쓰게된다. 방향성이 모호하면 GPT도 그럴듯한 말만 꾸며낸다. 마치 애매한 사주결과처럼 어떤 비지니스에도 해당할 것 같은 좋은 말들은 걸러내고 내 서비스를 뾰족하게 정의할 문장들을 잘 뽑아내야 한다.
※ 숫자와 관련된건 자꾸 그럴듯하게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에 시장 규모나 수치는 통계 사이트에서 직접 찾아보는게 안전하다. 사업비 집행계획도 계산을 자꾸 틀려서 여러번 혼쭐을 내줘야 한다.
예창패는 보통 20:1의 경쟁률이라고 한다. 서류 합격만 해도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우리 팀이 합격률 100%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사업 성과 덕이 크지만, 그 성과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 글이 초기 창업팀, 특히 프로덕트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스타트업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이 제너럴리스트 경험이, 창업할 때 강점으로 발휘되는 순간들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