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못된 판단. 집중되지 못한 투자
반면 레거시 반도체의 선도자였던 인텔과 삼성전자는 AI 시대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특히나 인텔의 몰락은 처참할 지경입니다. 8월에만 40%가 넘는 주가 하락을 맞아야 했고, 다우지수 탈락 위기까지 몰린 것이 인텔의 현 상황입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비싼 가격에 인수했던 알테라는 매각을 고려중입니다.
특히나 팻 갤싱어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IDM 2.0의 핵심축인 인텔 파운드리는 분사 및 매각을 고려중입니다. 물론 인텔 파운드리 매각 설은 그 다음날 바로 가짜뉴스라는 오피셜 입장이 있었기에 논외로 치더라도 알테라의 매각은 좀 충격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알테라의 주력 사업분야는 프로그래머블 반도체인 FPGA입니다. FPGA는 말 그대로 회로 패턴의 프로그래밍이 어느 정도 가능한, 그래서 하드웨어 단에서의 구조 변경이 가능한 매우 특수한 형태의 반도체입니다.
FPGA가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프로그래머블 소자 안에 병렬 연산이 가능한 코어 구성이 가능했기 때문에 병렬 연산이 주가 되는 AI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텔의 생각과는 다르게 GPU 중심의 AI 가속기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FPGA 기반 기업들의 위상이 작아지며 위기의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텔은 왜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인텔의 경영진의 미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텔은 2015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의 상징이었습니다.
공동창업자였던 무어가 주창했던 '무어의 법칙'에 의거하여 2년에 한 번씩 반도체의 집적도와 성능을 두 배씩 향상시키는 괴물 개발력을 앞세워 그들은 시장에서 승승장구 했습니다.
14나노까지는 무어의 법칙에 의거하여 1년은 공정개선, 1년은 아키텍처 변환이라는 미친 로드맵을 차질없이 진행했던 것이 인텔의 과거였습니다.
그런데 틱톡을 진행하다 보니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합니다.
반도체 공정을 미세화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미세화를 실현하는 데에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설계 난이도와 코스트 또한 증가하게 되었고, 수율을 잡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1년을 주기로 돌아가던 공정 개선과 신규 아키텍처 개발이라는 미친 로드맵을 따라가는 데에 점점 역부족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의 원흉이 등장합니다. 인텔을 오늘의 나락으로 빠뜨린 초석을 닦은 것으로 평가 받는 크르자니크 CEO의 당장이었습니다.
크르자니크의 만행은 무분별한 사업확장, 그리고 주요 인력의 무분별한 감축에 있습니다.
특히 공정과 설계인력을 대거 감축하면서 재무적 개선을 꾀했습니다.
그런데 인텔의 경쟁력은 결국 설계와 공정 개발이 2년을 주기로 틱톡을 주고 받으면서 타이트하게 운영되어 온 개발 역량에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크르자니크는 부임하자마자 틱톡 전략을 폐기합니다.
그것은 물론 공정과 아키텍처 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개발비를 감축하고자 하는 재무적 목표가 그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틱톡이 폐기되고 엔지니어가 대거 해고되면서 인텔은 혁신 DNA를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이후 인텔은 5년간의 14나노 장인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게다가 후임으로 등장한 로버트 스완까지 재무 통이었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집중한 나머지 장기적 안목의 기술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회생할 수 있는 실낱같은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크르자니크와 로버트 스완을 거친 5년의 시기가 인텔에게는 암흑기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시장 1등이었지만 기술력은 뒤로 쳐지면서 시장의 신뢰를 상실해 갔습니다.
AMD의 불도저가 망하면서 어부지리로 시장 점유율을 얻어왔던 PC 시장에서 경쟁자 AMD의 혁신의 아이콘 리사수 누님이 현대 반도체의 아버지 팀켈러와 손을 잡고 라이젠 시리즈를 론칭하고 이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인텔은 14나노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 가면서 소비자들을 실망시킵니다.
이후 기술 통이며 원조 인텔맨인 팻 갤싱어가 인텔의 CEO에 오르면서 인텔은 비로서 혁신의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됩니다.
갤싱어 개혁의 주된 키워드는 인텔 기술력의 회복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갤싱어는 핵심 CPU 코어를 제외한 부수적인 타일들을 TSMC에 외주로 맡기면서 인텔의 제조 기술력을 점진적으로 확충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후 2012년 시작했다가 2018년 접었던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부활시키는 강수를 둡니다. 파운드리 사업을 활성화 시킴을 통하여 공정 기술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젠 더이상 14나노 장인이 아닌 기술 선도자의 지위를 되찾아 오겠다는 팻 갤싱어의 강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혁신은 지난 5년간의 부풀어 오른 암덩이를 도려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을까요?
급하게 공정 개선을 이루어 나갔지만 터무니 없는 수율은 인텔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
X86 아키텍처를 공개하면서까지 적극적 구애에 나섰던 파운드리 사업은 끝모를 적자의 폭탄을 끌어 안고 분사 및 상장을 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래를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인수했던 알테라는 매각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시장에 박살나버린 신뢰는 도무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갤싱어가 미래 사업으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AI 가속기와 외장 GPU 사업은 점유율 면에서 잡히지도 않을 정도의 굴욕적인 스코어를 기록중입니다.
기존 캐시카우였던 PC, 모바일, 서버용 CPU 사업에서도 AMD에게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내주는 상황입니다.
신사업이 잘 안 되면 캐시카우 사업이라도 잘 되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흔들려 버리니 인텔로서도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두명의 전 CEO가 저지른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의사결정이 인텔을 나락으로 모는 처참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https://link.coupang.com/a/bRKmrO
또다른 레거시 강자 삼성도 살펴볼까요?
삼성은 메모리 패권사입니다. 하지만 그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AI 중심의 반도체 시장의 재편, 그리고 HBM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에게도 전략적 미스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는 2019년 삼성전자 경영진에서 HBM 개발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 미스가 절대적입니다.
앞서 SK 하이닉스는 HBM의 시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뚝심있게 버텼습니다. 그 과실을 지금 수확하고 있죠.
하지만 삼성은 2019년 HBM3의 개발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GDDR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죠.
높은 개발 비용, 낮은 수율, 무르익지 않은 시장 등 2019년 당시의 HBM 시장은 그리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콘솔 시장이 확장되고, PC에서도 그래픽 연산이 굉장히 중요해지면서 GDDR이 관심을 받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엔비디아가 끼어듭니다. 엔비디아는 전통적으로 GDDR을 마이크론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점점 커지는 그래픽 D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엔비디아 납품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죠. 삼성전자는 여기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대신 HBM을 접는 악수를 둔 것이었죠.
하지만 그후로 3년 뒤인 2022년 12월 CHAT GPT가 등장했고, 시장은 급격히 생성형 AI 가 모든 모멘텀을 흡수하는 기형적 구조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글로벌 IT 경기는 침체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AI 분야에서만큼은 불황을 모르는 호황이 계속됩니다. AI 가속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선제적으로 시장의 확장을 꾸준히 준비해 왔던 엔비디아와 SK 하이닉스가 AI 붐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높은 데에서 낮은 데로 흐르듯 돈도 레거시에서 빠져나와 신흥시장으로 흐르기 마련이죠.
전통의 강자에 몰리던 돈이 신흥 강자들에게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레거시 반도체 공룡들은 속절없이 시대의 변화 앞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발빠르게 시장에 대응하면서 시장에 적응을 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인텔은 손발을 잘라가면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중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죠.
3. 정리
레거시 반도체 회사들과 신흥 강자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입니다.
수장을 바꾸고, 불필요한 사업들을 쳐내면서 레거시 강자들은 각자도생 모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흥 세력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습니다. AI 초기 투자 붐이 주춤해지면서 이들에게도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이젠 누가 더 유연하게 시장에 반응할 것인가의 싸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구조 조정의 혹독한 겨울을 맞은 레거시들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체질 개선과 발빠른 신규시장 개척 등 유연한 대처로 현재의 정체된 분위기를 신흥 강자들이 잘 헤쳐나가 새로운 개선장군이 될 것인가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