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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Sep 23. 2022

여행길 끄적끄적

오스트리아 여행(2)

-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9시간 반. 두바이에서 4시간 반 대기. 두바이에서 비엔나까지 6시간.

오스트리아 땅을 밟는 데까지만 20여 시간이 걸렸다. 그 외에도 인천공항까지 가는 공항버스와 비엔나에서 인스부르크까지 가는 기차를 따지면, 이동하는 데만 24시간 이상이 걸린 셈. 최종 목적지인 인스부르크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푹신한 침대에 앉는 데도 엉덩이에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 그러나 이게 얼마만의 비행이었던가.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꽉 막힌 공간에 오래도록 앉아있는 게 힘들까 봐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두바이에서 환승한 덕에, 비엔나 가는 하늘 길에서 이라크도 지나고 터키도 지났다. 두바이는 중심가의 높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낮아 보였다. 납작하게 바닥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달까. 이라크는 전반적으로 황톳빛이고, 건물들이 마치 전자제품 속 부품처럼 생겼다. 그리고 민둥산 같이 보이는 곳에서 불이 나고 있었는데, 그건 과연 뭐였을까. 화산이었을까...? 그곳을 지난 뒤에는 섀도우 팔레트같이 생긴 대지들을 지났다. 거의 평평한 대지만 펼쳐지다가 터키 쪽으로 들어서니 산맥이 나타났다. 산 색깔이 붉은빛을 띠어서 오묘했고 미국 네바다 느낌이 들기도 해서 친근했다. 뒤이어는 흑해(black sea) 도 지났다. 오스트리아에 거의 다 왔을 쯤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지났는데, 인터넷이 안 터지니 어설프게 로딩되는 구글 지도를 확대해가며 그 유명한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을 쥐 잡듯이 찾았다. 국회의사당 건물 자체는 작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지도의 모양과 일치하는 지형을 찾았다. 이제부터 나,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본 사람이다. 그것도 하늘에서.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도 비행기에서 봤다...!


- 냉동식품 냄새나는 기내식도 마냥 맛있어서 주는 족족 해치웠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기내식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메인 음식에 빵, 버터, 크래커, 후식(과일이나 케이크 등), 체다치즈, 시리얼 바가 쟁반 하나에 다 담겨 나왔다. 항공사에서 "어디, 배고프다는 말 하기만 해 봐라!" 승객을 혼쭐이라도 내는 모양이었다. 이동하는 24시간 동안 기내식과 공항 음식을 포함하여 거의 여섯 끼를 먹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못할 일. 그 음식을 나의 허약한 위장이 모두 소화시켰다는 게 신기하다. 역시 여행 체질이다.


- "역시 여행 체질이다."라는 말이 좋다. 내가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할 수 있을 때 기분 좋고 뿌듯하다. 나에겐 '여행 매직'의 효과가 큰 편인데, 사실 최근에 여행을 워낙 못 가다 보니 내가 변하진 않았을까, 더 이상 나에게 여행 매직같은 건 통하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장시간 비행에도 잘 먹고 잘 자고 즐거운 걸 보면 아직 여행 매직은 유효한가 보다. 천만다행이다.

+

평소 지독하던 숙취가 여행 중에는 사라지고, 저질 체력이 강철 체력으로 바뀌기도 한다. 아무리 여행이라도 이건 너무 신기한 거 아닌가. 평소엔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 비행기를 오래 타면 온몸이 땡땡 붓는 편. 그래서 무조건 편한 옷을 입는다. 이번에는 벙벙한 초록색 긴팔 카라 원피스를 입었는데(피케 원피스라고 하던가), 아무것도 안 입은 것처럼 가벼워서 비행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륙하고 나니 아무것도 안 입은 느낌 그대로, 몸이 슬슬 추웠다. 기내에서는 다행히 담요를 줘서 잘 버텼지만 담요를 반납하고 내린 두바이 공항 더 추웠다. 바깥 기온이 워낙 높아서인지 실내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모양이었다. 환승을 기다리며 비스듬한 의자에 누워 쿨쿨 자고 나니 온 몸이 얼어있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가방을 뒤졌지만 내 백팩에는 카키색 조거 팬츠뿐... '그래, 평소에는 남 눈치 지겹도록 많이 보지만, 여행 때만큼은 또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며 그 조거 팬츠를 원피스 안에 입어버렸다. 초록색 원피스 안에 카키색 조거 팬츠... 화장실에서 당당하게 입고 나왔지만 막상 너무 창피해서 고개 들기가 힘들었다(같이 다니는 남편은 무슨 죄일까). 아무리 여행이라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는 편하면서도 따뜻한 옷을 챙기자. 이것이 이번 비행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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