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싸놓고 도망친 옆집 닭……
눈을 떠도 감고 있는 것 같은 밤이었다. 이삿짐을 대충 치워 놓고 바깥에 나왔는데, 집 말고는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 있었다. 하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별들!
”우와 ~시골 밤은 진짜 깜깜하다~. 오빠, 하늘에 별이 빼곡해~!“
조잘대다가 생각해 보니 드디어 정말 그날이 온 거다. 시골에 집 짓고 사는 날.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바로 그날이.
눈 뜨는 매일 아침이 선물이었다. 누군가 공기를 뽀드득뽀드득 깨끗하게 닦아 코로 넣어 주는 것 같았다. 집 뒤에 있는 문수산 덕분이었다. 코로 들어가 코털 사이사이를 지나 폐로 들어가는 공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그 길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맑았다. 서울에서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제 몸에 시계라도 있는지 정확한 시간에 우는 닭 소리도 신기했다. 옆집 닭이 울면 뒷집 닭도 따라 운다는 것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어느 가을 다 키워 놓은 배추를 옆집 닭이 쪼아 먹은 적이 있었다. 한 마리가 닭장을 탈출한 것 같았는데 얌전히 한 포기만 먹지 요란스레 세포기나 쪼아 놓았다. 마침 밭에서 똥싸고 있는 녀석을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옆집 아버님께 인계해 드릴 수 있었다. 닭을 잡고서도 타박할 수 없었다. 얼굴은 보지 못 했어도 매일 아침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이 들었고 알람시계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그 노고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배추 서리하고 똥 싸 놓고 토낀 닭아.‘
“짓고 싶던 농사 마음껏 짓자.”
“김장도 우리가 키운 배추랑 무로 하고.”
“어머머~ 고추 심어서 고춧가루도 만들어 볼까?!”
삽으로 흙을 뒤집어 돌멩이를 골라내고 거름을 골고루 섞어줬다. 물 잘 빠지라고 둔덕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잡초를 예방하기 위해 검은 비닐로 팽팽하게 감싸서 멀칭도 해줬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들은 최대한 사지 말고 심어서 먹자.’ 그래서 매년 배추도 다 직접 심어서 김장을 했다. 한 해는 고추 농사도 지어서 그 고춧가루로 김치도 해봤는데 딱 1년 하고 포기.부지런히 약을 쳐야 하는 고추 농사는 게으른 우리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상추, 깻잎, 루꼴라, 바질, 고수, 토마토, 오이, 양상추, 가지, 호박, 파프리카, 옥수수, 고구마, 수박, 양파, 삼채, 쪽파 정도만 심어서 먹었다. 농사는 YouTube 선생님, 네이버 선생님들께 배웠다. 20대 때부터 주말농장으로 경험을 쌓았기에 나름 밭에서 방귀 좀 뀐다고 생각했는데, 동네 분들이 보시기에는 영 어설펐나 보다. 오며 가며 보다가 오이지주대 같은 것들이 잘못 되어 있으면 들어와 고쳐 주시며 ‘그래도 열심히 하는 게 기특하다’고 활짝 웃어 주셨다. 그것만큼 큰 칭찬이 또 있으랴!
심을 때 보람차고 자라는 모습을 볼 때 신기했다. 먹을 때 맛있고 나눌 때 행복했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우리는 게으른 농부라서 수학 하는 것보다 벌레 먹어 버리는 것이 더 많았다. 그래도 비, 바람과 햇살 덕으로 둘이 먹고도 충분히 나눌 만큼 딸 수 있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걸 농사를 지으면서 또 배웠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청난 농사 선배님이 생겼다. 옆마을에 사시는 용강리 전 이장님, 영범이 삼촌. 농사뿐만이 아니고 이 동네의 역사를 비롯해 모르는 게 없는 분 이다. 논농사를 크게 지으시는데, 쌀은 항상 삼촌을 통해 사서 먹는다. 그때까지 나는 밥맛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맛’ 이라는 타이틀은 음식에게나 어울리는 것, 밥에게 붙여주는 건 사치 라고 생각했다.
쌀은 직거래로 이뤄졌다. 삼촌께 필요한 킬로 수를 말씀 드리면 도정이 가능한 날짜를 알려주셨고, 그날에 맞춰서 쌀을 받으러 가면 됐다. 흙이 좋은 곳에서 좋은 물로 농사 지은 쌀이었다. 게다가 어떤 유통 경로도 없이 갓 도정한 쌀을 직접 받아서 밥을 지으니 냄새가 구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윤기가 좌르르르~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촉촉하고 마치 가마솥에 한 밥처럼 식감이 찰지다. 첫맛이 누룽지처럼 구수하고 씹을수록 뒷맛이 달큰~하다. 이게 진짜 ‘밥맛’이다. 반찬 없이도 고기 없이도 혼자 고고하게 빛나는 진정한 ‘밥의 맛.’
몇 년이 지나도
농사는 질리지 않고 재미있다.
자연은 무뎌지지 않게 매일 경탄의 대상이다.
나는 전원 생활이 완전체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