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의 개척민들은 너도나도 캘리포니아로 몰려갔다. 그 수는 무려 2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훗날 '골드러시'라 불리는 광기에 휩싸인 현상의 포로가 된 개척민들은 '포티나이너(Forty-niner)'라는 고유명사까지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었다. 금맥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금 광산을 소유한 사람도 아니었다.
1850년대, 미국 서부의 골드러쉬의 진정한 승자는 아래의 몇 사람뿐이었다.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을 캐는 데 필요한 삽, 곡괭이 등의 도구와 생필품을 선점한 상인 샘 브라이턴, 찢어진 광산 천막을 질긴 바지로 재탄생시켜 청바지의 원조가 된 리바이 스트라우스, 그리고 고향에 송금할 수 있도록 역마차 운송업과 더불어 초대형 은행 '웰스파고'의 기반을 마련한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가 그들이었다.
1850년대 세계 최대의 채굴량을 자랑하며, 이곳에서 번 돈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먹여 살렸다는 우화가 전해지는 버지니아 시티는 이제 조그마한 관광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의 델타 살롱 카페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 유명한 데, 한쪽에 전시된 자살 테이블(Suicide Table)이 눈에 띈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온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은 광산 측과 주로 일 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는데, 계약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면 받은 일 년 치 급료를 몽땅 들고 이곳으로 몰려와 술과 도박을 즐기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년을 지내며, '골드러시'의 허상을 깨닫게 된 몇 몇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은 마지막으로 돈을 털리는 순간, 스스로 권총을 빼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자살 테이블(Suicide Table)'에서.
우리에게 '클레멘타인(Oh, My Darling Clementine)'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미국 서부의 민요는, 한 포티나이너가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라는 자조 섞인 노래를 부르게 된 이후, 널리 퍼져 나아갔다고 한다.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스타트업들에게,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포티나이너(Forty-niner)의 자살 테이블(Suicide Table)이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골드러쉬와 같은 변화의 시기에는 금맥을 찾지 말고 청바지를 팔 수 있는 플랫폼적 사고가 필요하다'라는 식의 방법론적 접근을 넘어, 명확한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에 기반한 본질에 충실한 자세를 강조하고 싶다.
지난 9월 미국의 유명한 벤처캐피털 벤치마크(Benchmark)의 빌 걸리는 '실리콘밸리가 지나친 리스크를 지고 있다. 1999년 이후,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라며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업가치가 급등한 핀터레스트나 드롭박스 같은 스타트업들이 주가순익비율(PER)에서 순익이 없지만, 주가가 연 매출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에서 거래되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거품이 때론 스타트업들뿐 아니라 창업정책 운용자에게 장미빛 환상으로 비추어지며, 실리콘밸리라는 지역 생태계를 미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함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