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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 Oct 27. 2019

(-) 평준화된 고등교육시스템?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시스템

    왜일까?


    내게 프랑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학 평준화였다.


    "파리 소르본 대학을 위시한 프랑스의 여러 대학들, 파리 1대학, 2대학 등으로 평준화하기로 결정", "SKY로 대변되는 한국의 학벌주의는 없어져야"는 식의 주장을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시앙스포라는 그헝제꼴(Grandes-Écoles)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을때도 그헝제꼴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고, 왜 시앙스포는 파리1대학, 2대학과 이름이 다른가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랑스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이 사회에 대해 정말 몰랐던거 같다.


    파리에 오고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은 크게 대학(l’université)과 그헝제꼴(Grandes-Écoles)로 나뉜다. 20여년 전 필자가 뉴스에서 봤던 파리 1대학, 2대학 등은 대학(l’université)에 속하는 학교다.


    한편 그헝제꼴은 분야에 따라 다양한 학교들이 있다. 예컨대 정치/행정의 경우 Sciences Po, ENA(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경영은 ESSEC Business School, HEC Paris, 교육학은 ENS(École Normale Supérieure), 공학은 École polytechnique(공학+국방) 등이 있다.


    따라서 2000년대 당시 프랑스 대학의 평준화를 언급하면서 한국 대학제도도 평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헝제꼴은 평준화하지 않고 여전히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에서도 한국식 대입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대학(l’université) 입학은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을 일종의 권리로 보는 관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헝제꼴 입시는 철저한 경쟁 시스템이다. 이러한 이원화된 시스템을 이해해야 최근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들이 마크홍 대통령의 교육 정책(대학에게 학생 선발권을 일부 부여하는 것)을 왜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래 기사 참고: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47619&plink=ORI&cooper=NAVER)


    이런 점에서 보면 그헝제꼴은 우리나라의 대학 시스템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필자가 프랑스의 고등교육시스템(그헝제꼴)에 대해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성적지상주의와 아비투스(habitus)

    그헝제꼴에 들어가기 위한 경로는 몇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입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프레파(prépa  또는 CPGE: Classe préparatoire aux Grandes Écoles) 과정을 2년 동안 거친 후 그헝제꼴 입학시험을 치른다. 프레파 과정은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존재한다.



    하루는 필자가 프랑스에 있었을 때 Le Monde지 1면에 어느 고등학교 프레파 프로그램을 졸업한 학생들이 그헝제꼴에 가장 많이 입학했는지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순위를 매긴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난 것을 보았다. 소위 '대학 평준화'로 알게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일간지 1면 머릿기사에 고등학교 순위를 게재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만일 한국에서 어느 고등학교가 유명 대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켰는지가 주요 일간지 기사에 나온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사진 2: 2018년 르몽드에 실린 공립/사립 고등학교 전국 순위 (링크주소가 길어서 따로 표기하지 못했음)>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헝제꼴에 입학한 학생들의 면모를 보면 상당히 동질적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인종(시앙스포의 70-80% 학생들이 백인)뿐만 아니라 집안을 보더라도 부잣집 출신이 많다. 시앙스포의 편에서 변호하자면 다른 그헝제꼴에 비해 시앙스포는 (서울대로 치자면) 지역균형선발제도를 통해 부잣집 출신이 아닌 학생들도 뽑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래 기사 참고: https://www.thenation.com/article/france-affirmative-action-college-admissions/)


    편향적일 수 있지만, 필자가 2년 동안 시앙스포에 다니면서 알게된 프랑스 친구들의 절대다수는 소위 부잣집 출신이었다. 사실 프레파라는 과정 자체가 집안의 지원 없이는 힘들다.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성장환경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헝제꼴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넌 어렸을 때 그헝제꼴 갈 생각 없었어?'라고 필자 지인들에게 자주 묻곤 했다. 한 지인은 어렸을 적에 그헝제꼴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면서, 그헝제꼴을 나온 부모가 있는 경우 어렸을 때부터 이에 대해 많이 들었고 부모의 친구들도 대부분 그헝제꼴 출신이기에 그헝제꼴에 가는게 자연스럽다고 답했다.

    

   몇몇 지인들에게 들은 것을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돈의 문제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문화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아비투스(habitus)" 개념과 연결된다. "문화자본"이라는 이 개념이 다름 아닌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웠다. 물론 아비투스가 프랑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이는 미국, 영국, 한국 등 대부분의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보편적인 개념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이러한 무형 자본이 상대적으로 은밀하게 세습된다고 느껴서일까,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프랑스를 이끄는 엘리트주의

    그헝제꼴 졸업생들이 프랑스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주요 보직과 관직을 꿰차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례로 시앙스포가 배출한 프랑스의 대통령이나 정계 인사들은 수두룩하다. 프랑스 제5공화국 (1969년-현재) 동안 시앙스포 출신 프랑스 대통령으로 조르두 퐁피두(1969-74), 프랑수와 미테랑(1981-95), 자크 시라크(1995-2007), 프랑수아 올랑드(2012-17), 임마누엘 마크홍(2017-현재)이 재임했다는 사실은, 프랑스 제5공화국의 대부분을 시앙스포 졸업생들이 주도했음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국무총리, 국제기구 고위인사들을 배출해왔다. (https://www.sciencespo.fr/international/en/content/alumni 참고)


< 사진: ENA 홈페이지 (출처:https://www.ena.fr/)>

    한편 ENA(우리나라로 치면 중앙공무원교육원(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해당) 졸업생은 "에나크(Énarques)"라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프랑스의 정, 관, 재계를 장악해왔다. 그런데 2017년 기준 ENA 입학생의 82%가 시앙스포 출신이라는 통계(https://www.sciencespo.fr/public/fr/actualites/ena-82-des-nouveaux-admis-viennent-de-sciences-po.html)는 ENA 입학생의 대다수가 시앙스포 졸업생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제5공화국 대통령 중에는 시앙스포-ENA 졸업생으로 자크 시라크, 프랑수아 올랑드, 임마누엘 마크홍이 있다. 시앙스포-ENA 코스는 교육과정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으로 치자면 KS(경기고-서울대)와 유사하다. 


    노란조끼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2019.4.26, 마크홍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 제도를 개혁할 것이다. 더는 능력 본위의 시스템이 아니며 공직자의 평생 고용이 필요하지도 않다"면서 ENA를 폐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실제 동 조치가 프랑스 엘리트주의의 해체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하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드는건 왜일까.


모두가 행복한 사회?


    2016년-18년 파리에 있었을 때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벌였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행복이었다. 이 친구들은 프랑스에서는 그헝제꼴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이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면서 살아가지만, 한국은 소위 SKY나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본인들도 불만족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한국의 교육경쟁이 너무도 치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헝제꼴을 나오지 않은 프랑스 사람들이 삶에 만족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반박했다. 그헝제꼴 나온 사람들이 버는 보수와 사회적 명성, 지위를 알고서도 그헝제꼴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과연 만족해할까? 본인들의 자식들에게도 그헝제꼴을 권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필자는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보기에 그헝제꼴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만족해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이루었기보단, 단지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이게 '행복한 사회'일까?


<사진 3: 프랑스 노랑조끼 시위대 (출처: Anadolu Agency/Getty Images)>


    그날 밤 친구들과의 열띤 논쟁이 훨씬 지난 2019년, 뉴스를 통해 프랑스에서의 노란조끼 시위를 접하면서 필자의 생각이 옳지 않았나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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