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성수동에 갔습니다. 관심있는 전시회 오픈 첫날이었거든요. 전시는 아주 마음에 들었고 즐거운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좋은 전시였다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작품 훼손 사건으로 조기종료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니, 왜 대체 그런 짓을 하지???)
나온 김에 성수역에서 강변역까지 걸어 봤습니다.
예전 부모님 회사가 있던 곳이라 성수동은 개인적으로 친근한 곳입니다. 공장과 사무실이 밀집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힙한 곳이 될 줄은 몰랐네요. 2000년대 홍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음악 클럽이 없는 건 아쉽지만요. 지금도 음악 클럽들은 홍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건설 현장이 많더군요. 공실과 임대 문의 표지만 보다가 새로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니 의외로 신선했습니다.
건대 근방의 양꼬치 골목입니다. 귀여운 간판이죠. 부루마블이 아이들에게 자본주의 가르치는 용도라는데 정확히는 지대 추구를 가르치기 좋죠.
구의로 62입니다. 반찬 가게에 써붙인 글씨가 인상적입니다. (지금 보니 겉절이가 엄청 싸네요 헐)
이 길은 저의 어릴 적 통학로이자 소위 방석집이라고 불리던 성매매 업소 집결지이기도 합니다. 영화 <써니>에 나왔었죠. 2011년도 영화인데, 그때 관객들조차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하면서 놀랐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요.
그래도 몇 군데 영업중입니다. 신장개업한 곳도 있네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쉽게 전면개발은 되지 않을 모양입니다.
혹시 버린 물건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엄연히 장식된 그림입니다. 안쪽은 자그마한 공장이 있더군요. 눈에 띄지 않게 찍도록 주의했어요. 개발이 늦다 보니 이것저것 뒤섞인 구도심 특유의 개성이 나오는 중입니다.
좁은 인도에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려서 옆으로 비켜주니 어린 여자아이가 씩 웃어주고 갑니다. 동네 인심이 느껴지네요.
(나도 자전거 라이더라서 안다. ㅎㅎㅎ)
길 끝까지 나왔다가 온 김에 서북면옥 들렀다 가려고 180도 틀었습니다. 주차장 옆 건물인데 그림이 하도 훌륭해서 찍었습니다. 그림과 창문의 조화가 은근히 절묘하네요. 뭐랄까 이 동네는 원래 이랬는데 하는 느낌입니다. 사람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도 눈길을 끌어요.
(아, 사람은 창문 속에 있을지도요.)
연변대학 서울 실습기지 미대 회화학과입니다. 예전에 다닐 때마다 궁금했기에 이번에 사진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대해 지역뉴스가 보도한 적이 있네요.
https://segyelocalnews.com/article/1065578849144663
서울 동부지역의 냉면 노포 서북면옥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다녀서 저의 입맛은 44년에 걸쳐 이 집에 충성해왔습니다. 그런데 맛이 변했어요! 여의도 정인면옥과 비슷해졌습니다. 정인면옥도 맛있지만 서북면옥의 원래 맛이 그립습니다.
사장님... 제발... 엉엉... 원래대로 돌아와주세요.
큰 건물 뒤에 숨었다가 레고처럼 튀어나오는 모습이 귀여워서 찍었습니다. 실제 보면 무척 귀여운데 사진엔 그 느낌이 반도 살지 않네요. (못 찍어서) 리터칭을 거의 안 하지만 이 사진만 색감을 바꿔봤습니다.
지금 이 곳에는 힐스테이트 등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오래 전부터 널찍하고 평평하게 길을 닦아 놓았는데 사람과 물자가 그만큼 많이 오가리라는 예상을 했던 거죠. 그동안 기대만큼 오간 것 같지는 않지만 이제야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규모에 어울리는 길 넓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양 옆의 커다란 건물 사이에 오래도록 버티고 있는 작은 집입니다. 구의기사식당과 신야정밀. 간판 상태를 보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죠.
학원 집결지입니다.
사실 구의3동은 학군지입니다. 옆의 광장동과 붙어서 광남고등학교 중심으로 학군을 이룬 지 오래이죠. 일설에 따르면 숙명여고와 함께 강남에 비견할 단 두 곳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니고, 20여 년 전부터 그럭저럭 성적 좋은 학교에서 어느덧 학군지로 떠오른 것 같습니다. 대학원 재학 즈음엔가 누군가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보길래 대답했더니 공부 잘하는 곳이라고 감탄하더군요. 음, 적어도 제가 다닐 땐 아니었습니다 헤헤. 그땐 그냥 연애도 공부도 놀기도 열심히 하는 학교였죠. 축제 기간이 아주 재미있었는데,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학군지라는 말은 부동산 시장에서 물론 좋은 의미입니다. 그 말이 요새 역세권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죠. 입시지옥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한국 도시의 무분별한 슬럼화와 상업화를 막는 거의 유일한 보루가 학군지이자 학교 주변이기도 합니다.
동네 아트박스입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어린이 장난감, 왼쪽에는 맥주잔 모양 어른 장난감이 나란히 진열되었습니다. 조금 묘하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난감이란 건 아이들도 충분히 알죠. 이 가게가 어린이와 어른이 같이 즐기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요새 어른 되는 나이가 늦추어지면서 어린이다운 문화를 즐기는 연령대가 20대 후반까지 연장되는 양상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예전에는 프리 틴(Pre-Teen), 즉 10대의 문화가 어리게는 만 9세까지 빠르게 내려오는 현상이 두드러졌던 거와 반대 모습이죠. 어찌보면 어른이 사라진 시대의 표상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