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무와 놀이터

호기심을 잃어버린 한국인

by 주애령

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655101?ntype=RANKING



현대 중국의 문화 중 하나인 광장무를 주변의 민원이 들어온다는 기사. ('볼썽사납다'는 말에 주목하자) 기사에는 노령의 중국계 한국인 내지 중국 이민자들이 한국인 중심의 경로당에 발붙이기 힘들다는 내용도 있다. 결국 '사교'를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광장무에는 여러가지 사회적 기능이 있는데, 일단 고령 시민들의 아침 운동이 된다. 한국에는 등산이 보편적인 운동이 됐지만 중국에는 산이 드물거나 오르기에 적당하지 않다. (대부분의 산이 장가계처럼 생긴 악산이다) 대신 널찍한 공터가 많다. 아침에 일찍 깨는 노인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정보를 교환한다. 집단적 사회주의 체제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서 장려받았다. 어쨌든 노인들은 자꾸 움직여야 병이 적다. 병이 적어야 사회적 부담이 덜하다.


(가끔 서구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대낮 공원 풀밭에 자리 펴고 다같이 요가를 하거나 태극권을 한다. 지나가다가 맨 뒤에서 참여해도 된다. 대개 무료거나 약간의 기부를 받는다. 이러한 모임은 지역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구는 한국인의 통념보다 훨씬 조직적인 사회를 운영한다.)


고령일수록 사회적 교류가 활발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 상식이다. 게다가 사진에 나오듯이 파트너의 움직임을 읽어야 하는 사교춤은 고도의 신체적 에너지 교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은 남녀 파트너 댄스를 '불륜의 온상'으로 터부시하는 시각에 거기에 등산을 제외한 노인의 신체 활동도 보기 싫어하는 문화도 있다. 늙으면 조용히 뒷방에 앉아 기어나오지 말라는 문화적 압력이 보기보다 상당하다. 덕분에 노인의 사교춤 문화는 지하 콜라텍으로 숨어든다. 거기에 다시 비용이 든다. 뭐든 개인의 경제력으로 해결하라는 한국적 해결책이다.


그에 비해 광장무는 노인의 신체적 정신적 운동과 사회교류를 무비용으로 해결한다. 음악 소리가 시끄럽지만 하루종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두 시간이라면 주민들과 타협 가능한 수준이다. 볼륨을 조절하거나 블루투스 이어폰 사용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볼썽사납다'는 불만은 타협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냥 보기가 싫다는데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어느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지르는 게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놀이터도 광장무와 비슷하다. 아이들의 신체 활동과 사회 교류를 무비용으로 해결한다. 사회 교류가 지능과 감성 성장을 자극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덧붙일 필요가 없겠다. 댓글들은 '그게 시끄러우면 그냥 귀를 막고 살아라'는 훈계조였다.


사회 문제를 복지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반박받지 않는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돈 안 드는 복지는 따로 있다. 바로 문화다. 광장무도 놀이터도, 돈 안 드는 복지이자 사회를 뒷받침하는 실핏줄 꾸러미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을 반가워해야 할 문화다.



사족 : 낯선 문화를 싫어하는 보수성은 한국만의 개성인지, 아니면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전세계적 특징인지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새로운 문화의 장단점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아직 보편적인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성소수자 문화도 그렇지만, 외부의 사회문화적 흐름에 도통 관심이 없는 관성이 점점 강해진다. 외부에 관심을 끊고 산 결과 한반도는 식민지 신세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