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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Mar 27. 2024

심리상담 쇼핑러의 정착

거절이 확정된 연락

처음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22년 10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복기를 해볼까 한다. 흔히들 처음 심리 상담을 받는 날을 접수상담이라고도 한다. 뭐 사람마다 다르게 부르지만 나는 그 접수를 많이도 했고 다양하게도 했다. 슬슬 더 이상 떠돌이 상담을 그만하고 정착하여 장기 상담을 하였다. 장기 상담의 맛도 알게 되었다. 


1. 설명의 설명을 안 해도 되는 것과 

2. 더 이상 질리도록 나의 이야기를 기계처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좋았다. 하지만 그 당시는 내가 계속 상담하던 상담사에게 아주 많은 실망을 하여, 그리고 소통이 안되고 있고 앞으로도 안될 리가 확실하여 그만두었다. 실망의 과정은 대략 이러했다. 갑자기 나는 몸이 너무 아파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했다. 정말 견딜 만큼 견뎠지만 다들 그냥 견뎌야 한다고만 말했다. 견디는 방법만 논했다. 나는 더 못 견딘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견뎌야 한다고만 말한다. 그래서 놓았다.


결국 나는 겨우겨우 병원을 찾아가서 되게 특이한 병을 진단받았고, 아주 다양하고 독한 약을 먹는다. 중간중간 약이 듣지 않으면 또다시 안정제를 들이붓기도 했다. 의사 몰래. 숨이 붙어있으려면 그렇게 나를 재워야 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어느 상담사이던 나를, 내 상황을, 내 행동을 이해할 사람은 없는 것이라고. 내 어쩔 수 없는 행동은 항상 잘못이었고, 그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나 혼자 열나게 노력하고 아프고 나아져야 함을 느꼈다. 같은 병을 가진 다른 사람들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같은 병을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상담사들에게 내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그래서 지나치게 상담에 목을 매고 다녔다. 모두가 문제 있다고 말하니까. 심지어 나조차도. 이 병을 아는 상담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없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주제의 집단상담을 또 했다. 그리고 D양을 만났다.            


처음에는 D양과 심리 상담을 할 마음이 없었다.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집단상담에서 D양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을 투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D양이 별로인 듯 부러운 듯 거슬렸다. 어쩌다 알게 된 D양은 솔직하고, 확실한 사람이었다.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안전할 거라고 희망을 가졌다. 이것을 깨닫고 그냥 'D양에게 상담을 받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물론 D양도 내 행동에 대한 반응은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철저하게 나를 숨기면서 상담을 받을 생각이었다. 더 노력하기 싫었고, 하기 힘들었고, 할 수 없었다. (근데 어쩌다 보니 지금 제일 많이 노력하고 있네... ㅎ) D양의 블로그를 찾아 나는 신청서를 작성하고, 연락이 없어서 상담 센터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개인상담을 진행하기 힘들다는 문자와 통화를 한 번 하는 게 좋겠다는 문자를 받았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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