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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자의 나이듦 Oct 24. 2021

"어머니, 여기서 기다리시면 금방 차 가지고 올게요!"

우리는 어떻게 조금 더 친절한 [이동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어머니, 여기서 기다리시면 금방 차 가지고 올게요!"

이번 가족 여행에서 여러 번,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고모의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통영에서 맛있는 전어를 먹었던 날, 시장 입구까지 걸어 나와 큰 길가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기다렸습니다. 

그 건너편에 있는 공영 주차장에서 고모가 차를 가지고 오시기로 했었거든요. 


모든 식당이 차를 바로 앞에 댈 수 있는 길가에 있으면 좋으련만.. 당연히 그럴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걸어 나와서 차가 멈출 수 있는 큰 길가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길가 전봇대 옆에 걸터앉을 수 있는 돌이 있어서 할머니는 잠시 낮은 돌에 쪼그리고 앉아계셨습니다.


부산에서 묵었던 호텔에서 아침 일정을 시작할 때, 로비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로비에서 기다릴 때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있다가 우리 차가 보일 때쯤 슬슬 걸어 나왔죠. 


그러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가족들 모두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을 때 확신했습니다. 



아, 이건 해결해야 할 불편함이다.



상황을 설명해보면 이랬습니다. 

가족들은 다 같이 차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몇 걸음을 걸어갔고 차가 다니는 길을 건너서, 차가 세워져 있는 건너편 코너로 넘어가야 하는 여정이 있었어요. 고모와 고모부는 짐 정리를 하셔야 하니까 먼저 서둘러서 차로 가셨고 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차를 타기 위해 할머니와 이동하려고 했던 경로 


할머니는 걷다가 지치셨는지 제 손을 지그시 잡고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차까지 걸어갈 수 있는 체력이 더 이상 없으셨던 거예요. 저와 할머니는 주차장 출구로 향하는 길 한편에 '비어있는 공간'으로 가서 고모가 차를 가져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이때 생각했습니다. 아예 타고 내리는 ZONE이 구성되면 어떨까? 



그냥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야? 

지난 이틀 내내 그랬던 것처럼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으면 가장 좋았을 듯합니다. 호텔에는 로비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방문하는 모든 곳들에 이처럼 기다림을 위한 공간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동 경험에서 일어나는 몇 번의 기다림 상황을 어찌어찌 지나갔지만 우리 가족은 사실 조마조마했습니다. 할머니는 멀리 걸어가는 것과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기다리는 것 모두 힘들어하셨습니다. 함께 있던 저는 혹시 차가 우리를 놓칠까, 언제쯤 나오실까, 계속 눈치를 살피었습니다. 고모와 고모부는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니 마음이 급하셨겠지요.  


적어도, 이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나이의 사람들만 모여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일 때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보다 가족들끼리 서로를 배려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동의 경험에서 어떻게,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을까요? 


1.  이동이 불편한 사람은 자동차가 나가는 주차장 출구 쪽에서 차를 탈 수 있게 만듭니다. 

공식적으로 잠시 정차하여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차장은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대부분 어두운 조명에 좁은 경우가 많고 코너마다 차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시야가 살짝 가려지죠. 이런 환경에서 고령자의 이동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주차장 출구에서 차를 정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공식적인' 정차 가능 사인이 없는 곳에서 차를 잠시 세우는 것입니다. 뒷 차가 있다면, 뒷 차 운전자 입장에서는 이동의 경험 중에 예상치 못한 멈춤을 만드는 일이죠. 


물론 우리는 눈앞에 상황에서 고령자가 차에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고 서로 조금만 배려한다면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고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스템과 디자인으로, 공식적인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적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니까요. 


2. 모두가 인식할 수 있는 색상/상징적 그림으로 공간을 눈에 띄게 조성해둡니다. 

주차장 출구 방향에 할머니가 서계실 수 있었던 공간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런 상황을 배려해서 만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왼쪽 그림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쓰이는 그림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추자 구역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길이 공식적으로 표시되어 있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눈에 띄는 색상과 상징적인 그림으로 고령자가 차량을 타고 내릴 수 있는 ZONE을 확실히 조성하면 어떨까요? 공식적으로 타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이고 이곳에 차가 정차한다면 잠시 기다리자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어머 이런 게 있네? 그래 이게 필요하겠다. 이제야 알았네. "

어떤 서비스나 공공장소의 표지판 등을 보고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필요성을 깨달았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운전을 하다가 도로에 적힌 <노인 보호구역 30>이라는 표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노인 보호 구역  (출처 : 도로 교통 공단)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Scool Zone)처럼 교통 약자인 노인 보호구역은 실버존(Silver Zone)이라고 합니다. 노인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자주 노출된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안전망입니다.  



시각적으로 드러내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아 이거 해결해야 할 부분이었구나. 불편한 부분이었구나. 몰랐네." 누군가의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사회적으로 역지사지의 순간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번 가족 여행에서 발견한 우리 가족의 불편함을 우리만 느낀 것일까?라는 생각에서 쓰게 된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몫과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으로 남겨두기보다 공식적인 안전망으로 고령자의 이동 경험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경험 디자인은 우리 삶의 작은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단한 혁신을 기대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크기는 상관이 없다. 문제를 발견하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그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경험 디자인의 본질이자 전부다.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UX 디자인의 힘_김동후 지음)



우리 생활 속에서 자동차는 필수적인 운행 수단입니다. 특히 고령자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합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차에 타고 내렸던 경험,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가는 동안 잠시 기다리고 계시라고 말했던 경험, 얼른 차를 들고 가야겠다고 서둘렀던 경험을 떠올려봅시다. 여러분의 경험은 어떤 느낌으로 남아있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참고 

- 책 / 미래 자동차 모빌리티 혁명_정지훈, 김병준

- 책 / 사용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UX 디자인의 힘_김동후

- 뉴스 / [글로벌] 노령사회 일본의 MaaS, 모빌리티 격차 해소할까_잇 데일리 조민수 기자 

- 뉴스 / 실버존 모르면 '고향길=고통 길', 과태료+벌점 폭탄_매일 경제



PS. 

앞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모빌리티가 가져다 줄 가능성을 상상하며, 이런 키워드를 공부해보고 쓰려고 합니다. 혼자만의 다짐입니다 하하 

- 자율주행차와 연령친화성 

- 커넥티드카와 연령친화성 

- 지역사회에서 모빌리티의 연령친화적인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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