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탱볼에세이 Jun 03. 2024

[치앙마이 84일 차] 독자선생님

3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날. 치앙마이에 오기 전부터 미리 왕복티켓을 끊었다. 90일까지 무비자로 머물 수 있지만 84일 만에 돌아간다. 혹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되는 걸 워낙 싫어하기 때문. 밤 비행기라 하루를 더 얻은 기분이다.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치앙마이를 떠나면 어디가 제일 생각날까. 싼티탐의 무삥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일요일은 쉬나 보다. 무삥을 사고 카페 드 솟에 가서 커피 마시고 플립스 도넛 먹으려고 코스 짜뒀는데. 역시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sukishake에 스무디보울 먹으러 갔다. 3번째 먹으니까 이제 처음에 먹었던 감동보단 덜하더라. 한국에선 이 가격에 절대 못 먹으니 금세 그리워질 테지.


커피는 twenty mars에서 마셨다. 사장님이 커피를 정말 정성스레 내리시더라. 그래서 커피를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깔끔하게 맛났다.


바깥에서 갑자기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엄청난 행진이 진행되었다. 내일이 여왕님 탄생일이라 관련된 행사 같더라. 다들 색깔 맞춰 전통옷 입으니 멋있었다. 중요한 연휴에 돌아다니면 열심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주치게 되는 것이 장기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엔 망고스티키라이스를 라지사이즈로 포장했다. 이번 세 달 살기에서의 수확 중 하나는 망고스티키라이스의 맛을 알았다는 것이다. 무슨 과일이랑 밥을 같이 먹냐는 편견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음식이다. 먹어보지도 않고 고정관념에 갇힌 나를 부셔준 계기가 되었다.


3달 동안 대기상태도 안 좋고, 기온도 너무 후끈해서 집에 콕 박혀있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전거로 조금씩 내디뎌보았다.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안 해본 일을 시작해 보고.


결과적으로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새로운 일을 가볍게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내 책을 기다리는 태국인 친구들도! 나 세 달 동안 치앙마이에 머물면서 내 책을 쓸 거란 말 한마디가 불러온 기대감은 대단하다.


수영강사인 립삔은 내가 치앙마이를 떠나 아쉽다며, 내 책을 기다리겠다고 내가 떠나는 오늘에 맞춰 인사를 건네주었다. 숙소사장님 폼은 내게 귀요미 불상을 선물로 주며 나의 성공을 응원했다. 든든한 예비독자 선생님들 덕분에 한국어 말고도 영어에 태국어로도 써야 하나 싶다.


세 달 동안의 일들을 잘 갈무리해서 6월엔 나의 두 번째 책을 무사히 엮어내야지. 어젯밤 그 시작으로 표지 초안을 스케치해 보았다.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며 내가 모르던 세상을 탐험하는 재미를 발견했기에 수영하는 나를 그리고 싶다. 읽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불끈불끈 피어오르게 만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치앙마이 83일 차] 태국어 그리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