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정의 내릴 필요가 있을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보통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들은 높은 확률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많은 경우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의 내리고 기록해야 하는데.. 하고는 말아 버리죠.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그 생각들은 언제든 증발해 버리니까요.
그런 알짜(?)들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록, 정의, 보고서, 상세서 등 사라질 아이디어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써 작동하게 되는데.. 마치 길을 걸을 때 이정표가 필요한 것처럼, 생각에도 모양을 부여하고 어디까지 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경계를 세워놓는 작업이 바로 정의를 내리고 기록해 두는 것이겠지요. 이미 생각해봤고, 정해놓은 것들에 대해서 조차도 말이죠.
이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심오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생각을 붙잡아 놓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게 실제로 타당한지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고, 현실적으로 뭔가 가능한지까지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요. 또는 어떻게든 글이나 그림으로 만들어서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나눠보면서 그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가치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고요.
왜 우리는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한 '형상화', '언어의 형태', '기록'노력을 해야 할까요?
다들 아실 테지만.. 생각만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지만, 생각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그저 머릿속에서 머물 뿐입니다. 결국,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읽으면서 생각은 다듬어지고 현실적으로 두발을 땅에 딛고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글을 쓰거나 창의 활동을 하다 보면.. 문득, 만들어낸 것이 당장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될 때가 있습니다. 머리에서 생각으로 있을 때는 대단하고, 엄청난 일인 줄 알았으나 실체화를 하다 보면 자주 겪곤 합니다. 과감하게 잘라내 버릴 필요가 있는데... 어렵습니다.ㅎㅎ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버리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선택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걸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만들어진 것, 무의미하게 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때로는 새로운 시각에서, 행동력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Toss나 Airbnb와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는 단순히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 테니까.. 그들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구체화하고, 꾸준히 반복해서 시도한 끝에 그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고 해냈으니까 말입니다. 단순한 상상이 아닌, 실행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발견한 것이죠.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면 되냐구요?
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견고히 정해진 것들에 대해 도전할 필요가 있을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논리와 데이터에 따라 결론이 명확한 것들이 많고.. 그걸 뒤집을 필요성이나 가능성이 전혀 없을지도 모릅니다. 잘 되고 있으니 굳이..? 새로울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럼 생각과 실체화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미세한 먼지 같은 부분이라도 아주 조금의 개선 가능성을 찾는 것. 그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혁신이 큰 변화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며 한 발자국의 작은 변화 하나가 결국 큰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 세상이니까요.
이제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입니다. 생각, 방향, 작은 변화점 하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단계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설득을 해내야 비로소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시작점에 설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거겠죠.
설득에 실패하는 순간, 다시 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생각을 형성하고 실체화하고 다시 시도해야겠죠.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다시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해야 합니다. 끝없이 꾸준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제안하고, 설득하고, 시도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도와주거나, 손발 걷고 도시락 싸들고 말리거나 서포트해주지 않아요. 그 누구도요.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된 종들처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전과 변화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끝없이 도전하는 것, 그게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말로 적응하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미생 드라마에서 봤던 문장을 나름대로 다시 적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인생은 계속, 끝없이 어떤 새로운 문을 열고 또 열면서 다음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