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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y 08. 2020

선생님 시즌2 수강신청 언제 하면 돼요? <인간수업>

2020 상반기 Netflix 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김진민 감독 (MBC 로드넘버원 개와늑대의시간)

-진한새 작가

-스튜디오 329


이번 보고서는 유독 쓰기가 어려웠다. 내 하찮은 끄적거림이 작품의 섬세함을 망칠까 봐 걱정됐다. 하나하나 다 쓰자니 너무 길어지고 몇 개만 쓰자니 매력을 다 못 담은 평이한 글이 될 것 같고... 정말 오래 걸려서 꾸역꾸역 썼다.


남자 주인공 캐릭터도 그렇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모티브인가 싶을 때가 몇 번 있었다. 다만 클레이는 해나와 감정적으로 맞닿으며 분노해갔다면 <인간 수업>은 공감을 덜어내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려 애썼다. 범죄자가 주인공이니 어쩔 수 없다. 남녀 주인공의 성격이나 형태가 <빌어먹을 세상 따위> 같기도 하고. 그에 비해선 좀 더 묵직하다. <스킨스>와는 약간 다르다는 생각.



[셀링포인트]

캐릭터/ 대본구성/ 연출/ 배우


독특한 테마

한 때 짬뽕 드라마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범죄, 스릴러, 코믹, 로맨스, 판타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의 느낌. 강약 조절을 맛깔나게 한다면 환상이겠지만 대개 누구의 입맛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애매한 드라마가 되곤 한다.


OTT 플랫폼으로 옮겨갈수록 짧고 장르가 확실한, 집중력 있는 콘텐츠가 경쟁력을 얻을 것이다. 일단 편 수가 적으면 만만해서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충 이미지와 줄거리가 재밌어 보여서 눌렀는데 시즌1이 3-6편 정도일 때. 혹은 10편 이상이어도 한 편에 30분 내외일 때. 밀도 있고 완성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장르적인 공부가 중요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수업>은 자신만의 테마를 잘 잡았다. 장르를 정확히 딱 떨어지는 용어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누아르라는 게 도덕적 규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주제라고 하니, 어떤 분의 말처럼 청소년 누아르 정도인 것 같다. 그렇다고 엄청 무게 잡는 건 아니고,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에 잘 서 있다. 위태위태한 분위기, 청춘물이 주는 간지러움, 어두운 상황과 대조되는 레고 음악(?) 등이 합쳐져서 요즘 대세인 쿨하고 재기 발랄한 컨셉을 어느 정도 잘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테마를 연출이 잘 살렸다. 불필요한 컷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위태로운 분위기 낸답시고 잔뜩 힘 준 기울어지고 멋들어진 편집을 하기보다,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베이직하게 컷을 잡아서 보기가 참 편하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 눈빛, 대사 뒤의 여백 등으로 감정선도 과하지 않게 살짝 보인다. 감독이 '과자 껍데기는 저들이 다르게 만났다면 첫사랑 이어야 했는데 미련의 표시여서 작가보다 제가 살짝 더 애착이 있었다. 컷이 많이 들어갔다.'라고 인터뷰한 글을 봤는데, 그런 감성이 옅게 기저에 깔려있어서 몰입도를 높이는 것 같다.


곳곳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초현실주의적인 꿈도 어딘가 기이하고 뒤틀린 이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음악도 참 잘 썼다. 다크하고 리드미컬하게.



액션과 리액션, 수미상관법

이야기 구조에 매우 신경 쓴 대본임이 느껴지는 게, 1화 첫 장면과 10화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똑같다.


전체적인 극 구성도 그렇지만 매 화를 거의 도식화할 수 있을 정도다. 모든 사건은 빠짐없이 누군가 액션을 취하고 그에 대한 리액션으로 생겨난 결과다. 오지수(김동희 배우)가 사업 시작한 거, 배규리(박주현 배우)가 가담하게 되는 거, 경찰이 포착하고 의심 품는 거, 바나나 노래방과 엮이게 되는 이유까지. 갑자기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작은 행동 하나, 작은 말 하나가 결국 파멸의 눈덩이로 불어난다. 어떨 땐 좀 뻔하기도 하다. 가방에 돈을 넣고 다니는 떡밥을 보여주면 꼭 얼마 후 학교에서 가방 검사를 하는 식으로. 그래도 짜임새에 굉장히 신경 썼다는 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대본.


대형 위기가 찾아오는 건 늘 누군가가 돈에 욕심을 부리면서다. 처음엔 서민희(정다빈 배우)가 휴무에도 돈을 조금 더 벌고 싶어서, 다음엔 맏언니가 일감을 더 얻고 싶어서. 한 방울의 물 흐림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비효과처럼 후폭풍이 덮친다. 결국 그 돌풍으로 민희는 마지막에 죽었으니 이것도 어쩌면 수미상관.


사건뿐 아니라 매 화 인물들의 얽힘과 감정이 꽉 차 있으니 허투루 보낼 회차가 거의 없다. 엔딩마저 <돈꽃>급. 앉은자리에서 10시간을 정주행 했다는 리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찰떡같은 이미지 캐스팅

솔직히 평범한 학원물이었어도 이런 캐릭터를 이 배우들이 연기했다면 무조건 봤을 거다. 일단 캐릭터 성격 자체도 짱인데 배우들 매력까지 더해지니 짱짱짱. 지붕킥에서 황정음 역을 맡은 황정음을 보는 듯 스무스하다. 캐스팅하신 분 안목 아주 칭찬해!


극 중 배규리가 오지수에게 왜 끌리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막 좋아 죽겠다기보단... 재밌는 정도? 일단 머리는 좋아. 뭔가 카리스마 비슷한 것도 있고. 그리고 애가 의외로 존나 늑대 새끼 같은 맛이 있거든. 근데 지는 지가 강아지 새낀 줄 알아.

비실비실한 찌질이의 탈을 쓴 늑대. 겉으로는 어벙한 소년이지만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카리스마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매력이다. 생각해보면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클레이나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제임스도 그렇다. 오지수의 경우 그 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이 성매매 사업이라는 게 문제지만.


순딩하고 얌전한 전교 1등 모범생에다가,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진심으로 울고, 키우는 갑각류가 아플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애가 알고 보니 성매매 알선 사업가다. 아이러니한 설정은 인간의 복잡함을 보여줄 수 있어 거의 재밌긴 하지만 김동희의 진지한 연기가 신의 한 수다. 오지수는 전부 진심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진심으로 간절하기 때문에 하는 거다. 그는 자신의 사업이 경호업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100% 자발적인 고객들만 모아 나름 깨끗한(?) 사업을 하고, 부모 없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sky에 가야 하므로 학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큰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입장에서 잘못한 건 그가 아니라 세상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어벙 할 일인가?


처음에 시청자는 오지수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는 아이. 벌어들인 돈은 전부 학원비로 나가고, 꼬질꼬질하게 'SKY one step above'를 써 붙여놓은 책상 앞에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를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거기에 성격도 모지지 못해서 도박꾼 아버지에게 전재산을 다 빼앗기고도 한마디 하지 못한다. 조폭 패거리에 잘못 휘말려 풀타임으로 출근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받는 오지수를 보며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애가 돈 없어서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나? 대학 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을 심어준다. 성매매 포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복을 빌게 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이게 기가 막히는 부분이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화에서 문득 오지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자신의 사업이 들킬 위기에 처한 오지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손을 벌벌 떨면서 동아리방에서 사과문을 쓴다. 그 볼품없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아..? 내가 이런 사람이 잘 되길 바란 건가..? '싶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서민희 옆의 핸드폰만 주워가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을 응원한 시청자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진다. 


이 장면 음악이 참 쓸쓸한데, 아무리 변명해도 범죄는 범죄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틀린 답에 목숨을 건' 사람들의 최후 같은 느낌이다. 그 충격효과로 성매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맞다면 정말 박수 쳐주고 싶다. 처음부터  낯섦의 효과를 위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거라면.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오지수가 처음엔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포주'로 인정하는 모습까지도 개연성이 있다.


오지수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지만 이 드라마의 원탑 매력쟁이는 배규리다.

이 장면에서 반해버림. 여주가 체격도 좋고 스포티해서 희열이 장난 아니다. 좀 쫓아가다가 넘어지고 말 줄 알았는데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아작을 내버릴 기세. 박주현이랑 너무너무 찰떡이다. 이 전에 <반의 반> 고구마 답답이 역으로 봐서 그런지 더 속이 뻥 뚫리는 기분.


배규리는 영악하고 침착하고 행동력도 만랩이다. 매력적이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직진한다. 오지수의 사업용 핸드폰을 발견하고도 호들갑 떨거나 기겁하기는커녕 순식간에 모든 걸 파악하고 숨어서 협상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가져온다. 그러면서도 태연한 얼굴로 담임이 얼굴 보고 오랬다며 오지수의 집에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인다.


그 후로도 계속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오지수를 비롯한 사람들을 조종한다. 성인이 아닌 청소년답게 자기 꾐에 자기가 넘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던 부모를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데 성공한다.


서민희 역시 매사 자기 맘대로 하고 싶고 짜증이 많지만 동시에 어린애답게 정이 많다. 영감님이랑 레옹과 마틸다 느낌 주려고 한 듯(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설정은 아니지만). 욕을 너무 찰지게 잘해서 미워할 수가 없다. 곽기태도 사실 되게 짜증 나는 캐릭터인데 천진하게 웃는 얼굴이 다 커버한다. 네 명 모두 진짜 사람처럼 이기적이고 성깔 있으면서도 선하고 순수한 면이 보여서 좋았다. 싫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거의 네 학생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특히 깊은 이야기는 배규리와 오지수에게만 집중해서 얘네들의 세상을 함께 사는 기분이었다. 이 외에도 디테일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포인트만 짚는 글이므로 마무리. 이거 쓰려고 두 번 정주행 했는데 세 번째 봐도 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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