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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y 25. 2020

타임슬립 장르 공부 <라이프 온 마스>를 중심으로

2018년 OCN 16부작 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견 다수

*장르구분 참고 책: <장르의 장르>/안전가옥


[장르 특성]


시간을 다룬 장르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인물이 우연찮게 다른 시간대로 미끄러지는 타임슬립. 초자연적이고 수동적이며 <옥탑방 왕세자>, <명불허전>, <고백 부부> 등 한 때 한국 드라마의 핫한 장르였다. 혹은 자발적으로 다른 시간대에 뛰어드는 타임리프. 전에 소개한 책 <둠스데이 북>이나 드라마 <나인>이 여기에 속한다. 자발적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므로 주로 뚜렷한 목표가 있다. 혹은 같은 시간대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타임루프. 철학적인 주제를 던지는 경우가 많으며 역시 앞선 글에 소개한 넷플릭스 드라마 <러시아 인형처럼>이나 영화 <에지 오브 투머로우>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왜곡되어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영화 <프리퀀시> 같은 작품이 타임워프에 해당한다.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나 <스케치>처럼 시간을 앞서 예견하는 형태는 약간 예외적인 것 같다.



시간을 넘어간다는 건 기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관련되어있다. 그중 한국의 타임 드라마는 유독 이러한 진한 죄책감의 감정이 두드러진다. 한국적인 정서가 '한'이라서 그런가? 한국적인 게 뭘까. 어디선가 그런 분석을 읽었다. 한국은 강대국으로써 세계의 주체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SF 물을 어색하게 느낀다고. 세부 장르가 워낙 많기는 하지만 NASA나 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는 우주물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승리호>도 곧 개봉하고, 영화 <기생충> 수상이나 코로나 대응도 있었으니 이제는 마냥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감성의 SF 장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한국적인 차별화는 무엇일지 늘 고민해야 하겠지만.


오늘 다룰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타임슬립에 해당한다. 물론 주인공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일 수 있으므로 진짜 그 세계에 갔다고 하기엔 모호하지만 나는 88년도 식구들이 허상이 아니라고 믿고 싶기에... 우선 타임슬립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의 변화다. 낯선 세계를 만나 주인공의 가치관이 변한다.


한태주는 절차와 증거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경찰이었다. 증거가 없다면 아무리 심증 100%인 범인이어도 풀어준다.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88년도에 만난 강동철 형사. “과학? 증거? 법대로 하면 좋지. 근데 그런 거 다 따지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와 파트너가 되어 큰 사건들을 겪은 한태주는 결국 마지막에 이성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1988년에 남을 것을 택한다.



[인상적인 구조]


한 화에 1-2번씩은 한태주의 환청으로 18년도 의사 목소리를 등장시켜 시청자가 88년도에 빠져들지 못하게 막는다. 그 강도도 점점 세진다. 처음엔 '그곳을 믿지 말라'는 환청 정도에서 저 멀리 의사가 보이는 환각으로, 그다음엔 아예 호흡기를 떼야하나 고민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거울을 통해 자신을 수술하는 의료진을 보고 심지어는 집도의를 '안 과장'이라는 88년식 인물로 직접 대면하기까지. 반대로 태주가 18년도에 정신을 집중하려 할 때마다 윤나영이 확 끼어들어 그를 다시 88년도로 끌어당기고 얼른 행동해야 할 동기를 제공한다. 또 뛰는 심장을 가리키며 살아있지 않다면 느낄 수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덕분에 주인공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빠져들지는 못한 채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는다. 어느 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고 그 강도를 더해가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끝까지 가져간 게 집중력을 높였다. 일상에 지속적으로 금을 긋는 행위다.


이렇게 혼란스러움에도 한태주 1인칭 시점이라 견딜 수 있었다. 주인공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1인칭 내레이션 시점은 드라마에 활용하기 가장 좋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솔직해서 이해하기 편하고 애착감이 빠르게 형성된다. 완전한 내 편의 눈으로 세계관에,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다. 드라마의 목적이 그거잖아요. 감정 몰입.


18년도에 죽도록 잡고 싶었던 연쇄살인마가 88년도에 보니 자신이 어릴 적 따랐던 동네형이다. 드라마는 한태주가 범인의 어린 시절을 만나도록 하여 점점 그와 범인의 끈질긴 연결고리를 깊이 파고든다. 한태주는 미래에 자신의 아버지와 전약혼자를 죽일 범인에게 강한 분노와 집착을 느끼면서, 조금씩 범인의 어린 시절에 연민도 생기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태주는 자신의 원칙대로 증거 없는 용의자를 풀어줬으나, 그가 곧바로 범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선량한 사람이 중태에 빠지고 만다. 원칙대로 했으나 그로 인해 치명적인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딜레마.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던 매니큐어 살인사건과 진범에 관한 이야기를 15화까지 딱 마무리했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화는 한태주가 새로 정 붙인 세계와 원래 알던 세계 사이의 감정을 마무리하는 것에 할애했다. 보통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전통적인 미덕(?)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달랐다. 거의 유일하게 다른 선택을 한 드라마인 듯. 예전에 한창 기획안 쓸 때도 느꼈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행복하다면 왜 꼭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원작의 결말이 이미 그렇게 나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거겠지만, 어쨌거나 한 화를 통째로 쓴 덕에 감정을 같이 소화할 수 있었고 여운도 남고 좋았다. 이 한 화 역시 딜레마였으므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도 않았다.



[인상적인 에피소드]

인산시 경찰들이 지역 토박이임을 이용해 통장들 소식통으로 사람을 찾았다. 토속/루럴/복고/마을류(?) 장르의 장점으로 많이 활용된다.

검은 점퍼에 흰 마스크를 쓴 범인이 쫓기다가 채석장? 같은 데에서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복장을 활용한 숨기도 재치 있는 도망 법.

88년도에는 특이하게 서머타임제 있었다. 이런 특수한 문화적 배경을 활용해 18년도에서 온 한태주가 시간 약속을 못 지켜 범죄를 놓치는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비교 작품]

2013 tvN <나인> : 자발적인 타임리프. 9번의 시간여행 안에 어떤 비밀을 알아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2017 KBS <고백 부부> : 같은 복고 컨셉. 여긴 90년대. 타임슬립이 사건 해결이 아닌, 옆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장치로 쓰였다. <고백 부부>는 새로운 환경을 접한 후 익숙한 것의 소중함으로 되돌아왔고 <라이프 온 마스>는 새로운 환경을 접한 후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



[현시점에 사람들이 타임슬립 장르를 찾을 이유. 이 시대의 욕망?]


비슷한 구조만 아니라면 타임슬립물을 계속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과거로 가고 싶은 마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제는 잘못을 뉘우치거나 바꾸는 형태가 아니어도 다양한 욕망을 투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구를 위해 과거로 뛰어드는 <둠즈데이 북>이나 내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자 다른 시대의 나와 거래하는 <숨>의 마지막 단편도 참고해 볼 수 있다. 혹은 최근 개봉했다던 <카페 벨 에포크>처럼 아예 그 시대를 재현한 세트장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과거 같은 위기를 겪었던 시절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이러스로 단절된 다음에야 일상적인 만남과 스킨십이 소중했음을 깨닫고 있으니 한 공간에 갇힌 형태의 이야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동안 많은 드라마 기획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였다.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의 감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잘 대처했다는 평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정서적인 파급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속된다면 또 모르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외로움, 연결의 중요성.

특히 개학 연기된 청소년들. 혹은 하루 종일 아이를 봐야 하는 엄마들.

국제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재난물과 다양한 인간군상

새로운 배척의 기준으로 나뉜 사회

급하게 앞당겨진 언택트 라이프의 사랑

평범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히어로물

국내 최초 환경에 대한 드라마

여러 생각이 떠다닌다.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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