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원책담 May 25. 2023

이제야 첫 발

 내가 태어난 곳이 혜화동이다. 하지만 그때 기억은 없다. 태어나고 얼마 안 있다 정릉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기억 속 첫 집은 정릉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다시 혜화동으로 이사왔다.  그리고 몇 번의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왔다. 혜화동은 위로는 서울과학고등학교부터 시작하여 서울 성곽을 타고 혜화문까지 간다. 8차선 도로를 건너 카톨릭 신학대학, 혜화동 성당과 동성중고를 포함하고 4호선 혜화역 1번출구와 4번출구를 남쪽 경계로 한다. 그리고 혜화동 로터리를 포함해서 과학고 올라가는 길의 왼편이 혜화동이다. 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혜화동은 현재 혜화동 주민센터 근처 골목이다. 그 근처에 2년전에 소원책담을 열었다. 

 

 혜화동은 단지 아파트가 없기 때문에 놀이터가 별로 없다. 혜화초등학교와 과학고 아래에 있는 올림픽 생활관에만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올림픽 생활관도 없었고 지금 혜화초등학교가 혜화여고였기 때문에 그곳에도 놀이터가 없었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았다. 혜화동 골목에서 축구도 하고 고무공으로 야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골목이 놀이터였다. 지금 골목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을 보기 힘들다. 아이들 수도 많이 줄었지만 무엇보다 길거리에 차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맘껏 놀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다니던 골목이 차가 주로 다니는 골목으로 변했다. 


 결혼 후 창신동에서 살다가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다시 혜화동으로 왔다. 몇몇 집을 빼고는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거나 크지 않은 독립 아파트 또는 빌라로 바뀌었다. 그래도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는 많이 바뀌지 않았다. 주택가이다보니 낮에 한적함을 느끼기도 한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평화로움과 조용함이 있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너무 고요함에 생기를 북돋아준다. 그런 한가로움 한가운데 소원책담이 있다. 그래서 소원책담에 책읽는 느낌은 따사로운 봄날 나무 그늘아래 평상에서 책읽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이런 한가로움은 평화롭기도 하지만 책방 재정을 생각한다면 큰 문제이다. 2년이 다 되어가는데 태평하게 한가로움을 이야기하는 나도 철이 없다. (하긴 철이 없어 책방을 열었지만.) 물론 한가로움을 마냥 즐기지는 않았다. 독서모임 인원을 한명한명 늘리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해 보았다. 그동안 망가진 모임도 있고 꿋꿋이 버텨온 모임도 있다. 모임 인원이 모여지지 않을 때 자책과 더불어 의기소침해진다.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씨앗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겠지. 그럴 때마다 많은 분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용기를 발판삼아 다시 한 발 내딛었다. 소원책담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땅을 뚫고 떡잎을 펼쳤을까?(그렇게 믿고 싶다) 땅속 환경에서 이젠 숨도 쉬고 햇빛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테니, 삽을 버리고 첫 걸음을 떼어야 할 때가 왔다. 그래 이제야 첫 발을 뗄때가 왔다. 기지개를 펴자. 햇볕을 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