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필드 뮤직페스티벌 넬 공연 후기
햇살이 따가웠던 지난 일요일, 메가뮤직 페스티벌을 보러 난지한강공원에 갔다. 일찍 가서 존 박과 이무진의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다. 저녁을 든든히 챙겨먹고, 카카오택시를 탔다. 하늘색과 다홍색으로 물든 하늘. 날이 맑은 덕에 아파트 단지가 만든 마천루와 자연이 만든 사의 실루엣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있었다. 초록빛 나무는 슥슥- 차창 밖을 스쳐지났다. 제 2 자유로를 지나, 강변북로로 빠지니 투명한 아크릴로 만든 벽이 자동차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었다. 벽 너머는 자연. 일렬로 선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있었다. -자연에 자연이라는 말이 우습지만- 십여 분을 달린 택시는 우리를 난지한강공원에 내려주었다. 이곳에서 나무는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공연장에 가까워질 수록,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커졌다. 매표소에서 종이 티켓을 팔찌로 바꾼 뒤 입장했다.
조경된 나무들이 환영대처럼 우리를 반겨줬다. 그대로 쭉 걸어가면 피크닉을 즐기며 음악 감상을 하는 ‘피크닉 존’이, 더 앞으로 가면 스탠딩 구역이 나온다. 가수 적재의 공연이 막바지에 달했다. 운 좋게 ‘별 보러 가자’ 를 포함해 두 곡을 들을 수 있었다. 태양도 아쉬운지 자꾸 다홍빛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걸 미뤘다. 적재의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정비가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스탠딩 존을 빠져나갔고,우리는 앞쪽에 자리할 수 있었다. 혹여 추울까 입고왔던 점퍼가 무색했다. 십오 분 쯤 지났을까. 사운드 체크가 끝나고 무대 조명이 꺼졌다. 흥분과 기대감이 스탠딩 존의 공기를 차분하지만, 뜨겁게 바꾸어놓았다. 왼쪽 스탠딩 존에 있던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파도타기처럼, 그 함성을 이어받아 우리 쪽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렇게 넬이 무대에 올랐다.
아직도 노을이 지고 있던 시간, ‘Still sunset’을 시작으로 한 시간 가량 공연이 이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밤이 깊을수록 공기가 뜨거웠다. 99의 물처럼, 잔잔한데 뜨거웠다. Home, 유희, Cliff Parade, 환생의 밤, 무홍, Ocean of Light, Haven, 믿어선 안될 말 순으로 노래가 이어졌다. 마치 눈앞에 8K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는 듯, 넬은 모든 곡을 완벽하게 해냈다. 기타 솔로 구간에선 전율이 일었다. 잘 모르는 곡은 비주얼라이저로 그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 페스티벌이 아닌 넬의 단독 공연에 온 것 같았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무대였다. 고마웠다. 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오직 즐기는 것 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발바닥이 찢어지는 것 같이, 종아리가 불타는 것 같이. 내일이 없을 것 같이 놀았다.
본 공연이 끝나고 아쉬워하는 팬들의 함성이 난지한강공원을 채웠다. 다시 무대에 올라온 그들은 지문같은 곡인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마음을 표했다. 너도나도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관객석을 수놓았다. 보컬 김종완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이크를 관객에게 넘겼다. 관객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는 눈을 감기도 눈빛으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팬들의 떼창과 가수의 목소리가 우리, 지금, 여기에, 함께하고 있어.라는 울림을 주었다.
공연이 끝난 것보다 아쉬웠던 건, 음향 시스템이었다. 스탠딩 존의 음향은 360p 정도였다. 악기 소리는 잘 들렸지만, 보컬을 먹어버려서 아쉬웠다. 조금 더 멀리 있던 피크닉 존에서 들었다면, 1080p처럼 선명했을 것 같다.
넬의 단독 콘서트를 가본 적도, 라이브 공연을 직접 본 적도 없었다. 내게 그들은 수줍은 밴드였다. 메가필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난 이 밴드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렸다. 대놓고 끓진 않지만, 은은하게. 아주 오래. 열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밴드. 그런 깊은 에너지를 가진 밴드다. 출근길 플레이리스트는 넬이 차지했다. 언젠가 열릴 그들의 단독 콘서트에 꼭 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