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민의 특권 중 하나. 바로 공원이 많다는 거다. 콘크리트로 덮인 바닥과 손바닥만 한 모래사장, 그 앞을 뻘쭘하게 지키는 한 줌짜리 화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산책로가 길게 뻗어있고, 그 주변을 최소 삼십 년 정도 된 길쭉한 나무들이 무성한. 떨어진 나뭇잎들이 흙처럼 길을 덮고 있는 공원이 많다. 시에서 만든 공원도 많지만, 오늘 소개할 공원은 3천 원의 행복이자 고양시 안의 유럽 #고양플랜테이션이다.
다음 달이면 고양시민이 된 지 일 년이 되지만, 아직도 탐험할 곳이 많다. 이곳도 남편이 지도를 보다 발견한 곳으로, 차를 타고 조금 들어가야 나온다. 입장료는 단돈 삼천 원. -물론, 바비큐나 식당 혹은 카페 이용은 따로 돈을 내야 한다.- 씨티칼리지 플랜테이션 입구에 들어서면, 유럽식 조각상들과 조경이 우리를 반긴다.
초입부터 우리 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집 근처 공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 질서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식물들이 있다.
이날은 날이 쨍해서 그런지, 하늘도 유럽 느낌이 났다. 이국적인 공간이 집 근처에 있었다니! 이곳에 있으면 소로가 말한 진정한 산책자가 되는 것 같다. 목적지 없이 ‘어슬렁 댈’ 수 있는 이유에서다. 길은 있지만, 정해진 길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거대한 나무가 나타난다. 벼락을 맞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쓰러진 듯하다. 그러나 나무의 자태를 보면 태초부터 이 공간에 이 모습으로 자리했다는 듯하다. 사람의 피부처럼 흰 나무껍질. 나뭇가지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와 나뭇가지를 타고 노는 아이들.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인지 나무는 주름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씨티칼리지 플랜테이션은 쓰러진 나무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었다. 놀랐다. 픽업트럭 하나 놓고 아이스크림이나 와플류라도 팔 생각을 한 이유에서다. 사는 곳, 아니. 자는 곳은 고양시지만, 땅이란 개발할 대상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팝업이 생겨나는 성수에서 일 년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일까. 자연의 자연다움을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면서.
쓰러진 나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 걸었다. 그늘 하나 없는 들판이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것은 나무다. 개안한다. 몇 해 전, 베를린으로 여행 갔을 때가 떠올랐다. 콘크리트와 유리 덩어리, 굵은 전깃줄이 하늘을 가르지 않는 곳.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곳. 그래서 탁 트인 하늘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 베를린에 가서야 하늘을 가리는 물체가 없어야 안정감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잔디. 전날 물을 잔뜩 마셨는지, 햇빛에 반짝인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보면, 그 위에 누워 팔다리를 휘적이며 눈천사를 만들고 싶은 충동처럼, 당장 이 잔디 위에 누워 햇빛을 원 없이 쐬고 싶었다.
눕는 대신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김화영은 그의 저서 <행복의 충격>에서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래도 마지막 개별성, 마지막 ‘소유’를 위하여 ‘내가 들어가 있는 풍경’, ‘나의 추억’을 제조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는다고. 나는 알제 사람이 아니라고. 현재를 온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내게 ‘나의 추억’이라도 남아야 덜 억울하지. 수신자 없는 핑계를 대고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불자 풀이 헤엄친다. 저마다의 리듬으로 흔들린다.
플랜테이션 내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근처 벤치에 앉았다. #헨리데이비드소로 의 에세이 <달빛 속을 걷다>를 한 장 읽었다. 요즘 읽는 책들은 압축된 안경알 같다. 얇지만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이 그랬고,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이 그렇고, 소로의 <달빛 속을 걷다>가 그러하다. 한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다. 그렇게 스마트폰 속에 살더니 결국 뇌가 어떻게 됐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안다. 내 그릇이 담기에 이들의 사유는 너무 크다고. 그래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라고.
햇빛은 쨍쨍한데, 나무들이 그늘막을 만들어주어 벤치는 시원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구경하다, 읽던 책을 덮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화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무심히 지나쳐 갈 바람이나 나뭇잎의 움직임도 자연에서는 대화의 주제가 된다.
그 이유에선지 이곳을 방문한 가족들은 대화가 많다. 피크닉 테이블, 벤치, 잔디 위.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 하는 사람이 드물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치유된다는 말은 단지 초록잎을 보고, 자연의 향을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대화를 나누게 만드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