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사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나 신제품이라면 더 끌렸다. 지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레이싱 카다. 당시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만화 영화 때문에, 조금씩 또래 아이들이 레이싱 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시작점이었기에 레이싱 카를 만화영화처럼 날아다닐 수 있는 트랙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에게 졸라서 레이싱카를 구매했던 것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첫 레이싱카를 조립하고 첫 시운전을 하는데, 모터가 금방 타 버린 기억 때문이다. 블랙 모터가 성능과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것은 레이싱 카에 대한 아쉬움으로 덮어진 이후에나 알아버렸다.
하지만 레이싱카 이후에도 나의 손에는 무언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리고 차곡차곡 나의 방 어딘가에 쌓여 갔고, 이사 가는 시점마다 버리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의 삶의 밀도는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시간이 제법 그렇게 흘러 요즘 재취업을 위한 디자인 공부에 열성이다. 어도비 툴을 쓰는 여러 강의들을 듣고, 주마다 1개씩 정도 모작을 통해서 실전 감각도 익힌다. 지금은 제법 재미가 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문득 시간을 보면 3~5시간은 정말 금방 간다.
여기서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기획이다. 1920x1080의 화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화면을 채웠다. 원래부터 나는 다양한 것들을 좋아한 터라, 그것이 나의 화면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색도 알록달록 했고, 오브젝트들의 형태도 다양했다. 그렇게 뭔가 끝난듯한 느낌이 들어서 화면 전체를 보면, 속으로 '참 허접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위에서 말한 모작을 해본 것이 말이다. 채워갔던 공간과 다양성을 줄였다. 그리고 나니 조금 더 나아졌다.
그런데 여전히 어색했다. 투박해 보였고, 이전과는 반대로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비었다는 느낌이 예전의 허전한 느낌과는 달랐다. 마치 사람의 얼굴에 눈, 코, 입, 귀와 같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는 비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의 작품 속에서 비어진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비어진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요소들은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속도로 채우는 것. 단순한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인 자연스러운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그냥 속도 제어 없이 만들었다면, 조금씩 속도를 만졌다. 천천히 들어오게 만들기도 했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 빠르게 나가기도 했다. 천천히 들어와서 중간에 빠르고 나중에 빠르게 없어지는 동작들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속도들이 화면 속의 물체마다 조금씩 상이하게 혹은 다른 타이밍을 넣어줬다. 좀 더 재미가 있고, 눈이 심심하지 않았다. 때로는 임팩트가 있었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재미있었던 점이 생겼다. 바로 또 다른 비어있는 공간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 비워진 곳을 채우진 못했지만, 아마 어떠한 요소를 찾아서 결국에는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비워진 곳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이 형태의 변화든, 색상의 변화든 혹은 한 점으로 작품이 끝이 나던지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점점 내가 뾰족해지고, 날카 있다는 것이다. 이거은 나의 '의지'이다. 이전에는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세상의 자극에 의해서 채워지던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스스로에서부터 찾아내는 작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