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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Apr 03. 2017

23. 비 내리는 벼룩시장

어디 좀 익숙해질 만 하면 짐 싸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 또다시 어리버리하기. 여행 중 도시 이동을 하면 항상 머리가 포맷되는 느낌이 들어요. 

포르투갈 중부 도시 코임브라Coimbra에 도착해서도 역시 멍~ 하며 여기가 어데요 하는 중입니다. 우얏든동 그 와중에 웬 벼룩시장이 눈에 들어오니 어이구야 어찌나 반가운지!








빛 바랜 책들과









기스 좍좍 난 접시들









빗물과 흙먼지가 잔뜩 튀어 더 낡아 보이지만 설겆이 한번 싸악 하면 괜찮것구만요. 

그러고 보니 작업실에서 쓰는 식기들 대부분이 여행 중 하나 둘 씩 사 모은 것들이네요. 홍콩, 불가리아, 상하이, 모로코, 대만...









그리고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도 요런 조런 접시와 잔을 바리바리 싸갖고 와서 지금 자알 쓰고 있습니다. 요 맥주 두어 병 사면 사은품으로 끼워 줄 것 같이 생긴 유리잔들도 무척 탐이 나네요.

그나저나 카톨릭 국가 답게 성상이며 묵주 등 다양한 성물들도 벼룩시장에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요 예수상과 멍멍이인지 여우인지 하여간 얘네 세트가 심금을 뎅뎅 울림. 아련한 눈매가 꼬옥 닮지 않았것습니까.









아빠 나 저거 사줭









절그렁 절그렁 스뎅들.









이건 또 뉘 집 부엌살림 탈탈 털어다 좌판 벌린 것일까나. 이쁘게 반짝거리는 것이 소매로 빗물 슥슥 닦아서 두어 벌 챙겨가고 싶게 생겼습니다.









젖으면 곤란한 물건들은 요렇게 비닐로 덮어 두었거나









요래 파라솔 아래에 쫙 깔아 놓았습니다. 

하이고오 예엣날에 쓰던 디지털 카메라 생각난다. 기종 전혀 떠오르지 않는 HP의 그 무언가랑(최대 해상도 640X480 픽셀이었어요) 니콘 쿨픽스 뭐더라, 2500인가, 렌즈가 돌아가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으엄청나게 획기적인 모델이었는데...









오우 여기서도 잘만 고르면 뭐 하나 건지것는데요.









낡고 소박한 물건들을 그냥 요 앞 광장에 깔아놓은 것이 전부지만 리스본의 페이라 다 라드라feira da ladra 

벼룩시장보다 어째 이 곳이 더 마음에 듭니다. 페이라 다 라드라에는 중고품보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어째 더 많아 보였거든요. 상점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








난 왠지 사연 있어 보이는 요런 것들이 더 좋구먼. 밤 열두 시 땡 치면 귀신 나올것 같고 말이죠. 

그나저나 우리 아벗님이 뭘 그리 뒤적뒤적 찾으시나 했더니









까라페 뚜껑 짝 맞는 거 찾고 계셨구먼. 하기사, 짝이 맞아야 팔던가 사던가 하것네. 









유리 램프도 그럴싸하고









자기 뚜껑 잘 찾은 요 까라페들도 무척 탐납니다. 아휴 이런 거 하나에 3유로 4유로 이러지 뭐것어요. 여기서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흥정하면 1유로 정도는 어떻게 빼 주시지 않것는가.









그치만 아직 여행 일정이 반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유리라던가 도자기제의 그 무언가를 사기가 쫌 두렵습니다. 벼룩시장 물건은 일기일회, 눈 마주치는 순간 이리 오너라 하며 확 나꿔채야 하는데 말여요.









에잉, 뭐 꼭 사지 않으면 어떻것습니까. 비 주룩주룩 내리는 낯선 도시, 애매한 시간, 아담한 규모의 이 벼룩시장을 만나니 무척 기쁘고 반갑고 그렇습니다. 이후 검색을 해 보니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이라고 해요. 저는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비 맞아도 좋앙...









근데 어머 얘네는 그렇잖아도 녹이 잔뜩인데 더 슬것네 더 슬것어









얘네도요.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에 걸릴 것 같은 녹슨 뾰족이들입니다. 

거참, 어찌 보면 이거 뭣헐려고 내다 팔고 사고 할까 싶지만 한참 나중에 요런 물건들을 들여다 보면 여행의 추억들이 하나 하나 떠오르거든요. 상점에서 산 쌔끈하고 깔끔한 물건이랑은 또 다른 묘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 내 작업실이 방물장터가 되었스야. 방물 잔치를 벌려보자 방물 잔치야...









비가 잦아든다 싶으면 비닐을 홱 걷었다 다시 쏟아지면 급히 펴서 덮기를 반복하는 그분들. 날씨가 궂어 고생이구만요.









그런데 눈치를 보니 슬슬 파장 분위기야요. 하긴, 벌써 서너 시.









그나저나 광장 한 켠의 요 가게엔 아까부터 꽤 긴 줄이 좌라락인데









대체 뭘 팔길래 그려? 하며 가까이 가 보니 와하하 누텔라를 바른 그 무엇을 팔고 있음ㅋ 아마도 누텔라 크레이프로 추정됩니다. 줄 선 사람들이 누텔라! 초콜렛! 이러면서 너 이거 아니 엄청 맛있는 거야 라며 눈을 마구 빛내길래 무 물론이지 누텔라는 위대해! 라고 대답해줌. 

근데 얘들아 언니가 비행기 열멫시간 타고 와서 굳이 누텔라를 먹을 일이 있간디(라고 쓰고 내일 사먹어야지 라고 읽는다)...









광장에서 살짝 더 안쪽, 코임브라 대성당sé velha 방향으로 들어가니 어라, 여기도 뭔가 거리 행사가 있는데요? 길에서 막 음료도 팔고 하여간 뭐가 있는데?









검고 긴 망토의 언니들도 두둥. 코임브라 대학Universidade de Coimbra의 교복인데









이곳 코임브라Coimbra는 포르투갈의 옛 수도입니다. 1139년부터 1260년 사이의 일. 수도가 리스본으로 이전한 후에도 포르투갈 학문과 예술의 중심 도시로 큰 역할을 해온 곳이에요. 

16세기, 그러니까 하안참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 짠짠짠 잘 나가던 시기엔 유럽의 학문, 예술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사상인 인문주의Humanismo(영어로는 Humanism) 역시 코임브라가 그 중심이었구요. 유럽에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코임브라 대학Universidade de Coimbra에 유학을 가는게 꿈이었다고도 하니 어우 진짜 대단했나봥. 근데 언니들 여기서 뭐해여?









아하~ 이제 보니 학교 발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연 모양입니다. 코임브라 관광 엽서를 팔고 있길래 지갑 속 잔돈을 털었어요. 

엽서의 문구 '꼬임브라 뗌 마 젠깐또Coimbra tem mais encanto'는 유명한 파두Fado 곡의 제목인데, 대략 '코임브라 매력 쩔어' 라는 뜻입니다... 라고 쓰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진짜 그런 뜻임. 









마침 빗방울이 후둑후둑 더 굵어져 잠시 교복 언니들을 붙잡고 여기 지금 뭐 행사하는 거에요 언니들 교복 물빨래에요 드라이에요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계속 걸어봅니다. 

거리 곳곳에 빗물에 젖은 행사의 흔적들이 있는데









5월 첫번째 주 금요일부터 코임브라 대학의 종강 축제(이게 아주 유명하더만요)라 슬슬 지금부터 기금 마련 등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아주 바쁘게 이 일 저 일을 하는 중. 이렇게 길에서 비브라폰 연주도 하구요.









그나저나 종강 축제땐 까만 망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온 거리에 가득하고 술판이 벌어지고 거리에서 음악 공연도 하고 등등 아주 재미있다던데 고것을 일주일 차이로 놓치게 되어 너허허허무나 아쉽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일정을 짜 맞췄을 텐데 항공권 결제를 이미 마친 뒤에 알게 된 거라 어쩔 수가 없었엉... 날짜 변경에는 큰 아픔(aka 돈)이 뒤따르는 관계로 걍 꿀꺽 삼켰엉...









혹시라도 저처럼 4-5월 포르투갈 여행을 가겠다 하신다면 코임브라 대학의 종강 축제 께이마 다스 피따스Queima das Fitas를 마음에 콕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 지금 이거 포스팅 하면서도 구글에서 Queima das Fitas 이미지 검색하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 언니들...









우얏든동 그렇게 왁자지껄한 토요일 오후의 코임브라









아직 낯선 이 도시가 벌써 마음에 듭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곳.









학문과 예술의 도시,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Fado가 울려퍼지는 도시 코임브라. 여기서 2박 3일을 보낼 예정입니다.









헤헤 이따가 파두 공연도 보고 들으러 가야징. 입간판을 읽어보니 아하~ 매일 저녁 여섯 시에 공연이 있다고 해요. 그때까진 아직 좀 시간이 남았으니 어디 들어가 차 한잔 하면서 쉬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어데가 좋을까 어데가 제일 이쁘게 생겼나 두리번 거리며 쭈욱 걷다가








럭비공 2/3 사이즈의 거대 머랭 앞에서 헐 소리를 내며 멈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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