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만난 임산부들
임산부 배려석은 무조건 비워두는 편이다. 아마 임산부 배려석이 일반석과 색깔이 비슷했다면 종종 앉았을지 모르겠지만, 강한 분홍색(Hot Pink)은 임산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기에 확실히 부담스럽기는 하다.
지옥철 속 사람들 중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임산부는 오죽할까. 예전에는 출퇴근하는 임산부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아마 일반적인 전철 한 량에 4개 정도의 임산부 배려석이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그게 좀 많다고 생각했다. ‘임산부가 저렇게 많다고?’ 게다가 저출산의 시대 아닌가. 그러나 최근에는 4개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전철에서 세 번이나 – 그 두 번째는 확실치 않지만 – 임산부를 마주했다. 내 기준에서는 많다. 중요한 것은 임산부 배려석이 그렇게 많음에도 세 번 모두 앉지 못한 채 일반석에 앉은 나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재미있게도 내가 경험한 세 번의 상황은 같거나 아니면 최소한 비슷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 번은 내가 자리를 양보해줬다. 그러나 이때는 무척 화가 났다. 해당 역 시발 열차라 빈자리가 많았지만 탑승하는 승객도 많았다. 대기 줄 맨 뒤에 있는 사람은 빠르게 뛰어야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문이 열렸고, 운 좋게도 나는 임산부 배려석 바로 옆의 일반석에 앉을 수 있었다. 빠르게 자리가 정리되어 가는 순간 동안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 않고 지나친 사람이 꽤 있었다.
모두가 승차했고 전철 문이 닫힐 때쯤 왼쪽에서는 60대 아주머니가, 오른쪽에서는 분홍색의 임산부 가방걸이를 단 임산부가 내 자리의 바로 왼쪽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으로 동시에 걸어왔다. 승자는 아주머니였다. 허허…. 임산부도 아닌 사람이, 심지어 임산부임 가방걸이를 단 사람이 앞에 있는데도, 그분은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순간 화가 많이 났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 가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도 임산부였을 때가 있었을텐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바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그렇게 고마운 표정은 오랜만에 봤다. 덕분에 양보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전철로 20분 정도 가는 거리였는데 그 정도야 평소에도 많이 서서 간다. 몇 정거장을 더 지나쳤고 승객들이 조금씩 내리자 자리가 자리가 났다. 임산부는 내가 양보했던 자리를 다시 나에게 양보며 다른 곳에 앉고는 또 감사하다는 눈 인사를 했다.
뿌듯했다.
또 한 번은 후회하면서도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평소처럼 전철에 앉아 있었다. 금방 사람이 가득 찼고 내 앞에는 어떤 여성분이 섰다. 순간 임산부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냉정하게 봤을 때 조금 살이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옷은 원피스였는데, 임산부들이 입는 옷과 비슷하면서도 아닌 듯했다. 혹시 가방에 임산부 인식표를 달았는지 찾아보았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정말 헷갈렸다.
사실 양보해주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냥 ‘여기 앉으세요’ 한마디하고 일어서면 된다. 근데 만약 그분이 ‘아니에요’라고 한다면 그다음은…? (보통 임산부라면 아주 가까운 거리를 가지 않는 이상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에 예의상 ‘아니에요’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임산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여성분께 정말 무례한 사람이 되는 거고, 그분은 창피함을 느낄 거다.
평소 같았으면 내리는 척 일어나며 양보해주었겠지만 그때는 전철에 사람이 정말 가득해서 그것 조치 불가능했다. 이쯤 되니 내가 앉은 자리는 가시방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더 지나고 그분은 생각보다 금방 내렸다. 이 상황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미안함이 찾아왔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임산부임이 확실했다면 내가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고, 그러면 기분이 참 좋았을 거다.)
비슷한 상황을 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다. 물론 그때도 한참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이래서 임산부 배려석은 무조건 비워두는 것이 맞다. 듣기로는 일부러 임산부 가방걸이를 안 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가발걸이를 달아도 못 본 척하는 사람이 많아 쓸모가 없거니와 임산부가 무슨 ‘특권’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임신했어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올까.
어쨌든 임산부 배려석은 출근시간이든, 심야시간이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워두자. 그거 조금 서서 간다고 안 죽는다.
마지막 한 번은 스마트폰을 보다가 내 앞에 서 있는 임산부를 발견하지 못한 일이다. 출근길에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폰을 꽂고 전날 밤에 있었던 토트넘 핫스퍼 주요 경기 장면을 봤다. 두 장면 정도 봤을까. 바로 왼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 이분은 정말 착하고 감사한 분이다 –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잡아끌면서 자리를 양보했다. 누가 서 있는지 몰랐던 나는 나는 보고만 있었다. 비록 임산부임을 나타는 표시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래도 이미 어쩌나. 아주머니는 몇 정거장 안 가서 내린다고 했고, 임산부는 감사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경우였지만 그때의 미안함은 꽤 컸다.
역시, 우리는 전철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말고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