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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Sep 28. 2023

노르웨이에서 한국 페스티벌

이제 정말 노르웨이어를 배워야겠다.

최근에 스타방에르에서 한국 관련 페스티벌이 열렸다.


바로 정쏘쓰님이 일하시는 회사에서 주최한 이벤트다.

(이벤트에 관련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



이 페스티벌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뭔가 기여를 하고 싶었는데, 또 막상 먼저 말씀드리기에는 괜히 묻어가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연락이 오셔서, 이때다 싶어서 흔퀘히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나의 역할은 뭐였냐면,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써오면 그걸 한글로 써주는 거였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인기가 엄청 많았다.


한국 음식 팝업 스토어부터, 재봉틀 사용법 그리고 기아 자동차의 신차 전시등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건, 노르웨이 애기들이 BTS의 다이너마이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거였다. 주말 동안 춤을 췄는데, 하루에 한 10번씩 췄던 것 같다. 아직도 다이너마이트가 귀에 맴돌고 있다.


그 와중에 감탄했던 건 애기들이 체력이었다. 그렇게 춤을 열심히 췄는데도, 지치지 않고 재밌어하며 춤을 추는 걸 보고 도대체 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이래서 초등학교를 공동묘지였던 곳에 짓는다는 소문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나는 이름을 써주는데, 이 춤추던 애기들이 엄청 좋아했다. 먼저 써주고 우리는 p랑 f랑 구별 안 하고, b랑 v, r이랑 l도 구별 안 한다는 걸 설명하고, 어떻게 아이들의 이름이 한글로 구성이 되었는지 설명을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재밌어했다.


그러다 다른 애기들이 계속 적어달라는 같은 이름이 있었는데, Felix라는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Felix가 원래 흔한 이름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Stray Kids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의 이름이라고 한다.

(K-pop은 국뽕 타령 하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해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Stray Kids를 모르는 나를 보고 내가 이제 나이가 들었음을 몸소 실감했다.)


또 한 번은 어떤 아버지가 와서 자기 딸이 이 그룹의 팬인데, 이 사람 이름 좀 적어달라고 했는데, 이 친구(현진)도 마찬가지로 Stray Kids의 멤버였다. 


아무튼 그렇게 애기들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엄청 즐거웠던 것 같다. 이름을 한 400명 정도 써줬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노르웨이어를 못하다 보니 소통에 한계가 있었고, 또 애기들은 영어를 아직 잘 못하니 대화는 거의 되지 않았다.


나는 미리 외워간 노르웨이어로 뭘 해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줬다.

Hvis du skriver navnet ditt på norsk, kan jeg skrive på koreansk.

(네가 노르웨이어로 이름을 써주면, 내가 한국어로 써줄게~)


물론 그 이후에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행사에는 혼혈인 애기들도 많았는데, 한국 페스티벌이다 보니, 부모님 중 한 명이 한국인인 애기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런데, 입양된 분들이 많다 보니 그분들도 한국어를 못하셔서, 애기들도 한국어를 하지는 못했다.


행사 막바지쯤에, 사람은 거의 없고 이제 행사 관련된 사람들만 거의 남았었는데 그분들이 데려온 애기들도 이런저런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말도 안 통하지만, 빈백(bean bag)을 갖고 몸 위에 쌓기 놀이를 하면서 같이 놀았다.


그러다 이든이라는 남자 애기랑 이야기를 했는데, 이 친구는 영어를 엄청 잘했다. 내가 봤을 때 한 8살 정도 돼 보이는데, 나보다 영어를 더 잘했던 것 같다. 


이든이의 어머니는 케이크를 만드는 카페를 운영하시는데, 어머니가 행사에 참여하시는 동안 같이 도와주려고 나왔었다.


그리고 다른 혼혈 애기랑(얘는 한 3살?) 셋이서 같이 빈백을 갖고 놀고 있었는데, 이 3살짜리 애기가 자기 몸 위에 빈백을 쌓아주길 원했었다. 그렇게 쌓아주는데, 이 애기가 자꾸 자기 얼굴에 빈백을 끌어당겨서 그걸 못하게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 이든이,


"얘가 질식(suffocate)할 수도 있으니까, 머리 쪽에 공간을 줘야 해! 안 그러면 우리 감옥 갈 수도 있어"라고 나한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상황상 suffocate가 질식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단어를 생전 처음 들어봤다. 

8살짜리 아이가 이런 단어를 쓸 수 있는 게 정상인가?


그리고 3살짜리 아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한테 노르웨이어로 했는데, 뭐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리고 이든이가 나한테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중원이라고 대답해 줬다"


내 이름을 듣고부터는, 나한테 말을 걸 때마다 중원이라고 부르면서 말을 걸었다.


나는 이게 좀 충격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특히 외국에 나와서 인사치레로 사람들의 이름을 묻고는 하지만, 뒤돌아서면 바로 까먹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이름이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 같다. 



아무튼 백여 명 가까이 되는 애기들이랑 교류를 하다 보니, 노르웨이어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크게 됐다.


사실 성인들이랑 이야기를 했을 때는 별로 노르웨이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일단 다들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고 약간 그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이해 못 한다는 불편함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가 없는 이유는 언어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문화적으로 잘 안 맞아서 대화 자체가 재미가 없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래서 정말 동기부여가 안 됐었는데, 애기들이랑 노니까 뭔가 한마디라도 더하고 질문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그날부터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어 공부를 시작했다.


곧 크리스마스고, 이제 여자친구의 대가족들을 만나야 할 텐데, 한번 그때까지 얼마나 늘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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