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만 알기 힘든 자신의 이야기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런 '연구' 혹은 '학문'이 연구 주제별로 구별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론이 연구 주제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던 구시대의 잔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구 주제는 학문 분야를 구분하기 위한 기반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모든 분류와 구분은 피상적이고 덜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아닌, 문제를 연구하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문제는 주제 혹은 분야의 경계를 언제든 넘나들 수 있다."(1)
당연한 듯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위의 문장은 20세기 오스트리아 태생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문장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명확하다면야 진로를 결정하고 전공을 선택할 때 자신 있게 "이 길이 내 길이야!"라고 외치겠지만, 시간이 흘러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애써 잊었을 수도, 맞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을 수도, 지금까지도 계속 바뀔 수도, 그리고 모호한 상태로 남아 무엇인지 확신이 안 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내 길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명확하다고 생각했지만 모호한 꿈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제 꿈은 대통령, 의사, 화가, 건축가 등으로 끊임없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렇게 꿈이 바뀌는 와중에도 진로나 전공에 대한 고민(?)을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른들도 공부하라는 말만을 전했지 무엇을 공부하고, 진로의 방향을 결정하고, 특정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처럼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를 위해,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위해,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위해 눈앞에 보이는 공부만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서서히 진로를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첫 선택은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그렇듯 문/이과의 선택이었습니다. 단순히 수학을 좋아해서(또는 사회과목에 흥미가 없어서) 선택한 이과는 대학 진학 시 선택할 수 있는 학과를 자의 혹은 타의로 제한하였습니다. 전공 선택의 순간에도 학교의 이름, 자신 있는 과목, 막연한 관심사 정도를 생각했지 '진로'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진로를 함께 고민해주신 선생님들도 '진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학교 이름에만 관심을 보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4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부분을 선택하는데 저 자신도 상당히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여름방학에 갑작스럽게 와 닿았습니다. 기계공학이라는 전공을 다른 친구들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괜찮은 성적을 거뒀고, 특정 분야에서는 자신도 있었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고 진짜 사회로 향하는 '진로'의 선택을 앞두자 혼란스러웠습니다. 특정 진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동기'를 설명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동안 큰 고민 없이 선택해 왔던 진로와 전공에 대한 고민을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야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용기가 필요했고, 생각보다 쉽게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 우연히 들은 교양수업에서 UX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해당 분야로 진로를 정해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이후 UX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진로를 위한 하나의 꿈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감동을 주는 것" 이것이 제 꿈입니다.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동기'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동기' 보다 그동안의 '진로'나 '전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에서도 전공이 무엇인지 자격증은 있는지는 묻지만 정작 그만큼이나 중요한 동기 혹은 꿈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전공과 지식이 상당히 중요한 분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부분에서까지 다양성이나 동기 같은 개념보다는 눈에 보이는 전공, 자격증 등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코스트코 샌디에이고 매장 회계부 직원으로 입사한 아네트 알바레즈 피터스(Annette Alvarez-Peters)는 판촉 부문, 물품 정리직 등을 거쳐 구매 업무 보조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 때 구매 업무에서 소질을 발휘하면서 2005년에는 코스트코의 주류 구매 총괄을 책임지는 직책에 올랐다고 합니다(2). 이처럼 그동안의 진로가 혹은 전공이 다르더라도 흥미를 찾고 진정한 동기를 찾는 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을까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거나 하고 계신 분들을 응원하며, 글의 첫 문단에서 인용한 칼 포퍼의 말을 전합니다.
(1) 칼 포퍼, 필 파빈 지음, 이화여대 통번역연구소 옮김, 아산정책연구소, 2015, p.72-73
(2)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2018, 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