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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Jul 09. 2018

영화 변산과 내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이란

# 시작은 박정민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있다. 눈이 약간 졸려 보이고, 까무잡잡하고, 남자들 사이에 꼭 한 명쯤은 있을법한 마스크.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니 희한하게 박정민의 대표작은 본 영화가 하나도 없더라. ‘동주’, ‘파수꾼’,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작품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 보지 않았다. 그나마 조연으로 나온 영화들 몇 가지 본 게 전부인데, 조정석의 납득이처럼 강력한 씬스틸러도 아닌 박정민이 희한하게 기억에 또렷하다. 마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도대체 왜 이리 친숙한거지 싶은 사람이었다. 나랑 좀 닮았나? 내가 좀 더 나은 거 같긴 한데. 느낌이 뭔가 있는 거 같긴 해... 그냥 그 정도의 배우였다 아무튼.


브런치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읽다가 우연히 박정민이라는 이름이 보였고 그가 쓴 글이 있었다. 제목은 ‘천둥의 신, 이준익 감독님’. ‘변산’이라는 영화가 곧 개봉하는데 제작 과정 겸 비하인드스토리 개념으로 홍보 차 3회에 걸쳐 직접 쓴 일종의 일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양반 글을 참 재밌게 잘 쓴다. 킥킥거리면서 어느새 3회의 글을 금세 읽었다. ‘이 영화 나오면 바로 봐야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자연스럽게 박정민에 대해 더 찾아보니 2016년에 ‘쓸 만한 인간’이라는 산문집을 출간했었네? 밖에 있던 나는 곧장 근처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샀다. 다음날 카페에 앉아 킥킥, 낄낄, 흐허허 등의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유쾌한 동시에 진중한 사람인 것 같았다. 산문집이기 때문에 그냥 일기를 모아논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나름대로 흔한 산문집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한 흔적들도 보이는 것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 살더라고? 언제 한 번 마주치려나. 그렇게 변산을 보게 되었다. 

# 변산

변산은 주인공 학수(박정민)의 고향 이름이다. 학창 시절 문예대회 대상까지 받아내던 학수는 서울에 올라와 래퍼가 되었다. 쇼미더머니에 참가하여 나름대로 선전하지만 매번 중요한 순간에 번번이 떨어진다. 그런 학수에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이 온다. “근데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데도 대수롭지 않다. 학수에게는 아픔이 있다. 학수의 아버지는 어린 학수와 엄마를 뒤로하고, 도박에 바람까지 피운 사람인 데다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학수는 변산에 내려간다. 막상 내려가서 보니 위독하다던 아버지는 병실에 앉아 멀쩡히 밥만 잘 먹고 있다. 학수는 짜증 난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인데 먼 길까지 돌아와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필 아버지의 병실 옆자리에는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선미(김고은)까지 있다. 심지어 산 넘어 산. 말도 안 되게 범죄자로 오해까지 받아 당분간 변산에서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 변산의 랩

영화가 중간중간 상황 설명을 랩으로 하는 데 이게 참 신선하면서 꽤 괜찮다. 가령 학수가 용의자로 오해받아 수갑 차고 변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된 상황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은 랩이 나온다.

 

“이런 환영 예상 못 했지. 깜짝 선물은 깜찍한 예쁜 은팔찌. 

발목에 채워져 무작정 끌려오고 나니 어느새 좁아진 골목과 낮은 울타리.

...

“꿈속에서도 돌아오기 싫었던. 아 그냥 고향이라고 부르기 싫었던. 

셋이 같이 찍은 사진 하나 없고 셋이 같이 지낸 기억 없는 낡은 집구석.”


영화에는 계속해서 이런 식의 랩들이 나와 흐름을 이어간다. 마지막 피날레에서도 영화에 큼지막하게 언급되는 ‘노을’을 주제로 한 랩으로 끝내주게 한 방 날린다. 결국 이 영화에서 ‘랩’은 소재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들과 더 가까운 공감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이준익 감독이 꺼내 든 일종의 장치이자 연결고리다. 그니까 내 생각에 ‘변산’은 음악영화는 아니다. 

#이준익 감독

참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세대들의 유사 감정을 대표하는 대량 소비 트렌드가 힙합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시도가 꽤나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이런 어른이 얼마나 될까. 조금이라도 더 어린 친구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뭔가 그들의 이야기 혹은 어른이 바라보는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강요도 조언도 아닌 형식으로 너무나 멋지게 풀어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메인 예고편 말고 랩 예고편이라고 해야 하나? 랩으로 뮤비처럼 만든 따로 만든 티저가 있는데 흐뭇하게 볼 수 있을 테니 그것도 찾아보길 바란다. 


박정민의 랩이 훌륭하다. 물론 프로가 아니기 때문에 ‘오 쩌는데?’ 정도는 아니지만 ‘오호?’ 정도는 느낄 수 있다. 1년 정도 연습하면서 모든 랩의 가사도 직접 자신이 썼다고 한다. 책도 쓰고 평소에도 읽고 쓰는 일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던데 그 점을 생각하면 괜찮은 가사가 전혀 의외이지 않다. 


# 아버지


영화 끝날 때까지 억지웃음 하나 없이 빵 터져가면서 재밌게 봤다. 학수의 아버지는 학수와 좀 잘 해보려고 한다. ‘미안하다 학수야...’ 아버지의 사과에도 학수의 입에서는 오히려 매번 씨발이 나온다. 학수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원망과 억울함이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다. 학수는 점점 더 틀어진다. 학수를 좋아했던 선미는 그런 학수의 변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종의 피해 의식 때문에 앞의 일을 마주하지 못하고 뱅뱅 엇나가는 학수에게 선미는 뺨 다구를 날리며 ‘너는 정면을 볼 줄 모른다’고 말한다. 학수와 아버지의 감정은 절정으로 고조되고 결국 학수는 아버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게 된다. 잠깐 놀랐긴 했지만 태산 같은 아버지에 대한 그 주먹 한방에 학수의 원망은 조금 잦아들고 아버지 입장에서도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게 된다. 정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얼굴에 날아갔던 학수의 손은 결국 주먹이 아닌 아버지의 손을 감싸드리는 손으로 바뀐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아드리는 학수에게 아버지가 말한다. “우리 아들 손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나는 그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날랑 말랑하지도 않은 채로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문자 그대로 터져 나왔다.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그냥 눈물이 흐른 적은 있어도 주체가 안될 정도로 소리까지 새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가 도박으로 집을 날려먹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하진 않으셨지만 참 어렵고 어색한 사이였다. 아버지와 나는 일방적인 관계였다. 그는 이해할 줄 몰랐고 나는 이해받고 싶어 했다. 나도 성격상 하라는 대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자주 부딪쳤지만 그의 앞에서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막연한 반항은 하고 싶지 않아, 슬기롭게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밤새 편지를 길게 써서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식탁에 놓아두고 자고 그랬다. 그러면 다음날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서 어쩌자고?’ 이런 식이었다. 반복되는 노력이 결국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나도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성인이 되고 나서 군대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딪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지금도 아버지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고 있다. 가끔 오랜만에 얼굴 보는 날에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아 대화도 아니고 그냥 의미 없는 몇 마디뿐. 분노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아래 정도의 온갖 감정들을 내가 담아두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 방에 가만히 있었는데 아빠한테 전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냥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렇게 못 했던 것 같았다. 일단 전화기를 들고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 그냥 잘못 걸었다고 하고 끊을까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나”

“어 무슨 일이냐”


“그냥 한 번 걸어봤어요”

“하하하하 그래? 뭘 참...”


아빠가 웃었다. 아빠의 웃음소리는 적어도 통화로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저녁은 드셨고?”

“먹었지. 오늘 뭐 이래저래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가 어쩌고 저쨌어”


“아니 그냥... 오늘 뭐 하셨나 궁금하...”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목에 메어서 말이 막혔다.

 

“.......”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흐르는 30초 정도의 정적 아닌 정적을 서로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었다.

아빠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냥 잘 지내시냐고... 아빠 생각나서 전화해 봤어요. 

그냥 나는 아빠 생각 많이 하니까... 그냥 그런 줄 아시라고...”

“그래. 너도 뭐 얘기할 거 생기면 아빠한테 전화하고 그래”


“네 그래요 쉬세요 끊을게요”

“그래 자라”


영화에서 학수 아버지의 그 마지막 대사가 마치 아직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나에게 우리 아버지가 언젠가 할지도 모르는 말인 것처럼 들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당장 오늘이라도 손 한번 잡아드릴 수 있겠냐 하면 또... 나는 절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참 그런 관계다. 수화기 너머의 그 정적으로 어쩌면, 서로 그래도 말로 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속으로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버지는 나에 대한 이해를 온전히 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짧게 토막 난 대화들을 하고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거나 오그라드는 말들을 표현하지도 못하지만. 그냥 우리는 이제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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