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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Nov 24. 2023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은 지능이라고 생각한다.

간병 기록 일기 (2)

그쪽도 홍박사님을 아시냐고 물으면 이제 안다고 할 홍박사님이 생겼다. 엄마의 암을 제거해 준 홍박사님은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홍박사님은 직장상사로 만나면 회사 생활이 쉽지 않을 것만 같은 인상을 갖고 있지만, 아주 똑똑한 사람 같았다. 수술 전에 CT사진을 보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는데 아주 이해가 쏙쏙 되긴 했다. 


보통 암은 사전에 조직검사라는 걸 해서 정확히 이게 암인지 뭔지 확인한다고 한다. 근데 신장의 경우에는 너무나 많은 피가 교차하는 예민한 장기이기 때문에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암세포가 주변 장기로 퍼질 위험이 있어서, 신장암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는 수술을 해봐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만약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면서 나는 뭔가 불편함을 느꼈는데 꽤 위험할 수 있는 수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홍박사님 입에서는 환자 입장에서 안심이 될만한 단어들은 선택하지 않았고 표정도 매우 건조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느낌으로 기억나는 말은 '이 정도면 운 좋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이거야' 였던 것 같다. 반말이었는지 존댓말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수술을 막 마친 홍박사님은 극도의 집중력을 다한 상태여서 그랬겠지만 한번 경험했던 특유의 시크한 말투로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위치가 좋지 않아서 수술이 쉽지 않긴 했는데 홍박사님이  잘해주셔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대답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 밖에 없었다. 아침 8시가 되면 홍박사님은 회진을 온다. 홍박사님이 오늘은 어떤 말투로 엄마의 상태를 체크할지가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갈수록 온도가 조금 더 높아진 말투로 아무튼 다행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음 식사는 하셔도 되겠네 음 밥을 안 먹어도 될 이유가 없지. 홍박사님은 오늘도 시크하게 병실을 나간다. 


나도 살면서 차가운 인상이라는 말을 간간히 듣고 살았는데 우리 홍박사님을 당신도 만나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아쉬움이 조금 있긴 하지만 홍박사님을 나쁘게 평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 유튜브 닥터프렌즈라는 채널을 보다 보니 의사들이 따뜻한 단어 선택과 말투로 환자를 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경고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과 무책임한 희망 중에 어느 쪽에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지 딜레마인 듯했다. 홍박사님은 짬이 굉장히 높아 보이는 분이셨기 때문에 그는 나름의 방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 듯했다. 아무튼 홍박사님은 생명의 은인이다.


만약 홍박사님 말고 다른 의료진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병원생활이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을 것 같다. 홍박사님의 제자로 보이는 젊은 의사 박교수님은 설명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주었다. 수술 전 환자에게 수술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설명해 주고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 절차가 있다. 그 가능성 중 최악의 것을 박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모든 수술은 낮은 가능성이지만 사망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까지 천 번이 넘는 수술을 지켜보면서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잊을만하면 메디컬 드라마가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유를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병원은 하루하루가 레퍼토리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병원을 채우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래도 예민하다. 환자들은 아파서 예민할 것이고, 의료진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예민할 것이다. 예민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모두가 당연시 여긴다면, 병원은 병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엄마 옆 침상을 쓰던 여자가 있었는데, 같은 병실에 있는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에게 간호사가 두 번씩 설명해 주는 게 짜증 난다며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라며 소리쳤다. 반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휠체어에 앉아있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에게 짐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배려는 지능이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어야 배려도 나온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여유가 배려의 지표로 측정되는 것이라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있던 아이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반면 지능이 지표가 된다면 간호사에게 소리치던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름 앞뒤가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에 계신 많은 분들은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서 편안한 회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난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까지 혼자 힘으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던 엄마는, 이제 시속 1km의 속력으로 한 발짝씩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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